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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도로에서

느리게 갈 때 알게 된 것

느린 속도로 가고 있거나

심지어

멈춰 서 있을 때,

그때에

얻은 깨달음




서울의 강동구에서 인천의 부평구로 출퇴근하던 시절이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운전하며 출퇴근할 경우에는 오직 두 가지의 선택만이 있었다.

한강 북쪽의 강변북로를 타거나, 한강 남쪽의 올림픽대로를 타거나.


스마트폰이 나오기 훨씬 이전의 시절이라서 실시간 교통상황은 교통방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동차 시동을 걸면 그 즉시 교통방송을 켜서 북쪽의 강변북로와 남쪽의 올림픽대로 중 어느 쪽의 교통이 더 원활한지 알아보고는 했다.


그렇게 교통 정보를 얻어서 출발하더라도 중간에 길이 밀리는 곳은 항상 있었다. 서울 동쪽의 끝에서 출발하는 길이므로 서울의 서쪽 끝에 도달할 때까지 한 번도 밀리지 않고 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얘기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강변북로로 가거나 올림픽대로로 가거나 내가 가는 길은 항상 밀린다는 것이다. 정말 이상한 것이 강 건너편의 도로 사정이 내가 가는 도로보다 항상 더 좋더라는 것이다. 남쪽의 올림픽대로로 가는 날이면 북쪽의 강변북로의 소통이 원활하고, 북쪽의 강변북로로 가는 날이면 남쪽의 올림픽대로의 소통이 원활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되었다.

강 건너 쪽의 소통이 원활하게 보이는 것은
강 이쪽에 있는 내가 
막힌 도로 위에 있었기 때문

이라는 것을.


사실 한강 남쪽이든 북쪽이든 도로가 정체되지 않은 날이 있었으랴. 강변북로가 정체된 날도 있고 올림픽대로가 정체된 날도 있었을 것이다. 정체가 있다고 해서 동쪽 끝에서부터 서쪽 끝까지 밀리는 것은 아니고 부분 부분 정체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 정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왜 그랬을까? 도로 정체에 대해 왜 나는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왜 나는 강 건너편 도로가 항상 소통이 좋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예를 들어서 남쪽에 있는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었다고 치자.


만약  내가 있는 올림픽대로의 교통 흐름이 원활하다면 강 건너 북쪽을 쳐다볼 필요가 없다.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건너 쪽을 쳐다볼 시간이 없다. 눈 앞의 올림픽대로가 막히지 않고 자동차들이 제 속도로 달려 나갈 때에는 나도 그 흐름을 타야 하니까 도로에서 눈을 뗄 수가 없으므로 강 건너 도로의 사정을 살펴볼 짬이 없었던 것이다. 안전 운행을 위해서도 교통흐름이 원활할 때에는 다른 곳에 눈을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다가 올림픽대로를 달리던 내게 '교통 정체'라는 문제가 발생하면, 어차피 자동차 앞을 쳐다봐야 속만 답답하니까, 그때 강 건너편은 어떤가 하고 북쪽의 강변북로를 북쪽은 바라보게 된다. 그때의 북쪽 도로는 내가 붙잡혀 있는 남쪽보다 교통흐름이 원활할 가능성이 높다. 내가 강 건너편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조건 내가 정체되어있다는 것이다. 즉 나는 100% 정체이지만 강 건너편은 정체될 확률 50% 원활할 확률 50%인 것이다. 정체 확률로만 따진다면 나는 100%이고 강 건너편은 50%이다. 그러므로 강 건너편이 이 쪽보다 원활하게 보이게 된다.


이런 일은 내가 북쪽 강변북로를 택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강변북로의 교통흐름이 원활하다면 강 건너편의 올림픽대로를 쳐다볼 일이 없다. 그러다가 내가 가고 있는 강변북로가 밀릴 때 그때에 올림픽대로는 어떤가 하고 건너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대개 남쪽은 교통 흐름이 좋다.


남쪽이든 북쪽이든 도로 정체는 있다. 다만 내가 잘 나갈 때에는 내가 바빠서 강 건너편을 보지 않는 것뿐이다. 내가 잘 나갈 때에는 강 건너편에 정체가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한다. 알아볼 필요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다. 그러다가 내 속도가 낮춰지거나 멈추게 되면 그제서야 강 건너편을 보게 된다. 그때 이쪽은 어차피 정체이니까 강 건너편은 비교적 교통 흐름이 좋아 보이는 것이다. 사실은 건너편도 조금 전까지는 많이 밀렸었는데 그 밀리는 시간에 이쪽은 밀리지 않았기에 나는 운전하느라 바빠서 몰랐을 뿐이었다. 내가 잘 나갈 때에는 강 건너편을 보지 않는다.


'사는 것이 그렇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잘 나갈 때에는 내가 잘 나가기 때문에 너무 좋고 너무 바빠서 남을 쳐다볼 필요가 없다. 그러다 내가 뭔가 잘 안 풀려서 주춤하거나 멈춰 섰을 때 그때에는 주위를 둘러볼 시간이 있는 것이고, 그렇게 멈춰 선 내가 보기에 다른 사람은 나보다 더 잘 나가는 것이었다. 내가 보지 않았을 때에는 그들도 정체를 겪었을 것인데...




내가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것은 그 누구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 멈칫거리고 있거나 멈춰 섰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내 길을 내 속도대로 나아간다면 다른 사람을 쳐다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쳐다볼 시간도 없고. 그러니 잠시 멈칫거리거나 멈춰 섰다고 해서 잘 나가는 다른 사람을 보며 부러워할 것은 아니다. 그저 내 길을 내 속도대로 나가면 되는 것이다. 강 건너편은 신경 쓰지 말고.


강변도로에서의 깨우침이 있은 후에는 다른 사람의 성공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 사진은 위키피디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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