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민폐 손님 대응 매뉴얼을 만들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진상 손님'이란 말은 최소 30여 년 전에도 있었다. 90학번인 나는 대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에 우리 도시의 큰 종합쇼핑몰에서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했다.
매일 얼굴을 보며 친해진 언니들은 20대 초중반이었고 몇 년 이상의 판매 경력직이었다. 언니들과 쉬는 시간에 떡볶이를 사다 먹으며 수다를 떨 때 '진상'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우리 중에 가장 나이가 많고 점잖았던 언니가 말했다. "넌 그런 말 몰라도 돼."
당연히 그 말은 더 또렷이 기억하게 되었다. 나는 장사를 하는 동안에도 진상이란 말은 쓰지 않으려 했다. 대신 민폐 손님이라고 부른다.
작고 소박한 가게라고 해도 그곳만의 매뉴얼이 필요하다. 매뉴얼이란 간단히 말해 대상의 사용법과 기능 등을 설명하는 문서이다. 우리만의 레시피 파일을 만들고 영업 시작과 영업 마감의 루틴도 효율적으로 정해 놓으면 좋다. 긴급 상황 시 대응법(나는 전화기 위에 우리 관할 지구대 전화번호를 써 놨었다), 용품 및 재료 체크리스트, 시즌별/고객별 기억할 사항 등을 정리한 매뉴얼을 준비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길 추천한다.
나도 장사가 처음이었던 지라 레시피북이나 세부 운영 정책을 세우고 시작하지는 못 했다. 새로 온 파트타이머에게 도움이 되라고 우리 카페의 레시피를 한눈에 적어서 출력한 것이 매뉴얼 정리의 시작이었다. 그 후 매일매일 일하면서 닥치는 일들을 통해 방침을 만들고 수정했다.
만약 두 번째 가게를 한다면 이 시간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상한 매뉴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민폐 손님 응대 매뉴얼은 문서화하는 것이 아니라 카페 스태프들과 협의해 기준을 분명히 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큰 틀에서 정한 기준 아래 실제 상황에 따라 센스 있게 대응해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카페들이 흔히 하고 있는 1인 1 메뉴 주문, 시럽이나 크림 등의 유료 옵션, 외부음식 취식 금지, 반려동물 동반 가능 여부, O시간 이상 매장 사용 시 추가 주문 등은 민폐 손님과 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외부에서 싸오거나 사 온 음식은 우리 카페 안에서 드실 수 없다는 기준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어떤 손님이 아기에게 먹일 죽을 보온병에 싸 왔다면? 보틀을 들고 온 손님이 나는 이 음료만 마실 수 있고 친구와 잠깐 이야기하러 온 거라 주문은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일행 중 생일인 사람이 있어 케이크를 샀는데 여기서 나눠 먹으면 안 되느냐고 묻는다면?
평온할 때 이런 상황들을 미리 생각해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있다. 모든 상황을 예견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크기와 유사한 상황에 대한 대응법을 마련해 놓자.
다른 의도를 가진 방문객에 대한 정책도 필요하다. 물건을 팔러 온다든지, 종교나 정치적 목적으로 들른다든지, 기부금을 걷을 목적으로 들어오는 경우들이다. 이런 방문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정한다.
한 번은 친구들과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과일을 팔러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고객 사이를 다니며 불편을 주는데도 매장에서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다. 우리 테이블로 와서 걸터앉은 청년에게 몇 번을 거절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밥을 먹는 중간에 겪기엔 너무나 불편한 일이었고 그래서 빨리 과일을 사고 상황을 끝내자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청년들은 대부분 싹싹하고 끈질기다. 과일을 사지 않는 내가 더 야박한 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한다.
내 고객에게 이런 불편을 겪도록 방치하면 안 된다. 우리 매장에 머무는 손님은 자기 마음대로 할 권리는 없지만 쾌적한 시간과 공간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내가 아는 카페가 있다. 크고 작은 카페가 많은 대형 아파트 단지의 큰 상가에 있는데 그곳은 손님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앉아서 커피를 마셔도 되고, 아이들이 옆 가게에서 떡볶이를 사다 먹어도 되고, 두 명이 와서 커피 하나만 시키고 4시간을 얘기하다 가도 아무런 눈치를 주지 않는다.
사장님의 정책이다. 그 주변 카페 중에 그렇게 관대한 곳은 거기뿐이다. 직원들은 아이들이 남기고 간 분식의 잔해를 치워야 하지만 편안한 카페를 만들겠다는 가치관을 실현하는 사장님도 행복하고 고객들도 좋아한다.
나의 공간을 소위 노키즈존으로 만드는 것도, 인심이 후한 카페로 만드는 것도 신중한 판단 끝에 결정해야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최고경영자가 가진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이자.
'아무리 장사를 한다지만 내 마음의 평화가 가장 중요하다'라든가, '카페를 차린 한, 손님의 요구가 최우선이다'라는 대전제를 정해 놓자. 그러면 앞으로 갈림길을 만날 때마다 내가 어디로 향할 것인가는 분명하므로 그다음 길이 보다 쉽게 골라진다.
카페를 하는 동안 나는 꿋꿋하게 전자의 가치관을 지켰다. 내가 좋아하는 손님만 올 수는 없지만 나를 슬프게 하는 민폐 손님에게 내 시간과 에너지를 희생하지는 않았다. 환불해 드릴 테니 나가 달라고 말한 적도 있다.
카페를 운영하고 손님을 만나는 동안 나도 분명히 행복해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