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게

짭잘한 연어절임

바다에 반해버린 유진이에게

by 바지락

무의식적으로 내면은 이성간 연애와 사랑은 이상하리만치 불합리적인 관계라고 생각했다. 말도 안 통하는 다른 종의 인간에게 주는 만큼 받아야 하고 받는만큼 주어야 하는 무엇보다 이해타산적이고 계산적인 행위가 사랑인가.
겸허하고 이기적이게도 아무도 자신의 불행은 자랑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걸 도마 위로 끌어내지 않았다.


새롭게 맛본 단 음식에 인류의 미각이 급속도로 퇴화한 것 마냥 그동안과는 다른 관계의 정의와 허용된 새로운 몸짓 언어 사용에 위태하게 걷던 갈매기처럼 날아오르는 법을 모르던 우리 모두는 파도가 치는 대로 휩쓸리듯이 빨려들어갔다. 짭잘한 바다의 내음을 맡기도 전에 락스 물에 잠식되어버린것이다.

불안함과 눈치싸움으로 다져진 톱밥 위에서 더 오래 버티기 대회라도 하는 것 같았다. 올라가기만 하면 칭송을 받았으니 그게 가늘고 약한 나무의 뿌리이던 튼튼한 줄기이던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파도가 쳐도 물 안은 평화롭다.

중학생 때 처음 올라가본 다이빙대에서 내려다본 물결은 고요하고 잔잔했다. 그대로 나와 산소를 집어 삼켜버릴 것만 같았던 짜디 짠 바닷물보다 푸르렀고 네모난 격자 무늬 바닥에 내가 비쳐 보일 만큼 투명했는데 여긴 물고기도 소라게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하고 그립게 만들었다. 바다와는 거리가 먼 동네 수영장의 끝이 보이지 않던 물은 저체온증에 걸릴 정도로 차가웠고 아무리 내려가도 닿지 못하고 일렁이기만 하는 타일은 내가 걸리기만을 기다리는 올가미 같았다. 내가 마구 발버둥을 치던 그 순간에도 수영장의 물은 일렁이기만 했다. 고요한 물 속은 누구보다 추웠다.


-물 속에 있으면 축축히 젖은 걸 알 수 없다.

초등학생 때부터 다니던 동네 스포츠센터는 구조가 이상했는지 수영장에서 탈의실까지의 길이 멀고도 길었다. 자박대는 발이 차가운 타일에 닿아 튕기듯 걸어도 물에서 불어난 몸뚱이는 그대로였다. 살갗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도, 물 밖을 나오는 것도 싫었다. 제일 고역은 수영복을 벗는 일이었는데 물 속에서는 그리도 팔랑이던 팔다리가 육지에선 끈끈했다. 육지에 사는 우리는 금새 물에 현혹되고 만다.


물 속에 들어가면 귀가 먹먹해지는 경험이 다들 한번씩은 있을 것이다. 끝없는 고요는 공포를 만들었다.

수영장 바닥보다는 늪이었던 파고드는 물결 사이로 빠르게 발을 찬다. 눈을 뜨고 귀를 열어도 어둡고 희미한 물미역이 솜털을 스치는 것만 같다. 축축하고 무거운 몸을 물에서 끌어내기 전까지 어린 나는 물고기를 동경했다.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긴 바다속은 이상적이다. 보고싶은 것이 아니면 볼 수 없으니 타의적으로 지어진, 강력하고 견고히 짜여진 방어책이 내 주위를 말아나갔다.



조용하고 숨막히는 거품 속에 저체온증으로 죽어 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웅크리고 빠져들어가는 남들을 잡아낼 새 없이 철썩이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움켜쥔 모래사장에 손부터 빠졌다. 잡아끌기엔 너무 무거웠고 잡아당기기엔 내가 너무 가벼웠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비늘이 생겨나고 있었다.

작은 소라 고둥을 귓바퀴에 대었을때 들리는 소리와 바다의 소리는 전혀 다르다. 실제 바다는 훨씬 고요하다. 모두가 제 소리만 들을 수 있도록, 바다에 목소리를 빼앗긴 생선들처럼 제 뱃속으로 거대하게 삼켜버린 소리는 특권이 아니었다. 그대로 빠져 죽어 수많은 퇴적물 중 일부가 되어도 아무도 모르리라는 두려움이었다.

내 역할놀이에 관객평가단은 높다면 높은 점수를 줬다.
난 꽤 괜찮은 배우였고 조여대던 코르셋은 그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 주었다. 불쑥 튀어나오곤 하는 다른 염색체에 대한 반감만 아니라면(물론 누르지 못했기에 맨날 끊어내기 바빴다.) 지금 나도 방대한 품평장 속 더 마를 수록 인기가 많은 말린 오징어 수산시장에 전시되어 있었겠지.

( 친구가 괜찮은 애라고 말했지만 결국 일주일 내내 친구가 했던 건 그 애의 무료 금연상담밖에 없었다. )

익사 직전에 타의적, 아니면 본능적으로 뭍에 끌려져 나온 후에도 그애들은 회귀하는 연어마냥 계속해서 물로 되돌아갔다. 그들이 떨구어대던 물웅덩이가 짭잘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본 건 그 웅덩이에 걸려 넘어질까 봐, 사실은 가냘픈 다리에 근육이 없어 뛰지도 못하는목소리 없는 인어들이었다.

너무 담구어 손가락이 퉁퉁 불면 늘 그랬듯이 나오라며 들려오던 엄마 목소리처럼
태양의 길고도 긴 부름을, 갈매기의 다급한 외침을, 온몸을 던진 물고기의 모스부호와 무작정 뛰어들어 구명조끼를 건네주려고 헤엄치는 여자들을 한번만 믿어줘.
그 발끝에서 조금씩 피어난 파도의 뿌리들이 과도하게 수분을 먹고 재빨리 자라나서, 넓고 깊은 색의 우울속에서 메꿔지지 않은 네 눈썹을 간질였으면 해.

미역줄기에 묶였던 지느러미를 물갈퀴로 끊어내 헤엄치고 써본 적 없던 아가미로 숨을 쉬어 보자.

우리는 모두 바다에서 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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