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마자버 Sep 25. 2021

열두 살의 나에게 서른 살의 내가 보내는 편지

네모로부터, 뉴욕 #에필로그


<네모로부터, 뉴욕>의 화자인 어른

계속해서 당신에게 말을 건다.


당신은 어른 본인의 어린 시절일 수도 있고

 글을 읽고 있는 독자인 바로 당신일 수도 있다.


결국, 당신이란

아직 여행을 떠나지 않은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다.



지난 2019년 뉴욕 여행에서

난 자꾸 열두 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험이 끝난 , 딸랑 2천 원을 들고

시내의 큰 서점에 놀러 가서

구경만큼은 공짜인 책들을 실컷 읽고

필감 좋은 샘플 펜을 이것저것 써보고

알록달록 신상 문구들 죄다 뒤져보고

기껏 수첩 하나, 볼펜 하나 정도를 샀는데도

행복에 겨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던 그 시절.


그렇게 돌아간 집은

네 명의 가족이 살기엔 비좁은 곳.

온 가족이 나란히 자리를 펴고 누워 잠을 청했다.

시내에서 놀다 돌아온 날은 두근두근

괜히 잠을 설쳤었는데,

그때 잠들기 전 속으로 항상 빌곤 했다.


나에게도 나만의 방이 있었으면…’




온 가족이 다닥다닥 붙어 잠을 청하던 

그 작은  한 칸이 내겐 네모였다.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날 수 없는 네모.

 네모를 벗어난 나는 내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 네모 안에서 가만히

우울하고 무기력한 시간을

견뎌내고만 있었던 때가 있었다.

제법 길었던 한 때가 있었다.



그러다 네모의 비밀을 알게 됐다.


내게 나갈 의지만 있다면

네모에서 언제든 벗어날 수 있다는 것.


네모가 아닌,

가고 싶은 다른 곳이 있어야 한다는 점.


나에게 있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란

네모를 벗어나 되고 싶은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아주 작은 행동, 바람, 꿈을 통해

난 네모로부터 멀리멀리 나아갈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을 통해


만년필을 사는 ,

취향에 맞는 뮤지션을 알게 되는 것,

좋아하는 작가의 도록을 갖는 ,

배워보고 싶던 심리학을 전공하는 ,

눅눅한 수건을 쓰지 않는 ,

미술관에서 나눠주는 엽서 봉투를 모으는 것.



누가 봐도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니까 나만의 방을 갖게 된 서른 살의 나도

종종 네모에 갇힌 상태는 아닐까

스스로를 경계하곤 한다.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 것은 아닌지

더 이상 그 무엇도 좋아하지 않게 된 건 아닌지

더 이상 깊이 탐구하고 싶은 것이 없어진 건 아닌지

그냥 이 상태로 안주하고만 싶은 건 아닌지


나는 자주 대답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이란

네모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행복하고 확실한

의식이다.


떠나고

보고

즐기고

다시 돌아오고.



없는 것이 없는 도시 뉴욕이어서

네모로부터 멀리멀리 달아나는 과정을

더욱 멋지게 그려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열두 살의 나에게 꼭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언젠가 이 멋진 도시를 여행할 수 있게 될 테니

절대 실망하거나 무기력해지지 말라고.


이런 마음속 외침을

과거의 어린아이에게 할 수는 없었을 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꼭 전해야 했다.


그래서 글을 쓰게 됐다.



이제 또 다른 누군가의

네모로부터, 어딘가로의 여행을 기대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정말, 끝-


감사합니다.



이전 15화 다음엔 너의 여행에 날 초대해줘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네모로부터, 뉴욕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