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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 아빠 3일째

전업 아빠가 되어 좋다

by 정대표

와이프가 월요일부터 출근하면서 전업 아빠가 되었다. 고작 며칠이긴 하지만, 난 전업 아빠 노릇이 좋다고 느낀다.



우선 아이들과 하루 종일 붙어 있을 수 있어 너무 좋다.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긴 해도 아이들과 늘 살을 맞대고 있는 게 난 좋다. 아이들이 내게 하는 애정표현도 더 많아졌다. 내게 더 많이 안기고 더 자주 날 찾는다. ‘아빠~~’하고 다정하게 날 부를 때 난 너무 기분이 좋다. 그리고 아빠랑 하루 종일 있는 걸 아이들도 즐기는 눈치다. 특히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요즘 아이들은 비밀 놀이를 한다. 갑자기 내게 비밀 하나 말해준다고 하면서 귓속말하는데, 귀가 무척 가렵긴 하지만, 나도 아이들의 비밀이 뭔지 궁금해서 끝까지 듣게 된다. 물론 아직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적은 아이들이라 손이 아직 많이 간다. 밥도 떠먹여 줘야 할 때가 있고 씻는 것도 도와줘야 한다. 수영을 하지 못해 튜브를 태워도 늘 아이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게다가 말도 무척 안 듣는다. 그럼에도 다른 일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아이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두 번째로 돈 버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다. 직장에 다니지 않으니 가족 외에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아서 너무 좋은 거 같다. 난 사람 만나는 걸 즐기고 또 그런 일을 쭉 해왔지만, 이렇게 일에서 벗어나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게 내가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좋은 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몸은 아이들 보느라 피곤하긴 해도 정신적인 에너지는 점점 올라가는 거 같은 느낌이다. 가끔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생각하면 고민이 되기도 하지만, 금세 잊고 지금에 집중하게 돼서 좋다. 이런 상황이 끝없이 계속된다면 지금 같은 마음이 아닐 수 있겠다. 우리나라 정서상 남자가 전업 남편이 된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업 남편으로 사는 기한이 정해져 있으니 방학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좋은 생각만 든다. 게다가 깔끔히 인수인계를 한 덕인지 전 직장 일로 연락이 오지 않는 것도 이런 분위기에 크게 일조를 하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가족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되어 좋다. 아이들이 없었을 때 와이프와 내가 부부로서 잘 살아왔음에도 우리 둘이 ‘가족’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던 거 같다. 하지만 아이들이 생기고 또 아이들이 자기 의견을 내기 시작하면서 나, 와이프, 그리고 아이 둘까지 가족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일을 하느라 아이들과 와이프를 그렇게 많이 돌아보지 못했던 반면 지금 여기서는 아이들과 와이프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고, 가족한테 어떤 게 좋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거 같다. 사소하게는 오늘 가족과 어떤 식사를 할까부터 시작해서 아이들에게 어떤 유치원이 좋을까 어떻게 교육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일을 할 때는 그런 생각까지 잘 미치지 않았다. 나 자신뿐 아니라 우리 가족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되는 건 좋은 변화 같다.



이제 고작 며칠이고 아직도 더 많은 날이 남았지만, 그냥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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