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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지 Aug 12. 2023

중년 여성을 뭐라고 부르지?

깡지가 사는 법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어머니 말벗이 되어 드리려고 애쓴다.

몇 해 전에 "어머니는 어떤 선물이 가장 좋으세요?"라고 했을 때 잠시 뜸을 들이시더니 "아무래도 전화 자주 하는 게 제일 좋지."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며느리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잠시 생각하신 모양이다.


션이 크고 나니 나도 여유가 생겨 어머니께 좀 더 신경 써드리려는 중이다.

그래서 주말 아침에 한 번 정도는 어머니와 산책을 한다. 날이 너무 무더운 날은 어머니가 더 지치실 거 같아서 조금 시원한 날 함께 걷는다. 이제 곧 말복이라 그런지 아침저녁은 제법 시원한 바람도 분다.


멀리 가는 건 아니고 동네 산책로 한 바퀴 돌며 어머니와 이야기 나누는데, 그저 어머니만 위한 시간이 아니라 어머니의 지혜를 얻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나이 되고 보니 점점 여쭙고 싶은 게 많아진다.

그동안 아이 키우고, 일하며 바쁘고 힘들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긴 세월을 종갓집 맏며느리로써 큰집 살림을 도맡아 해 오시며 얼굴 한 번 찡그린 법 없이 그렇게 덕을 베풀고 사셨다.

"어머니 이 때는 어떻게 참으셨어요?", "어머니 억울하지 않으세요?" 등등 이전에 사회가 요구한 여자의 역할에 대해 질문드리면 참으로 평온하게 대답을 해 주신다. "나만 그랬나, 그때는 다 그랬지."


그러다 우연히 장명숙 님 이야기가 나왔다. 밀라논나로 유튜버 활동을 하실 때 워낙 이 분 말씀이 좋아서 어머니께 링크정보를 보내 드린 적이 있다. 어머니보다는 훨씬 젊으시지만 어딘가 닮은 부분이 있어서다.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그런데 그이가 자기를 '할머니'라고 하는 건 조금 그래"라고 하신다. 나는 장명숙 님이 '할머니가~'라고 하시는 말씀이 정감이 가던 터라 어머니가 하신 말씀의 뜻을 잘 몰랐다.


어머니는 오래전 이야기를 간단히 해 들려주셨다.  


손주가 태어났을 때가 60대이긴 했으나 10년 이상 젊게 보이셔서 누가 봐도 우리가 생각하는 '할머니' 분위기가 아니었다. 할머니라고 불린 적이 한 번도 없다가 손주 데리고 다니면서 '여사님'에서 '할머니'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처음 이리 불리었을 때 낯설었다며 적응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고 하셨다.


짧은 이야기였는데,  며칠 후 갑자기 어머니와의 대화가 다시금 떠올랐다.  


나는 내가 50세가 되었을 때 별로 심란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갑기까지 했다. 40대의 끝자락을 거머쥐고 있는 것보다 새롭게 시작하는 50세가 더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매년 먹는 한 살인데, 48세에서 49세로 가는 것보다 49세에서 50세로 가는 게 더 슬플 이유가 없었다.

마침 션이 성인이 되고 대학에 가는 시점과 맞물리니 이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내 나이와 친해지기'에 무리 없이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 말씀 듣고 보니, 나는 적응이라고 할 만한 변화가 아직 없었던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여전히 일하고 있다 보니 사회에서의 나의 비중이 더 커서다.


그러고 보니 사무실을 벗어나서 아이와 함께 있지 않을 때 내 나이대가 뭐라고 불리고 있는지 영 헷갈린다.   

'아줌마' 아니면 '아주머니'?  '여사님'이라고 부르나? 아니면 '어머니'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저기요?'인가?  

그러고 보니 '아줌마'라고 불린 적도 없다.

거의 대부분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고 있고 직함으로 불리다 보니 지금까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들에게 물어보니, 주로 '선생님', '사장님'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길에서 어떤 중년 여성 또는 중년 남성이 지갑을 떨어뜨렸을 경우 이를 주워서 줄 때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아마도 '저기요'라고 할 듯하다.


중년의 여자들은 호칭을 잃어버린 나이대인가 보다.  


내 나이대를 포괄하는 호칭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다 보니 '아, 나도 벌써 그 나이가 되었구나'를 느낄 계기가 없었다. 그래서 '내 나이와 친해지는 것'에 적응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을 한 것 같다.

아줌마, 아주머니, 여사님, 할머니 중 뭐가 될지 몰라도 길에서 이런 호칭으로 불리는 날이 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하다.


https://blog.naver.com/jykang73/22285026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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