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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Mar 01. 2018

우산 고르는 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소중히 다루다

                                                           

우산하면 떠오르는 것


 ‘우산’ 하면 퍼뜩 머릿속에 떠오르는 스토리텔링들이 있다. 유독 자주 잃어버리곤 했던 우산. 굳이 한쪽 어깨를 젖어가면서 너를 품었던 우산. 태풍이 불면 뒤집히고 부서졌던 우산 등등. 아마 우산 하나만으로도 전 세계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산을 자주 잃어버리는 일은 정말 지긋지긋한 레퍼토리다. 고등학생 때야 급하면 학교 앞 문구점에서 1,000원, 1,500원 컵라면 값으로 싸구려 비닐우산을 살 수도 있었지만, 요즘은 그래도 쓸 만한 우산 하나 사려면 아무리 저렴해도 5,000원이고 10,000원은 훌쩍 넘는다. 일기 예보를 확인하지 않고 나왔다가 우산을 사야 하거나, 음식점에 우산을 놔두고 나왔다가 한참 뒤에 생각이 나거나 하면 우산 값이 아까워 사람이 쪼잔해지기도 한다. 집 신발장 한 구석에 쌓여 있는 멀쩡한 우산들도 생각이 나고.


우산 고르는 일


 그래서일까, 우산을 고를 때는 다른 어떤 소품을 고를 때보다 기준이 단순했다. 특히 나처럼 무딘 남자들은 짙은 색에, 크고, 튼튼하면 끝이다. 우산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딱히 첨단의 기능이 들어갈 여지가 많지 않은데다가 신발, 가방 등에 비해서는 패션 아이템이라는 인식도 아직 대중적이지 않으니까. 무엇보다도, 어차피 언젠가 또 잃어버린 건데 뭐.


 그런데 딱 한 번, 정성 들여 우산을 고르고 나름 거금을 들여 우산을 산 이후로 이런 내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영화 킹스맨에나 나올 법한 그런 우산이었다. 마호가니 느낌이 나는 원목 손잡이, 클래식하면서도 편리한 자동 원터치 방식, 은은한 광택이 도는 소재와 폭우 속을 지나와도 발수 기능이 좋아 몇 번 털기만 하면 되는 깔끔함, 가벼우면서도 강풍에 강한 내구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싼 가격.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마케팅과 제품 스토리텔링을 염탐하려고 트렌디한 쇼핑 사이트를 들락거리다가 그냥 우산에 꽂혀버린 거다. 디자인을 꼼꼼히 살펴보고 제품 설명도 비교했다. 나름 거금을 들인 우산이 방에 도착했을 땐, 무슨 작품을 보듯이 한 10분은 우산을 ‘감상’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뭐에 홀린 듯이 우산을 충동구매를 하고서 한동안은 잊고 살았다. 그러다 새벽부터 비가 쏟아지던 어느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새로 산 고급 우산을 쓸 생각에 들떠하는 낯설고 주책 맞은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우산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저 비나 피하려던 우산이, 내 패션의 일부가 되어 자신감을 더해주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벌써 2년 동안 나는 그 우산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내 방 신발장 한 구석에 다른 우산들은 여러 번 강제 세대교체(?)를 당했지만, 그 우산만은 고고한 모습으로, 터줏대감처럼, 클래식하게 늘 머물러 있었다. 그러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내가 우산을 홀대했기 때문에 우산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산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산이 나를 떠난 것이다.’


 우산을 고르는 일만큼 성의 없고 단순한 소비가 또 있을까. 하지만 딱 한 번만이라도, 사치 한 번 부린다 생각하고, ‘내 마음에 드는’ 좋은 우산을 정성 들여 골라보라. 사람이든 물건이든, 내 마음과 정성을 한껏 들인 물건을 함부로 대하기는 힘들다. 우산도 내 선택으로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다. 여러 개도 필요 없다. 딱 하나쯤은 내가 아끼는 좋은 우산 하나 장만해보자. 허름한 우산으로 비를 피하는 당신의 모습, 너무 초라해지지 않도록.




이 글은 칸투칸 8F에 최초 기고된 글입니다.
http://8f.kantukan.co.kr/?p=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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