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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를 닦다가

by 이명선

인바디 체중계 위에 먼지가 보인다. 얼마 전에 닦았는데 또 생겼다. 먼지는 물체 위에 있을 때 뽀얀 색이거나 속이 비어 색이 없을 것 같은데 흰 걸레로 닦아 보면 검은 재들로 모인다.


밤사이 지구가 돌아 다시 제 세상을 만난 아침 햇살이 밀려드는 시간에 먼지가 더욱 잘 보인다. 햇살은 큰 잘못 안 하고 가만히 엎드린 먼지조차 숨겨주지 않고 드러낸다.

새까만 티브이에 햇빛이 비치면 점점이 박힌 먼지가 도드라진다. 티브이에 붙은 먼지 제거에는 일회용 정전기 청소포 만한 것이 없다. 쉽게 생각하고 물티슈를 뽑아서 손을 댔다간 새로운 얼룩까지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 물티슈는 어떤 재질의 표면(유리와 자동차 보닛이 생각난다)에 사용하면, 내가 옛날에 키웠던 아프리카왕달팽이가 기어간 흔적 같은 자국을 남긴다.

정전기 청소포 한 장을 잘 접어 티브이 액정의 맨 위, 맨 끝에서 시작해 일직선으로 내린다. 속도는 너무 빠르거나 느려도 안 되고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청소포를 누르며 이동해야 한다.

속도가 너무 빠르면 정전기가 놓치는 먼지들이 생기고, 너무 느리면 정전기에 끌려 청소포에 묻었다가 다시 떨어지는 녀석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반드시 한 방향으로만 닦아야 한다. 내 멋대로 회전하거나 지그재그로 닦으면 정전기가 회오리춤을 춰서 먼지들을 확산시킨다.


정리하자면, 정전기 청소포를 잘 접어 한 방향으로만 일관성 있게,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속도로 촘촘하게 페인트를 칠하듯 걸레질을 해야 티브이 액정에 앉은 먼지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아니, 먼지를 닦는 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한번 해 보면 깨닫는다.


나도 30년 살림을 괜히 한 게 아니다.



'먼지가 되어'라는 노래는 지금보다 한 세대 전에 나온 옛날 가요다. 이후에 각종 노래경연 프로그램에서 불리고 가수들이 잊을 만하면 리메이크를 해 준 덕에 원곡 나이보다 어린 사람들도 대부분 아는 명곡이 되었다.


나는 어떤 노래를 좋아할 때 가사에 중점을 둔다. 멜로디가 아무리 좋아도 내가 시간을 내서 외워 부르고 싶은 노랫말이어야 마음이 간다.

'먼지가 되어'의 가사를 뜯어보면 '바하의 선율에 젖은 날'이라거나 '가슴을 모두 모두어 시를 써 봐도 모자란 당신'처럼 싸이월드스런 허세와 치기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세련된 멜로디와 전체적인 느낌을 감안할 때 허용 가능한 수준이다.


화자는 왜 하필 먼지가 되어 당신의 곁으로 날아가고 싶다고 했을까.

보고 싶은 상대에게 날아갈 때 ‘새'가 되는 것은 고려가요부터의 클리셰라 지겹다. 또 '새'는 닫힌 문이 있다면 들어갈 수가 없다. 머리로 문을 들이박기보다는 누군가의 공간 밖에서 울며 바라보는 수동적인 아이템이다.

반면에 '먼지'는 공기가 흐르는 곳이라면 미세한 틈만으로도 어디든 갈 수 있고 없애도 없애도 계속 생기는 강인한 존재다. 그리고 이해인 시인은 먼지를 '정답다'고 했다.


하얀 민들레 솜털처럼

먼지가 정다운 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때문이지

어느 날

나도 한 줌

가벼운 재로 남게 됨을

헤아려볼 수 있기 때문이지

-이해인, '먼지가 정다운 것은' 중에서


먼지가 되면 그 사람의 침대 프레임에도 슬쩍 앉을 수 있고 가방 안이나 옷깃에 매달려서 어디든 같이 갈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조금 게으르거나 먼지에 관대하다면 꽤 오랜 시간 지근거리에서 생존할 수 있으니 겉모습이 귀여운 새보다 낫다.


요즘은 사랑하는 사람의 하루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방법이 많다. 이미 헤어졌거나 짝사랑의 상대라 해도 굳이 먼지가 되지 않더라도 실컷 엿볼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단, 법과 관습의 테두리 안에서 다가가는 '선'만 지키면 된다.


모두의 행복을 지키는 선 따위 무시하고 상대방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저 찰싹 붙어있고 싶다면, 그때는 먼지가 되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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