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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Mar 07. 2019

조금은 심심하고

약간은 별 볼 일 없는


글을 쓴다는 건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는 일이다. 허풍이나 위선, 위악을 집어던진 자기 고백.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다. 배가 고프면 고프다고, 누가 그리우면 그립다고 쓴다. 치졸했던 자신을 치졸했다 반성하고, 여전히 잘 해낼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자신 없다고 인정하는 일. 말로 전하지 못한 마음을 뒤늦게나마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전하는 일. 


그래서 글을 쓰고 나면 행복하건 괴롭건 간에 마음이 후련해진다. 입안에 오래 머금고 있던 묽고 축축한 덩어리를 내뱉은 기분.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도 가늠되지 않던 것들을 글로 내뱉고서 찬찬히 살펴보면 조금씩 이해되곤 한다.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내가 이런 생각으로 당신을 대했구나. 그때의 나는 겨우 이런 인간이었구나. 당신도 힘들었겠구나. 


한때는 글 쓰는 일을 거룩한 예술, 화려한 기교라고 여기기도 했다. 그때 내 글은 그저 평가 대상이었고, 글 속의 나는 실제의 나와는 많이 달랐다. 나는 스스로에게도 정직하지 못했다. 그러니 글을 쓰고 나면 늘 마음 한 구석이 찝찝했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동시에 세상에 내보이기 두려워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의 이면에는 글을 통해 자기 고백이 아닌 자기기만을 했다는 죄책감이 있었다. 


가끔 그 시절의 글을 들춰 읽으면, 얼핏 지금보다 더 좋은 글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다. 내가 이런 문장을 썼단 말이야? 하지만 그뿐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글들, 함부로 정의롭고 겸손한 척 오만했던 글들. 자기 고백을 가장한 자기기만의 언변.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알고 있는 진실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조금은 심심하고 약간은 별 볼 일 없지만, 적어도 솔직한 지금의 글이 더 마음 편하다. 어쩔 수 없다. 실제로 내가 조금은 심심하고 약간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솔직해보려고, 정직해보려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하는 말과 할 수 있는 말. 

그 간극을 줄여나가는 것이 

글 쓰는 사람의 성장 방식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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