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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Oct 23. 2023

물리치료실에서

건강할 때 방심 말자

 요 며칠 남편과 내가 똑같이 오른쪽 어깨에 통증이 있다.

 남편은 시댁 마당의 측백나무 울타리를 잘라내는 작업을  후부터 아프다는 길 했고 나는 어느 날 아침에 잘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쑤시듯이 아팠다.

 남편 어깨에 파스를 붙여주는데 어깨가 왜 아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뭇가지를 잘라서 아픈 거 아니냐 했더니 그 정도에 왜 아프냔다.

 안 하던 근력 운동만 해도 아픈데 무거운 전지가위를 어깨 높이로 들고 같은 동작을 했으니 어깨가 아픈 건 당연하다.

 아마 부모님 집 일을 고 나서 아프다고 하면 내가 뭐라 할 줄 알고 그러나 본데, 사람을 사지 않는 한 막내아들 말고 일할 사람이 없음을 잘 안다. 그리고 남편은 그런 일을 재밌어한다.

 나도 늙어가는 차에 젊은 자식이 부모님을 도와드리는 일에 잔소리를 할 생각은 없다. 나만 안 시키면 된다.


 남편이 연차를 낸 오후에 동네 정형외과를 함께 방문했다. 아플 땐 병원 약 먹고 물리치료 하는 게 제일이다.


 


 

 나는 뜻밖에 어깨 힘줄 사이에 석회가 많다는 진단을 받았다. 내 또래 의사는 초음파 화면에 동그라미를 치면서 설명을 해 주었다. (본인이 '우리 나이에는요'라고 했으니 겉모습으로 짐작했듯이 또래가 맞다.)

 그러니까 흔히 들어 본 석회화건염이라는 소리다. 석회의 양상으로 보면 3년 이상 쌓였다고 한다. 원래 석회화로 인한 어깨 통증은 처음부터 지 않고 석회화가 웬간히 진행되어 석회가 몸에 흡수될 때 갑자기 느껴진다고 한다.

 의사는 여느 의사들보다는 증상이나 예후에 대해 친절히 설명하는 편이었지만, 의문문인지 평서문인지 모르게 애매한 '어미'와 스스로는 분명 기발하다고 생각하고 '비유' 때문에 명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집에 와서 유튜브를 통한 추가 복습으로 의사의 비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자, 스님들이 운동은 안 하고 기도만 하면 어떻게 돼요오(?). 석회가 쌓여요. 그게 사리여요. 환자분이 이대로 가면 어떻게 돼요오(?). 사리가 쌓이죠. 


 이런 식 화법. 그대로 방치하면 종국엔 힘줄이 끊어진다는 경고로 진료를 마무리하였다.

 일단 통증 잡 약을 1주일 으면서 물리치료를 부지런히 하고 자기를 좀 자주 봐야 한다고 했다.

 다음 진료 때는 의사의 독특한 어법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교통사고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틀어 주는 유머감각





 병원 아래층에 있는 물리치료실은 꽤 넓었다. 유리문으로 나뉜 옆 공간에는 도수치료실이 건너다 보였다. 예전에 의사와 의국이 아닌 물리치료사, 방사선사 등 병원의 다른 직업들을 주제로 한 드라마의 배경과 똑같았다.

 남편과 헤어져 다른 통로의 침상을 배정받았다. 커튼 칸막이로 나뉘는 침대 하나와 기계 한 대가 놓공간은 완연히 물리치료실의 클리셰였다.

  먼저 치료사가 깨에 을 바르 마사지를 해 주전기치료를 위해 어깨에 넓적한 패드 같은 것을 여러 군데 붙다. 나는 전기의 느낌에 민감한 편이라 예전에는 강도를 줄여 달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아무 말 않고 견뎌 보기로 했다.

 전기고문도 아니고 치료인데 남들이 만약 '5의 자극'으로 한다면 나도 그 정도는 해야지 싶었다.

 역시 전류의 강약에 따라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깨가 수축되고 이완될 때마다 척추에 소름이 지나갔다. 살짝 약하게 해 달랠 걸 그랬나 싶었다.

 

 가만히 누워 있자니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 잔잔한 팝송 사이사이로 다른 침상에서 들려오는 소음들이 섞인다. 두두두두, 띠띠띠띠, 디웅디웅, 타타타타.

 그리고 주변의 누군가가 통화를 하고 있다. 약간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아주머니의 목소리다.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신경 쓰일 한 말투였는데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됐다.


 -거 왜 워버핏이 투자한 주식 있자너. 그게 뭐야, 갑자기 이름이.... 암튼 나도 거기 7억을 넣었거든.

 

 이 동네 큰손이거나 어두운 방면 종사하시는 분인가 보다.

 주변을 의식해서 목소리를 줄이려 애쓰는 듯하면서도 상대가 잘 못 알아들으니까 중간중간 소리를 높여서 했던 말을 강조하는  거슬렸다. 설마 이 상태로 계속 가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남편 목소리가 들려서 아줌마의 통화를 밀어내고 집중했다. 남편이 통로 앞 침대 나 보다. 

 물리치료사의 안내와 설명에 어찌나 얌전하게 '네, 네' 하고 대답하는지 착한 중학생 같아서 웃겼다.



옐로우 계열 체크커튼은 병원 공통인가

       




 비어 있던  침대에도 어떤 아저씨가 왔다. 물리치료사가 아저씨에게 '서비스로 안마를 해 드리는데 바닥 안마기를 켜 드릴까요?'라 으니 '네' 한다.

 아까 나를 안내한 물리치료사는 '바닥 안마 해 드릴까요?'라고만 물어서 뭔지 몰라 일단 거절했었다. 침대 바닥에 안마기가 있어 물리치료를 하는 동안 주는 서비스였나 보다.

 맞은편 침대에서 둥두두두두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만으로도 엄청 시원할 것 같다.

 저런 걸 줄 알았으면 나도 해 달랠 걸 그랬다. 다음번에는 바닥 안마를 켜 달래야겠다.

 

 마지막 온찜질 15분 단계에 이르렀다. 남편의 침대 쪽은 조용하고 아저씨의 침대에선 두두두두하는 안마기 소리만 들린다. 눈을 감고 들으면 먼 데서 헬리콥터가 비상할 때 나는 소리 같기도 하다.


 물리치료 마치고 로비로 오니 창밖에는 어느새 석양이 지고 있었다. 남편이 끝나길 기다리며 밝음과 어둠이 섞이는 하늘을 구경했다.

 2만 얼마에 엑스레이 검사, 초음파 검사, 전문의의 비유와 설명, 30분의 다정한 물리치료까지 받았다니. 이런 혜택을 받는 구조를 만들어 준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물리치료를 받아 온몸이 노곤하고 마음까지 따뜻해서였나,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을 꼭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웅장한 다짐까지 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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