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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 아빠의 하루

평범한 하루, 하지만 무척 바쁘다

by 정대표

아침에는 주로 서은이가 먼저 일어난다. 아침잠이 없는 건 와이프를 닮았다. 새연이는 생긴 것도 날 많이 닮았지만 잠버릇도 역시 날 닮았다. 아침잠이 많다. 보통은 이렇게 차례차례 아이 둘이 일어나면 다 같이 아침을 먹으러 간다. 대략 8시쯤 아침을 먹는 셈인데, 와이프는 같이 아침을 먹고 택시로 회사에 출근한다. 그러고 나면 아이 둘은 내 몫이다. 데리고 올라와 이를 닦이고 세수를 한다. 그리고 나면 만화 영화를 한 편 본다. 영어 공부도 시킬 겸 자막 없이 영어로 보여주는데, 간혹 들리는 단어가 있으면 와서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신기 방기한 건 어쩔 수 없는 딸 바보라 그렇다.


레지던스 수영장

이렇게 아침 시간을 보내면 수영장에 갈 시간이다. 수영복으로 갈아입히고 선크림을 듬뿍 발라준다. 여기도 요즘 날씨가 그렇게 덥지는 않아 오전 일찍 수영하는 건 조금 춥다. 11시쯤 되어 나가야 아이들이 춥지 않다. 그렇게 한두 시간 수영을 하면 아이들 밥시간이다. 처음엔 근처 호커 센터에 가서 밥을 먹여봤는데, 어른이 먹기엔 괜찮아도 우리 아이들 먹이긴 조금 부실한 거 같아 그랩 푸드로 조금 더 나은 식당에서 밥을 시켜주던가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내가 차려준다. 점심까지 먹였으면 이제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시간이다. 스스로 퍼즐을 맞추기도 하고 나와 같이 레고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한 4시 정도 되는데 뭐 할지 고민을 할 시간이다. 다시 수영장을 가기도 하고, 레지던스 놀이방을 가기도 한다.


레지던스 놀이방


이렇게 놀고 나면 와이프가 올 시간, 와이프와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애들을 먹인다. 저녁을 먹고 나면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와이프는 아이들과 잠시 놀고 아이들을 씻긴다. 애들이 누구랑 자느냐가 남았는데, 주로 번갈아 같이 자는 편이다. 안방에는 킹사이즈, 작은 방에는 퀸사이즈 침대가 있다. 안방에서 아이 둘과 우리 부부 모두가 자기엔 무리가 있기도 하고, 한 명이라도 편하게 자야 해서 한 명은 아이 둘과 같이, 나머지 한 명은 작은 방에서 혼자 잔다.


카레, 우유를 넣었더니 부드러운 맛이 일품

재미있는 건, 특별한 이벤트 없이 평범하게 하루를 보내는 편인데, 놀랍게도 시간이 엄청 빠르게 간다. 무척 바쁘게 느껴진다. 더더군다나 코로나 바이러스 덕에 지인도 만나지 못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빨리 시간이 가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또 요리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된 게 재미있다. 요리를 잘하는 어머니를 두었고, 맛에 민감한 편이라 요리할 일이 있으면 내가 하는 편인데, 여기서는 주로 내가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요리하는 횟수가 늘었다. 파스타와 스테이크는 벌써 여러 번 해 줬고, 어제는 카레를 처음 해봤다. 맛있었는지 아이들이 싱가포르 와서 처음 밥을 깨끗이 다 먹었다. 마지막으로 전업으로 아이 둘을 키운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난 무엇을 더 하게 될까. 잠시 하는 전업이라 아이들과 놀고 밥을 해주는 정도지만, 만약 전업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극성 아버지, Soccer papa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극성이라 불려도 좋다. 가능한 좋은 교육받게 해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스스로 자기 길을 찾을 수 있게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될 거 같다.



아빠가 아이 둘을 전업으로 보게 된 건 Luxury 한 일인 거 같다. 능력 있는 와이프 덕에 잠시지만 호사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주장이 생기기 시작하는 6살 (싱가포르 나이로는 5살, 만 나이로는 4살)이라 그런지 부모 말은 잘 듣지 않아 힘들다. 하지만, 차근차근 설명해주면 알아듣는 거 같기도 하고, 제법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 아이들이라 보람도 크다. 나중에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이 기간을 어떻게 기억할지도 궁금하다. 기억하지 못할 확률이 더 크겠지만 말이다.

산책 나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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