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우리의 걸음으로.
가전도 가구도 들어오지 않은 아파트 거실은 마치 대학교 MT 때 가는 넓은 펜션 같았다. 자취방을 가득 채웠던 짐들은 아파트에 들이자마자 자질구레해졌고, 우리는 거실 창밖을 바라보고 앉아서는 괜히 뿌듯했다.
오후 5시 반쯤, 동향인 거실 창으로는 이른 낮달이 뜨고 서향인 부엌 창으로는 붉은 해가 노을을 퍼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낮과 밤, 해와 달의 사이에서 새삼스럽게 우리의 연애가 11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웃었다. 그동안 우리 사이에도 서둘러 뜬 낮달처럼 머쓱하고 지는 노을처럼 쓸쓸했던 적 있었지만, 낮이건 밤이건 늘 손을 놓지 않은 덕에 지금이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
시간은 저 알아서 흘러갈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걸음으로 걸어가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