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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Apr 13. 2019

그냥의 부피

그냥 해본 거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에게는 자작곡이 있다. 그것도 5곡씩이나.


다음으로 제목을 말하자면

- 거리

- 길모퉁이 

- 왜 난 항상

- 잘 몰라도

- 테이프


사실 노래를 만들어내는 방식의 순서라든가, 통상적으로 필요한 공식 같은 건 전혀 모른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며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어야~ 하나~” 괴상한 음을 붙여 혼잣말을 하는 아저씨처럼, 생각나는 문장을 흥얼거리다가 작사 작곡을 해버렸다. 아 물론 피아노나 기타는 칠 줄 모르고 코드도 모른다. 작곡을 했다는 건, 그러니까 어쨌든 노래 비슷한 걸 만들어버렸다는 뜻이다. 


배운 적도 없는데 알고 보니 천재, 같은 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서 5곡 모두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멜로디다. 그것도 2, 3곡 정도의 멜로디가 전혀 정교하지 않게 봉합된 느낌. 그래도 상관은 없다. 음원을 낼 것도 아니고 서면 한복판에서 버스킹을 할 것도 아니니까. 아니, 그 누구에게도 들려줄 생각이 없으니까. 집에서 혼자 청소를 하거나 커피를 마실 때 불러보는 정도. 화창한 오후에 인적 드문 길을 걸으면서 흥얼거리는 정도. 딱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렇다곤 해도 아무 노력 없이 만든 노래들은 아니다. 나름대로는 꽤 공을 들였다. 처음엔 잔잔하게 반복, 여기서 후렴구 들어가고, 이쯤에서 고음 클라이맥스 딱, 각운을 맞추려면 이런 단어가 좋겠군 하면서. 


돈도 안 되고 내세울 자랑 거리도 아닌 일을 뭣하러 해댔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해본 거라고 할 수밖에. 그냥 노래가 될 것도 같아서. 그냥 노래 한 번 만들어보고 싶어서. 그냥 하다 보니 재밌고 즐거워서. 그냥, 그냥, 그냥.

 

살면서 그냥 해볼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꽤 큰 여유를 느끼게 해 준다. 내 존재의 용량이 필요와 쓸모로만 꽉 채워져 있다면, 나는 매 순간 쓸모없는 인간이 되지 않을까 초조하고 불행했을 것이다. 다 채우지 않고 비워두는 공간, 바로 그곳이 ‘그냥의 부피’다. 책임과 경쟁과 성과의 굴레 속에서 스스로 숨통 틔울 수 있는 그냥의 부피를 확보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굳이 나처럼 얼렁뚱땅 해괴망측한 노래를 만들지 않더라도, 뭐든 그냥 해볼 수 있는 건 좋은 일이다.


어쨌든 나에게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노래가 5곡이나 있는 셈이다. 

그냥 해본 것치고는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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