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건 숙면을 위하여!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걷는 어두운 길. 이 길을 따라 쭉 걸어가면 5분도 안되서 우리집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이 길이 마냥 짧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밤이 되면 어김없이 텅비는 길. 오직 나와 엄마만이 걷는 이 길은 평화롭다. 내가 신이라면, 그래서 소리를 구분해 들을수 있다면 한 번쯤은 나와 엄마의 수다소리, 슝슝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같은 인공적인 소리를 지워내보고 싶다. 그러면 아마 이 길 위에는 개구리 소리만 들리겠지. 펜스에 둘러쌓여 있는 습지에서 내는 개굴개굴 소리만 들릴것이다.
내가 신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귓속에는 개구리 소리만 들리는 순간. 그러니까 개구리 소리처럼 거슬리지 않고 나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소리만 울려퍼지는 순간. 바로 내가 잠들 때 이다. 우리 가족은 잠을 다같이 잔다. 한 방에서 침대없이 이불을 두텁게 깔고는 넷이 붙여서 말이다. 공간이 부족한 것도, 침대가 따로 없는 것도 아니지만 세상의 불이 꺼지고 고요해지면 다같이 한방에 모인다. 이는 내가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진 습관 같은 거다. 나는 간혹 이런 우리 가족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소수 민족처럼 느껴질때가 있다. 그만큼 이러한 잠자리는 특별하고 간직하고 싶은 고유 문화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습관이 요즘들어 조금 바뀌었다. 습관의 변화는 아빠의 추방으로 시작되었다.
어릴적 나는 잠을 어떻게 잤을까? 우선 지금처럼 늦게 자지도, 잠이 밤늦게 까지 안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3대 욕구중 하나가 수면욕이라는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 금욕 생활중인 것이나 다름 없다. 내 장래희망은 스님이 아니다. 그러니 나에게 이 질 나쁜 수면은 고쳐야 할 과제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나의 레이더망에 가장 먼저 잡힌것은 아빠의 코골이 소리였다. 나에게 아빠의 코골이 소리는 이제 더 이상 저 멀리 들려오는 개구리소리가 아니라 무자비한 무법자가 되어버렸다.
어릴적 추억을 부정하는 것 같은 껄끄러움과 숙면을 지켜야 한다는 수면본능 사이에서 나의 마음은 돌풍 사이에 있는 갈대처럼 갈팡질팡 방향을 못 잡고 있었다. 잠을 자러 안방을 떠나가는 아빠의 축 처진 어깨며 아침에 깰때마다 익숙치 못한 곳에 자서 뻐근하다는 등이 나의 죄책감을 쿡쿡 건들였다.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게 맞는가. 공존을 택하는 것이 맞는가. 나의 머릿속은 그리스 시대 철학자가 일생일대의 결론을 짓는 것 마냥 얽기섥기 얽혀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내 마음의 갈대가 한순간 멈춰버린 이유는 정말 눈물나게도 상쾌한 아침을 맞아버린 나의 몸 때문이었다. 기분좋은 아침, 꿈을 꾸지 않는 깊숙한 잠. 결국 나는 이 달콤한 것들에게 승복해 버렸다. 결국은 수면본능이 추억을 이겼으며 개인의 이득이 죄책감에게서 승리했다.
그럼에도 우리가족이 더 크게 싸우거나 아빠가 봉기를 일으키지 않은 이유는 바로 대화 때문일 것이다. 오늘 뭐 먹었는지 부터 오늘 혼나서 속상했다는 이야기까지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우리집을 가득 채우는 순간이 있다. 만약 우리 가족의 말이 눈으로 보인다면 다른 사람이 우리집을 보았을때 우리가족은 보이지 않을게 분명하다. 수많은 말들에 파묻혀서 말이다. 그런 말들이 요즘 들어서는 잠에 대한 말로 바뀌었고 코골이라는 말이 곧 각방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이 과정은 격렬한 말싸움의 장이 아니였고 그저 각자의 입장을 자신의 말로 이야기하는 수다의 장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빠는 자신의 각방 사실을 납득했으며 나는 잠을 지켜낸 성공적인 파수꾼이 될수 있었다. 이 이유는 훌륭한 조기교육 때문이었다.
이 조기교육은 영어나 수학같은 학문적 교육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법,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법에 대한 교육이다. 혹자는 이러한 교육이 왜 어릴적 부터 이어져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특별한 커리큘럼으로 다른 사람을 보다 잘 이해해 나갈수 있다. 누군가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기는 어렵다. 그래, 다시 말하자면 어렵다기 보다는 궁예가 아닌이상 한 사람의 생각을 전부 읽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조기교육 17년차가 이야기 하자면 이 교육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때에 따라 아주 장엄한 무언가를 만들어 낼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해나갈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다른 사람이 말할때 끼어들지 않으며 경청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한 사람이 먼저 “오늘 어땠어?”라고 말의 시작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수학 문제는 개념을 배우고 적용하듯 앞서 말한 우리 아빠의 코골이의 경우를 대화에 넣어본다면 나는 “오늘 어땠어?”라는 말에 “오늘 너무 피곤했어”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곤 다시 우리집은 말로 가득 찰것이다. 피곤이라는 말이 잠으로, 잠이라는 말이 코골이로, 코골이라는 말이 결국에는 각방으로 바뀌어 나갈것이다.
모든 것은 숙면을 위하여! “승리했다”는 말은 둘이 싸웠을 때 피해가 더 적은 쪽을 묘사하는 말이다. 즉, 둘 모두에게 피해가 있고 다른 관점으로 봤을때에는 승리했다라는 말이 반대쪽을 묘사하는 말로 바뀔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나의 죄책감은 모두 소멸된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숨쉬듯 느끼지 않을수 있는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 특별한 교육 덕분이며, 평화로운 개구리 소리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