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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오스 이비 Oct 09. 2021

첫째의 첫 생리

"나, 오늘 학교에서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갔는데 피가 나왔다."

저녁을 먹으려고 앉았는데 까순이가 말했다. 별일 아닌 것처럼.

"생리했나 보네······."

약간 놀란 말투로 말하며 아내를 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내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내는 안쓰러운 듯 "아이 불쌍해······."라고 말하며 까순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도 아내를 따라 까순이를 봤다. 조금 전 분명 남 얘기처럼 담담하게 말하던 까순이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소리를 밖으로 내지도 않고. 엄마와 아빠 얼굴을 교대로 보며. 얼굴은 잔뜩 찡그린 채. 양 손가락으로 번갈아 눈물을 닦고 있었지만 눈물은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까순이는 필시 자신에게 뭔가 크게 안 좋은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넓은 들판에서 홀로 비를 맞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와 사정없이 쏟아지는 장대비. 그 비를 피하지 못하고 온 몸으로 맞으며 어찌할 줄 몰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털썩 주저앉아 서럽게 울고 있는, 추위에 떨고 있는 가엾은 아이처럼 보였다. ‘까순아, 아빠 곧 간다.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소리치며 빨리 달려가 우산을 씌워 주며 꼭 안아주고 싶었다. 아니 구름을 아예 몰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내를 봤다. 빨리 해결해 주길 바랬다. ‘엄마가 어떻게 좀 해봐! 아무것도 아닌 일로 애가 울고 있잖아! 너도 겪어 봤잖아!’ 아무리 속으로 소리를 질러봤지만 아내는 내가 원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이 여자였으면 담임 선생님에게 얘기했으면 됐는데······ 엄마가 집에 없어서 엄마에게 전화도 못하고······ 아이 불쌍해.”

‘아니 왜 자꾸 불상하다고만 하지!’ 나는 답답했다. ‘이게 불상할 일인가?’ 


순간 나는 예전에 첫 사정한 아들에게 파티를 해 준 한 엄마가 생각났다. 

"추······추······축하해! 이제 드디어 성인이 되었구나······. 울지 마. 기뻐할 일인데 왜 울어! 울지 마······."

애써 괜찮은 듯 나는 서둘러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학교에서 교육 못 받았니?”

“6학년이니까 받았을걸?”

까순이 눈이 살짝 커졌다.

“어? ······아! 코로나! 코로나 때문에 못했나 봐. 어떻게······.”

아내는 갑자기 울먹이며 말했다. 

“보통 5-6학년 때 보건 선생님이 성교육하는데 작년에 코로나 때문에 못했나 봐. 아이고 불쌍해. 아무것도 몰랐구나. 얼마나 놀랐을까. 엄마가 미리 신경 썼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까순아. 정말 미안해.”


까순이는 또래보다 키도 크고 가슴도 살짝 나왔다. 작년에 브래지어 겸용 속옷을 사줬는데 불편하다고 안 입는다고 떼를 썼던, 아직도 어린애 같은 까순이가 생리를 한 것이다. 생리인 줄도 모르고 몸에서 피가 나왔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지금까지 혼자 속앓이 한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쓰러웠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또 엄마, 아빠의 첫 반응에 얼마나 놀랐을까.


"케이크이라도 사서 축하해 줘야지."

"그러던지. 아빠가 쏘나?" 

"그래, 아빠가 쏜다!"

나는 확실히 알려주고 싶었다. 정상적인 일이라고. 축하받을 일이라고. 그래도 까순이는 많이 놀랐는지 아직도 눈가는 촉촉했다. 하지만 인상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옆에서 까돌이는 "무슨 일인데.” “뭔데"라는 말을 계속했다. 까숙이 때문에 제대로 얘기 못하는 것도 모르고, 눈치 없이. 까돌이는 계속 대답하지 않으면 짜증을 낼 기세였다.

"엄마가 나중에 너희 둘에게는 따로 얘기해 줄게."

다행히 아내는 까돌이가 더 짜증 내기 전에 까돌이를 진정시켰다. 


저녁 먹고 아내가 생리대를 들고 화장실에 가서 두 딸을 불렀다.

"엄마가 나도 1년 뒤에는 언니처럼 할 수 있데, 그런데 돈 없는 사람들은 운동화 깔창으로 한대. 불쌍하지 우흐흐······."

엄마에게 얘기를 듣고 온 까돌이가 말했다.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불쌍하다고 우는 마음씨 착한 까돌이를 나는 말없이 안아줬다.


“아이 불편해. 이런 걸 어떻게 차고 다니지. 정말 내 스타일 아니야. 아이 참나.”

“까순아 너 많이 놀랬지? 몸에 크게 이상 있는 줄 알았지?”

까순이는 나의 말에 그냥 조용히 웃음으로 대답했다. 


“까순아 인생이라는 길을 걷다 보면 오늘처럼 갑자기 소나기를 맞을 수도 있어. 미리 알았다면 나오지 않았거나 우산을 준비했겠지. 하지만 전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소나기를 맞았다고 당황하지 마. 그럴수록 침착해야 해.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생각해봐·····. 생각을 했는데도 잘 모르겠으면 오늘처럼 엄마, 아빠에게 물어봐. 물론 엄마, 아빠에게 얘기한다고 다 해결해 준다는 보장은 못해. 그래도 같이 고민하다 보면 의외로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거야. 소나기는 결국 지나가니까. 알았지? 그리고 엄마, 아빠에게 얘기해 줘서 정말 고마워!”

까순이는 입술을 닫은 채 살짝 오므렸다.

“아빠는 오늘 까순이가 말하기 힘든 고민을 얘기해 줘서 정말 기쁘다. 하하하! 까돌이랑 까숙이도 무슨 일 있으면 까순이처럼 엄마, 아빠에게 얘기해 줬으면 좋겠어. 혼자 끙끙대지 말고 응?”

“응.”

“알았어. 그런데 아빠! ······내가 케이크 만들 테니 케이크 사지 마!”

“정말? 왜?”

“응······ 그냥 만들고 싶어. 알았지!”

“정말! 고마워 까돌아. 덕분에 아빠 돈 굳었다. 하하하.”

평소 까순이가 유튜브를 보며 케이크도 만들고, 머랭 쿠키도 만들고, 마카롱도 만들었는데, 까돌이도 언니가 만들 때 많이 보고 배운 모양이다. 


다음날 우리 가족은 까돌이와 까숙이가 만든 케이크로 까순이의 첫 생리를 기념해 줬다.


초등학교 5, 6학년 또는 중학생 자녀들 둔 부모가 이 글을 읽는다면, 학교에서 여러 사정 상 성교육을 못 해 줄 수도 있으니 미리미리 교육을 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럼 아이들이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만 12세(보통 초등학교 6학년) 여자 청소년에게만 HPV(자궁경부암) 백신 접종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만 12세만 무료라는 것이다. 나라에서 지원하는 시기가 지나면 전액 개인이 부담을 해야 하니 가급적 이 시기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https://www.korea.kr/news/reporterView.do?newsId=14888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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