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뭐 어때서
먼저 노래 몇 개를 떠올려보자.
'두마안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배앳사아공'
김정구.
눈물 젖은 두만강.
'연분홍 치마아가 봄바람에 휘나알리드라아'
백설희.
봄날은 간다.
'자아알있거라 나는 간다 이벼얼에 마알도 없이'
안정애.
대전발 0시 50분.
'나 호올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우욱하안 이 거리'
정훈희.
안개.
'꽃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윤승희.
제비.
'꽃피이는 동백섬에 봄이 왔거언마안'
조용필.
돌아와요 부산항에.
널리 알려진 노래들이다.
물론
제목인 '눈물 젖은 두만강' 보다
'두만강 푸른 물에'라는 가사의 첫 줄이 더 알려져서
노래 제목이 '두만강 푸른 물에'라고 생각할 수 있고,
'대전발 0시 50분'을 부른 가수가 누구였는지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노래는, 아주 젊은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곡이다.
노래를 안다는 것은
그 노래의 곡조(멜로디)를 안다는 것이겠다.
가사의 어느 부분은 기억나지 않더라도
곡조는 대부분 기억해 낸다.
음악은 그만큼 대단한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다른 생각을 해보자.
위에서 열거한 노래들의 전주곡을 기억해 낼 수 있을까?
위에서 적은 노래를 부를 줄 안다면
즉 노래의 곡조를 기억해 낸다면
그 노래의 전주곡도 대부분 기억해 낼 수 있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전주 부분이 끝나야 노래를 시작하기에
자연스레 전주곡을 기억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보자.
누군가가 그 전주곡을 만들었을 터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전주곡을 만든 사람을 기억하고 있을까?
과연 노래는 가수만이 갈채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하기사
위에서 열거한 노래의 작사가와 작곡가도 잘 모르는 판에
편곡자까지 신경을 쓴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무리겠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른 가수뿐만 아니라,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만든 작사가와 작곡가
그리고 더 나아가 편곡자까지도 감사를 보내고
갈채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장현의 '나는 너를'에는
'우우우우'로만 백 코러스를 넣는 여자가 있었다.
나는 가끔 그 여자를 생각한다.
누구였을까?
자신의 음반을 발표하기는 했을까?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HFjbvwXfdi8
노래의 전주 부분을 작곡한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노래에 백 코러스로 참여한 사람 같이
다른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나는 왜 관심을 갖는 것일까?
아마도
내 삶이 그다지 도드라지지 않기 때문일 게다.
일종의 동병상련이다......
하지만
내 삶이 도드라지지 않은들 그게 뭐 어떤가.
하나밖에 없는
내 인생인데.
그리고
누구나 다 도드라질 필요도 없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배경도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