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Why now, why Start up?

by 정대표

누구에게나 때는 있는 모양이다.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내가 싱가포르에서 스타트업에 몸 담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 내 모습은 20년 전 내가 상상했던 나의 미래 모습이 아니다. 직장 초년생 시절 해외 근무는 멀리 있는 꿈같은 것이었다. 외국어 실력이 좋지 않았던 것만 그 이유는 아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면 좋은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이직이었다. 직장 경력 3년차에 지인 소개로 국내 대기업에서 해외에 본사를 둔 대기업으로 이직을 했던 것. 그런데 영어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열심히 하면 뭔가 더 높은 자리, 다양한 국적의 사람과 일할 수 있을 거란 꿈이 생겼다. 하지만 그 꿈은 수년이 흘러 깨졌다. 내 능력도 물론 부족했겠지만, 일반적인 제조업에서 한국인에게 주어지는 기회 자체가 적었다.



위로 올라가는 건 힘들어 보이니 옆으로 내 역량을 키워보기로 했다. 다른 산업군으로 옮겼고, 다른 직무를 시작했다. 세일즈와 마케팅을 모두 해야하는 사업 개발 업무로 이직했다. 열정적으로, 그리고 즐겁게 일을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다시 이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전까지 해보지 못했던 B2B 세일즈를 하는 업무였다. 내 성향에 맞는지 결과가 좋았다. 그 덕에 와이프를 따라 싱가포르로 올 때 마케팅 자리를 하나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일은 내가 잘할 수는 있지만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니었다. 세일즈와 마케팅을 두루 거쳤지만, 세일즈가 내 성향에 맞다.



이런 고민을 할 무렵 스타트업에 길이 보였다. 애초에 W 대표가 싱가포르에 지사를 열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다. 내가 싱가포르에서 비즈니스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고, 지금까지 글을 통해 이야기했듯이 하나하나 의논해가면서 진행했다. 따라서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가는 데 있어 큰 내적 갈등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단, 이 회사가 앞으로 얼마나 생존할 것인가에 대한 염려는 있었다. 앞으로 10년, 20년 가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다. 나는 3년을 봤다. 3년간 이 회사가 생존을 하고, 그동안 내 포지션에서 일할 수 있다면 나도 회사도 서로 윈윈이라고 봤다. 3년이면 내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리스크는 더 있지만 그에 비해 내가 얻는 건 무척 커 보였다. 시간과 돈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끌렸다. 대표의 성향도, 그리고 내 성향도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스타트업은 어디서 언제 어떻게 일하든 결과를 만들어낸다면 문제가 없는 회사 문화를 가졌다. 그리고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해외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내게 큰 보상이다. 게다가 실패를 용인하는 스타트업 특성상 너무 재지 않고 일단 해볼 수 있다는 점은 내 성향과도 잘 맞다. 게다가 이 업계에서는 선두에 있고, 제품의 파이프 라인 역시 튼튼해 보인다는 점도 끌렸다. 그야말로 혁신적인 제품으로 고객의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제품을 다룰 수 있다는 건 비즈니스를 하려는 사람에게 꿈과 같은 것이다.



이제 가족과 상의하는 문제가 남았다. 와이프는 워낙에 찬성을 했다. 이미 와이프가 안정적인 회사에 몸담고 있으니 나 하나는 조금 더 리스크 부담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단 부모님은 조금은 생각이 다르셨다. 물론 분가를 했고 지금까지 중요한 의사 결정은 내가 해왔지만, 부모님의 뜻을 따르지는 못하더라도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리는 게 도리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밤낮없이 울리는 슬랙, 24시간 어디에선가 일을 하고 있는 동료와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서는 나도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처음인 싱가포르 지사를 끌고 나간다는 것도 부담이 없는 건 아니다.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부족하다. 여유 있게 워라밸을 지켜가며 일할 수 있는 대기업과는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지금의 삶이 너무 만족스럽다. 사업가 기질이 있는 내 성향과 잘 맞는 일 같다. 그럼에도 재정적 부담은 없다. 즉 남의 돈으로 사업을 하니 내게는 너무 잘 맞는 일이라 생각한다. 신이 난다.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꽤 했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다. 예전에 내 사수가 했던 말이 문뜩 떠오른다.



깜 작가, 나 입사 초기엔 말이야, 너무 회사에 가고 싶어서 일요일에 잠을 못 잤어.
일이 너무 재미있었어.



나도 똑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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