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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Sep 20. 2023

태몽 조작단의 추억

좋은 꿈 꾸세요

 그건 누가 봐도 태몽의 기승전결이었다. 내 머리만 한 분홍빛 복숭아 세 개가 투명한 계곡물속에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꿈속의 (모습은 내가 아닌 어떤 젊은 여자)는 주위에 보는 사람이 있나 두리번거리다가 복숭아 세 개를 한 번에 건져내어 품에 안고 도망쳤다.

 세 개의 복숭아...... 설마 셋째 상징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일이 벌어질 리는 없다. 우리 가족 중에는 태몽이 필요한 사람이 없다고 확신했지만 다른 사람의 것을 대신 꿔 주는 경우도 있다 하니 '이건 태몽이 아니다'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길몽이었지만 복권은 사지 않았고 주변에서 아무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며칠이 지나며 흐지부지되었다.


 그 밤의 탐스런 복숭아 꿈 덕에 태몽에 얽힌 일이 생각났다.




 큰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어느 날 아이의 알림장을 보니 '나의 태몽 알아오기'라 적혀 있었다. 갑자기 웬 태몽을 알아 오라시지? 하며 큰애 때 꿨던 서너 개의 태몽을 소환해 보았다.

 주로 임신 전에 태몽을 꾸지만 임신중에도 꿈과는 분위기와 느낌이 다른 꿈을 꿀 때가 있다. 그런 꿈은 잠이 깨자마자 상한 기분 휩싸인다.

 내가 첫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 꾼 꿈인 '아기 호랑이' 편을 딸에게 들려주었다. 오비이락으로 우리 딸은 호랑이띠이다.

 

 - 꿈에 아빠가 귀여운 아기 호랑이 두 마리를 양쪽 팔에 하나씩 안고 집에 왔어. 그러면서 엄마한테 한번 만져보라는 거야. 엄마가 왼쪽에 있는 호랑이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순간 손을 꽉 물었어. 그 순간 잠에서 깼지.


 아기 호랑이를 강아지처럼 양팔에 끼고 온 남편은 아주 싱글벙글이었다.

 나는 그 꿈을 할머니께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꿈 얘기를 듣고 이번에 나는 딸을 낳을 거고 다음 둘째도 딸일 거라고 하셨다.

 할머니에 의하면 대개 태몽 속 호랑이는 한 마리가 나오면 아들, 두 마리 이상이거나 실물이 아닌 그림 같은 것은 딸 경우가 많다. 내 꿈속의 똑같이 생긴 두 마리는 다음번 동생의 성이 같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라고 믿으셨다. 그래서 옛날에 아들을 낳아야 하는 여자 태몽에 호랑이 여러 마리를 본 경우엔 아기를 몰래 지우기도 했다.

 할머니가 어릴 때 살던 황해도의 고향 마을에 성이가 부드럽고 야트막한데 중간중간 불규칙한 둔턱이 있는 산이 있었다. 초기 임산부가 위에서 일부러 어져 구르면 자신은 크게 다치지 않고 여러 번 몸에 가해지는 충격 뱃속의 태아만 떨어졌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애를 떼야하는 여자들이 밤에 몰래 올라가는 게 공공연한 일이었다고 한다. 


 태몽 숙제가 나온 날 같은 반 엄마가 놀러 왔다. 그녀는 평소에 꿈을 꾸면 잠을 깨는 순간 잊어버리는데 아들의 태몽도 역시나 기억이 나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태몽 안 꿨는데'라고 말했더니 아들이 그럼 숙제는 어떻게 하냐며 서운해하더란다.

 나는 그녀에게 제안했다.

 멋진 태몽을 조작하자!


 생각해 보자. 아기를 가진 여자가 어떤 꿈을 꿨다고 주장하면 그것은 오피셜 태몽이 된다. 건강한 아들을 낳아서 잘 키우고 있는 사람이 근사한 태몽 한 개를 꾸며낸들 누가 알겠으며 누구에게 해가 될 것인가.

 오히려 아들로서는 숙제도 잘 마치고 멋진 태몽을 갖고 태어난 자신에게 자신감과 책임감까지 느끼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태몽을 조작했다. 일단 할머니 말로 동물은 한 마리여야 아들이라 했으니 서로운 한 마리로 하자. 우리 딸 꿈이 호랑이였으니 그 집 아들은 용으로 했다. 용꿈 정도는 돼야 태몽으로 인정이다.

 

 - 꿈에 보름달이 밝은 하늘을 바라보는데 멀리서 뭔가 스르르 나타난다. 자세히 보니 크고 멋진 용 한 마리가 이쪽을 지긋이 바라보며 맑은 하늘로 유유히 승천하었다.

  

 그 날 내가 만든 꿈의 대략 내용이다. 디테일하게 여의주까지 입에 물렸는지, 하늘로 올라가는 듯하던 용이 방향을 바꿔 품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고 끝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그 집 아들이 꿈을 무척 맘에 들어했고, 몇 달 후에 그녀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 생각해 보니까 내가 00 이를 가졌을 때 진짜 용꿈을 꿨던 거 같아. 기억이 나더라니까.  


 공범자 자신도 진짜라고 믿게 되었다면 이 조작은 성공 이상이다.


 


 그 용꿈은 우리 할머니가 꿨다는 막내삼촌의 태몽을 모티프로 한다. 그래서 이름도 용 龍자를 넣어 지었다. 아들을 넷이나 둔 할머니는 유난히 예뻐하던 막내아들의 태몽을 여러 번 얘기했다.

 

 -걔는 내가 용꿈을 꾸고 가진 애야. 지금 좀 말썽을 부려도 금방 정신 차리고 꿈대로 잘 될 거야.


 내가 전해 듣는 한, 막내삼촌은 70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아직 용꿈 이룰 기미는 없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가졌던 창대한 기대에 비하면 용의 꼬리 어디쯤에 안주하는 분위기지만 자신이 지금 행복하다면야 꼬리털이면 어떻고 비늘이면 어떻겠는가.

 어리석은 부모에게 쓸데없는 기대감을 주지 않게 우리 딸의 태몽이 '귀여운 아기 호랑이'라 다행이다.

 귀여우면 게임 끝이다.

 

 그나저나 나는 그날 밤 왜 그런 의미심장한 복숭아 꿈을 꾸었던 것일까.

 인간의 꿈을 만드는 '무의식'을 처음 발견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교류하며 무의식을 깊이 연구한 칼 구스타프 융에 의하면, 꿈을 통한 무의식은 위장을 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나는 그날 저녁에 운동을 마치고 수퍼에 들렀다가 맛있어 는 복숭아를 보고 살까 말까 고민했었다.  나는 딱복을 좋아하는데 그 복숭아가 진 딱딱한 '딱복'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결국 사지 않는데 바로 그 밤에 복숭아 세 개를 훔치는 꿈을 꾼 것이다.  

 

 꿈속의 복숭아 세 개는 내무의식 속에서 원하던 한 딱복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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