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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법률용어

미국 들여다보기 - 31

  법에 대한 불만 중 가장 큰 불만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니 무슨 놈의 법을 일반인이 알 수 없게 만들어놨어? 저희들끼리 해쳐먹으려고 말이지…’하고 분통을 터뜨리지 마시라. 어느 분야이든 자세히 그리고 깊게 들어가면 일반인은 알기 어렵다.


  예를 들어보자. 사람들은 ‘해지’와 ‘해제’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다. ‘피고’와 ‘피고인’은 쓰이는 곳이 다른데 사람들은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다. ‘고소’와 ‘고발’도 섞어서 쓴다. ‘간주’와 ‘추정’도 법적 효과가 다른데 사람들에게는 그게 그거인 것 같다. 그러니 일반인에게는  ‘부당하게 xxx 해서는 아니 된다’와 ‘정당한 이유 없이 xxx 해서는 아니 된다’가 구분되지 않을뿐더러 무슨 말장난하는 것 같이 여겨진다. ‘항고’, ‘항소’, ‘상고’가 쓰이는 곳이 다른데 아무거나 생각나는 대로 갖다 쓴다.


  여기에 예를 든 것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가 있어서 표현을 달리하는 것이며 그 법률적 의미도 다르다. 이런 것들을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법에 대해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거듭 얘기하거니와 법에서 이렇게 용어를 다르게 사용하는 것은 용어마다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과에게는 사과라고 해야 하고 오렌지에게는 오렌지라고 해야 한다. 사과를 오렌지라고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해하기 어려운 법 앞에서 분통해하지 말고 그 분야 전문가인 변호사를 만나는 게 좋다. 아프면 의사 찾듯이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변호사를 찾으라는 말씀. 의학용어, 약학 용어, 건축용어 따위에 대해서는 불만을 그다지 드러내지 않는 사람도 법률용어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은 것을 보면 그나마 법이 만만해 보이는가 보다. 아니면 불만을 터뜨려도 된다고 생각할 만큼 법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든지. 


  미국에서 활동 중인 변호사라면 미국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영어를 하는 것이니까 상당한 수준의 영어를 구사한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영어에 능숙하지 못한 한인이 고객인 경우에는 우리말로 상담을 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미국 변호사시험에 합격했지만 그건 미국 쪽 이야기이고 한국의 법률과 법률용어에 대해서는 다소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영한사전에 의존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유언장’이라고 해야 할 것을 ‘유서’라고 말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차압’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우리 법에서는 ‘압류’라는 말로 바뀐 지 반 백 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일본식 표현인 ‘차압’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한국과 미국의 양쪽 법제도를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고 또 거의 완벽하게 두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법만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배경까지 이해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의 나라에서 변호사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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