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어떻게 태어난 거야?"라는 글에서 언급했듯 우리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비단 우리 아이들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기억력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물론이고 태어나서 일정 기간까지의 사건이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는 정상적인 현상이며 이러한 현상을 아동기 기억상실(childhood amnesia)이라고 한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3세 이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아동기 기억상실의 원인은 무엇일까? 현재까지 여러 가설과 주장이 있지만 심리학에서는 인출 실패(retrieval failure)를 하나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인출 실패란 말 그대로 뇌에 있는 기억을 떠올리려고 할 때 떠올리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 뇌는 3세 이전의 사건이나 일도 기억하고 있지만, 떠올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왜 뇌에 있는 기억을 못 떠올릴까?
그것은 뇌에 저장된 기억을 떠올릴 연결고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연결고리? 무슨 소리일까?
아마 이런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분명 컴퓨터에 파일을 저장을 한 것 같은데 어디에 했는지 몰라 못 찼았던 경험을. 그리고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던 어릴 적 사건이나 일도 그 시절 추억이 묻어있는 물건을 보거나 장소에 갔을 때, 또는 특정한 단어(특히 어릴 적 친구 이름)를 들을 때 언제 기억이 안 났는지 모를 정도로 술술 떠 올랐던 경험 말이다.
여기서 물건, 장소, 단어가 바로 기억을 떠올린 연결고리이다. 또 컴퓨터에 있는 파일의 경로나 파일명도 파일을 찾는 연결고리이다.
인간의 뇌는 거의 무한대라고 할 만큼 많은 양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뇌에 저장된 사건이나 기억을 떠올릴 연결고리가 없다면 그러한 것들을 떠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왜 3세 이전의 기억과 관련된 연결고리를 우리는 모르는 것일까?
이 질문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기억하지 못하는 시점이 바로 3세쯤이라는 것이다. ‘미숙아로 태어나는 아이’에서 언급한 것처럼 3세의 아이들은 모국어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아이들은 모국어를 배우면서 어느 순간부터 뇌에 저장된 사건이나 일들의 연결고리를 모국어로 했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 모국어를 배우고 사용하기 때문에 모국어로 저장하고 연결고리를 만든 사건이나 일들은 기억할 수 있으나 태아 때 배운 언어로 저장하고 연결고리를 만든 사건이나 일들은 태아 때 배운 언어를 잊어버리면서 자연스럽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언어 그리고 학교에서 강조하는 사고의 유형은 경험을 체제화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하며, 이 방식은 어린 아동이 경험을 부호화하는 방식과 상충될 가능성이 있다. 흥미를 끄는 것은 언어 발달이 3세에서 첫 번째 정점에 도달하며, 학교 다니기는 흔히 5세에 시작하며, 3세에서 5세 사이의 연령이 바로 아동기 기억상실이 종료되는 것으로 보이는 시점이라는 사실이다.
<애트킨슨과 힐가드의 심리학 원론 중>
그리고 최근에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신경 세포가 아동기 기억상실의 원인이라는 이론이 주목을 받고 있다.
뇌에 들어온 정보를 종합해 기억을 만드는 곳이 해마인데, 과거에는 더 좋은 기억력을 갖기 위해 신경 세포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의 부부 교수인 조슬린과 프랭크 랜드의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뇌에서는 반대의 현상도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연구진은 실험적 조작을 통해 새끼 쥐와 어른 쥐에서 해마의 신경 세포가 자라는 속도를 조절했다. 그 결과 새끼 쥐에서 신경 세포의 성장을 늦추자 기억이 오랫동안 유지된 반면에 신경 세포 생성이 증가한 어른 쥐는 기억을 상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아동기 초기에 기억 회로의 증설을 위해 신경 세포가 빠른 속도로 만들어질 때 오래된 기억을 저장하는 기존 회로가 방해를 받으면서 아동기 기억이 사라지는 것으로 추정했다.
<KISTI의 과학향기, 어렸을 때의 기억은 언제부터 사라질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