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게

수진이에게

한숨에 글을 읽고 한숨에 글을 쓰고

by 바지락

안녕하세요?

어렸을 때 다니던 학원 선생님이 말투가 공손하지 않으면 문자를 받아주지 않던 까닭에 중학교때부터 어른으로 오해받았던 기억이 있어. 그게 왠지 좋으면서도 불편해서 그렇게 굳어져버렸네. 방금 아는 언니한테도 존댓말로 카톡을 보냈으니 너에게도 수진씨 라고 부를게. 낯선 사람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난 그 낯섬의 설렘을 좋아하거든.

나는 죽음과 형체에 대한 공포가 너무 강했어. 매일 밤 잠에 들기 전에 피난가방을 싸 놓고 잠들기도 했었는데 (피난 용품이라고는 엘범 일기장 손전등과 간식 정도였지만.) 신기하게도 정반대네. 테러가 일어나고 집에 불이 나고 전쟁이 터진다거나 지진이 일어나는 공포를 계속 느껴. 매일 밤 유언장을 쓰려다가 망설이고 죽음을 외면하고 살아. 하루에 자살로 죽는 사람이 36.1명이라는데 우리 반 만한 수의 사람들이 경고라도 해 주는 것 같아 겁이 났어.

더 어렸을때 나는 방이 살아있다고 생각했단다. 외출하기까지 15분이 걸렸지. 엄마 몰래 내 방의 모든 벽과 가구에 뽀뽀를 해주고 금방 올게 라고 속삭이면 기분이 너무 좋았거든. 책상에게 책장에게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혼자라고 느끼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아. 사람보다는 가구에 더 애착을 느끼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애정에 나를 쏟아부었어. 이불에게 잘 자라고 해주는 것 만큼 모순적인 말이 또 있을까,
몸이 누군가에게 보여질까 느끼는 공포심을 신기하게도 나는 엄마에게서 느끼기 시작했어. 내가 문을 닫고 들어갈 때마다 내 방에 cctv를 달아 놓겠다고 간간이 말할 때부터 였던 것 같네. 그때도 그 형체을 찾아 헤맸어. 방 구석구석을 뒤지고 천장을 꼼꼼히 체크했는데, 역시 나를 조여오던 공포의 존재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었지.

내 공포는 발끝과 발끝이 오그라드는 감정인 것 같아.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등장하면서도 금세 무력해지는. 가끔 발 근육이 이상하게 끊어질 듯 꺾일 때가 있는데 그때 느끼는 실체 없는 아픔과 같은 느낌이야. 내 발은 그대로인데 근육과 관절이 금방이라도 끊어져버릴 것만 같아. 실체는 없지만 구조는 있고 현상은 있는 공포라는 건,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만큼 벗어나기 어렵더라.


조금 자란 나는 이제 그 순간을 기다려. 그리고 가만히 들여다보지. 아무 생각도 해결도 없이 그냥 기다리는거야. 발이 오그라들때 근육이 뭉치고 다시 펼쳐지고 꺾이는 느낌이 오면 눈을 감고 내 발을 상상해보는거야.

공포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 건, 이름을 불러주면 기억하고, 애정하게 돼. 공포를 애정한다니, 나는 그를 페미니즘의 끝없음에 느꼈던 것 같아.
그리고 나는 그 끝없음을 애정하기로 했어.


방청석 한개를 얻어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토론을 했어. 혼자였으면 조여들어 늘어붙었겠지만 그보다 내 방에게 주던 오래되고 숙성된 애정을 누군가에게 보이고, 나누고 싶었어. 그 비속어조차 하나 남지 않았던 담론들은 생각보다 너무 평화로워서 겁낼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아. 물론 모두가 이렇게 평화롭지는 않겠지. 어느새 코르셋과 화장을 보면서 답답해진 가슴께를 쓸어내릴 때 내 갈비뼈를 조이던 압박이 사라졌다는 것에 그제야 숨을 쉬었어.


나도 엔진보단 페달이 좋아. 빠르진 않겠지만 조금 힘들어도 스스로 발판을 밟자. 불씨가 타오르는 순간 재빨리 진공의 유리판을 덮으면, 불이 나게 된 원인을 살피는 시간을 얻을 수 있어. 분노는 감정의 표현인데 나는 사람들이 감정보다는 '더 친환경적이고 오래 가는 것' 을 수단으로 삼았으면 해. 감정은 너무 빨라서 벌금을 내게 될 지도 몰라.

적어도 내 창작에서 여성은 자유롭고 싶으니까


좀 더 자유로워지자.
나는 비생산적인 이야기가 좋아. 그래 같이 속초에 가자. 물회 좋아하니? 한 톨도 남김없이 대게의 딱지장까지 긁어먹고 바다에 가서 대게처럼 생각해보자. 동명항이 어딘지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의 비생산적이고 웃긴 이야기가 담긴 영상으로 메모리를 꽉꽉 채워 오자.

너무 횡설수설 한 것 같지만 글을 마칠게요. 나도 한 숨이 넘어가기 전에 글을 쓰고 보내려고. 수정조차 하지 않았지만 그 호흡이 전달되길 바랄게.

악수와 함께 한숨에 글을 읽고 한숨에 글을 쓰고
세번째 숨에 글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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