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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자버 Jan 04. 2024

오늘부터 엄마는 없어

나의 삶이라는 고유감각을 잃은 모든 이에게 바치는 편지


나를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게해준 가족들에게.


인간에겐 다섯 가지 감각 외에도 '고유감각'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니? 그게 뭔가 했더니, 손에 무언가 쥐고 있을 때 그 물건이 손을 짓누르고 있는 감각이라나? 고유감각을 잃은 사람은 가방을 손에 들고 있을 때 눈으로 계속 손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대. 그래야 자신이 가방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더라. 참 웃기지 않니? 그런데 있지, 엄마도 그 고유감각이라는 걸 잃어버린 것 같아. 슬프게도 엄마는 살아있다는 고유감각이 없어서 수시로 그 사실을 확인해야만 해. 


수명이라는 장작불은 끊임없이 타오르는데, 나는 하루하루를 잘 살고있나? 매일매일을 아름답고 사랑하는 것들로 채우고 있나? 웃기게도 가방을 든 손을 수시로 확인하듯 엄마는 노골적으로 시간의 눈치를 보며 산 지가 꽤 되었단다. 이렇게 안일하게 살다 내 안에서 부르짖는 나의 진짜 목소리를 듣지 못할까봐, 비겁하게 남이 불러주는 이름에 맞게 살다가, 내가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을 놓쳐버린 것은 아닐지 너무나 겁이 나. 


제이 드페어란 화가는 <장미>라는 작품을 10년 넘게 그렸대. 화실에서, 창고에서, 심지어 그 그림이 전시된 미술관 벽 뒤에서까지. 성공을 담보로 그랬을까?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싶었을까? 아니, 나는 아니라고 봐. 그냥 그래야만 살 수 있으니까, 자신의 고유성을 꺼내야만 살 수 있으니까 그랬을거야. 나는 그 마음을 알아. 


오늘부로 엄마는 엄마의 이름을, 어쩌면 허물이 되어버린 것을 벗어버리기로 했어. 내가 살아있다는 고유감각을 되찾기 위해서 말야.  엄마는 너희 곁에 없지만 삶을 찾아 제 힘으로 제 두 발로 굳건히 땅을 디딘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클림트의 그림에 늘 등장하는 금빛 찬란한 백색의 여자들 옆에 시퍼런 날을 세우고 서있는 해골을 본 적 있니? 그 해골이 자꾸만 나에게 서두르라고 하는 것 같아. 너희 또한 그 해골이 언제나 너희 곁에서 낫의 날을 벼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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