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법인 은행 계좌를 트는 작업을 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싱가포르에서는 등재 이사가 은행에 방문해야 한다. 지사 이사로도 등재되어 있는 A 대표가 언제 싱가포르에 쉽게 방문할 수가 없으니 지점에 방문하지 않고 계좌를 틀 수 있는 은행 중심으로 알아봐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은행 C. 오늘 C 은행과 대표의 신분 확인을 비디오 컨퍼런스를 했다. 곧 법인 계좌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C은행과 우리 회사의 재무 시스템이 연동이 되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 부분을 재무 담당자가 확인하기로 했으니 감감무소식. A 대표는 아마 다른 일로 바빠서 그럴 것이라 한다. 늘 이런 식. 사람이 늘 부족하니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매달릴 수밖에 없는 스타트업의 일상이다. 대표가 한 마디 덧붙인다.
"결국 지사장이 할 일에요. 누가 해결해 주지 않아요. 이게 나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이 잘 안돼요, 저도."
하하, 그렇구나. 전혀 해본 적 없고 지식도 없는 재무 시스템, 그것도 IT 기반 재무 시스템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는구나. 회사 내에 그 누구도 잘 알지 못하는 일을 해 가야 하는구나. 끊임없이 모르는 것 투성, 더 나아가서는 어떤 일인지 모호한 일, 알지 못하는 일 투성이구나. 그럼에도 비즈니스는 진행되어야 한다. 지금 내 선택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모르는 모호한 상황을 계속 끌고 가면서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구나. 당장 제품을 팔면 돈을 받을 계좌는 만들어지겠으나, 회계 처리에 애를 먹게 될 수 있겠구나. 이것 때문에 날밤을 세울 수도 있겠구나.
오피스를 구하는 일도 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처음 해보고 잘 모르는 일이다. 공유 오피스를 알아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가격과 조건이 다르다. 돈에 제한이 없다면 좋은 위치에 넓은 오피스를 구하면 좋겠으나, 명시된 제한은 없으나 정도껏 해야 한다. 다행히 이건 어느 정도 마음을 굳혔다. 조건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지만, 동남아 국가 대부분에 브랜치가 있는 공유 오피스로 하려 한다. 아무래도 해당 국가에 출장을 가게 되면 적어도 핫 데스크에는 액세스가 되니 비용 절감도 되고 말이다.
대기업에서 일하던 경험을 돌이켜 보면, 내가 모르는 일을 맡아도 일을 진행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회사 내에 도움을 받을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통해서 적어도 일의 실마리는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다. 싱가포르에 직원은 나 하나, 이곳 사정을 아는 것도 나 하나, 이곳을 책임지는 것도 나 하나다.
이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는 적어도 덜 모르는 상태로 아무것도 모르는 동료들을 이끌고 싱가포르 오피스를 책임져야 한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고 지식이 쌓이면, 이렇게 눈에 보이는 조직의 무지함이 메꿔질 거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지금껏 일해왔던 대기업처럼 아는 것이 많은 조직으로 진화해 가겠지. 이런 길이 내 앞에 있다는 게 한 편으로는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보다는 더 기대가 된다. 모르는 일을 하는 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새로운 경험이라 그런지 약간은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