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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Sep 22. 2024

장남의 장남의 장남

 3대가 모여 1박 2일을 보낸 추석이 지났다. 시부모님, 큰집에서 3명, 우리 집에서 3명 이렇게 총 8명 명절치고는 단출하다 할 구성이었다. 큰집에서는 큰엄마가 오지 않았고 우리 집에서는 큰딸이 빠졌다.


 장남 아버님, 장남의 장남 아주버님, 장남의 장남의 장남 장조카가 중요한 인물로 여겨지는 명절 차례상도 변함없이 차려졌다. 남편은 '장남의 차남'이라서 조카보다 차례상 앞 서열이 낮다.

 

 여든이 넘으신 어머니가 주관하시는 차례상은 어머니의 기력을 반영하며 금씩 느슨해진다. 어머니는 몇 년 전에 한번, 아들네에게 제사 일절을 넘기고 싶다는 뜻을 넌지시 비췄으나 뤄지지 않았다.

 나는 큰집의 입장도 어머니의 마음도 모두 이해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가 이 역할을 지탱하시는 동안 기꺼운 마음으로 돕는 것이다. 어머니도 자식들도 이것이 유한한 행사라는 것을 잘 안다.


올 추석의 차례상


 어머니께 왜 제사를 놓지 못하시는지 여쭤본 적이 있다.

 지금까지 자식들이 크게 나쁜 일 없이 사는 것은 조상을 챙긴 덕이라 생각돼서 그렇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아직 할 수 있는데 이 제례를 스스로 멈추는 것을 불안하게 여기셨다.

 흔히 '진짜 조상 덕 받은 사람들은 명절에 해외여행 다닌다'고들 하지만 리나라 제사의 주체인 시가, 시어머니의 결단이 중요하다. 나에게 시키시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가 혼자 하실 수 있을 때까지 하시겠다는 의지에 따르는 수밖에.

 다르게 생각하면 추석, 설 두 번의 차례와 하루에 모은 기제사 한 번 이렇게 세 번의 사를 혼자 준비하실 수 있을 만큼 어머니가 아직 건강하시다의미도 된다.



 

 1960년대부터 대한민국에서 7남매의 맏며느리로 살아온 큰어머니는 당신의 딸들뿐 아니라 조카딸인 나에게 '가난한 집 장남에게는 시집가지 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전통사회에서 장남은 제사를 이어가고 부모를 부양하는 책임을 지는 대신 재산의 대부분을 물려받고 가족 위에 군림하는 권도 부여받았다.

 만약 가난한 집 장남이라면 물려받을 몫은 책무는 그대로일 테니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현대는 장차남과 딸을 구분하지 않고 똑같은 자녀로 보기 때문에 장남이라고 해서 무엇을 더 해야 는 건 아니다.

 가만히 보면 '장남'으로 태어나 중년의 나이를 넘 기성세대는 그 역할을 하든 하지 않든 장남의 숙명을 내포한 DNA를 가진 것 같다.

 러나 그들 세대는 자녀를 하나 아니면 둘 낳 집이 많므로 금 2,30대 남 중 장남 아닌  드물다. 

 나의 큰어머니가 맏며느리던 과거와 내 친구들이 맏며느리인 현재, 그리고 딸들이 맏며느리가 될 미래의 가족 문화는 시류에 맞게 진화한다.


 일 년에 몇 번 만날 때마다 시아버님은 큰집  조카에게 '너는 장손이고 곧 서른이 되는데 언제 결혼할 거냐'말로 아버님이 옳다고 믿는 가치관을 주문하신다. 오히려 옆에서 듣는 사람조마조마 뿐 조카는 가만히 웃기만 다.

 러더니 이번에는 할아버지에게 '저 비혼인데요'라 대답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고놈, 이 컸네.



 

 어느새 나는 며느리보다는 시어머니에 가까워지는 나이가 돼 간다.

 명절을 대하는 마음도 달라졌지만 명절 풍경도 달라졌다. 시댁에서 보내는 추석도 예전처럼 치러야 할 손님이 많고 여자들끼리만 해야 할 일이 많고 며칠씩 고 오는 것도 아니라서 오히려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맘때에는 특히 명절, 고부, 제사 등등의 소재로 다양한 하소연과 주장들이 몰아친다. 크게 보아 시대가 바뀌는 경향은 맞지만 개별적인 문제와 선택지는 집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누구의 댓글도 누구의 조언도 내 것이 될 수는 없어서 어렵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마음을 투영한 바람을 안고 산다. 더 늦기 전에 장손 며느리를 보고 금상첨화로 장남의 장남의 장남의 장남을 안아보고 싶은 할아버지의 바람이나,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나 혼자 편하게 살고 싶은 손자의 바람은 정답이나 오답이 아닌 그냥 경우의 수다.


 나는 란히 앉은 할아버지와 손자의 바람이 적당히 톱니를 맞춰 굴러가 주기를 바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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