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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Oct 15. 2019

문 밖을 내다보느라

나를 잃을 뻔했다.

문 밖을 내다보느라


며칠 전이었다. 갑자기 살아내는 일이 막막했다. 특별히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열심히 산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번 아웃을 겪을 정도에는 턱 없이 게으른 일상이었다.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는 못 되더라도 책 출간 이후 소소한 북 토크를 이어가고 있었다. 2018년엔 글을 써서 버는 돈이 50만 원도 채 되지 않았는데 2019년이 되면서 웬만한 중소기업 회사원만큼은 벌게 됐다. 체중이 늘기는 했지만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심신의 건강도 챙기는 중이었다. 아름이와의 관계는 늘 그랬듯 평화로웠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는 행운은 아직 유효했다. 


그래서 느닷없이 찾아온 막막한 기분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어디서 오신 누구인지, 무슨 용무로 이렇게 평화로운 내 존재의 문을 사납게 두드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대박이나 쪽박, 어느 쪽으로든 인생이 역전된 적도 없는데. 


지난주 토요일, 부산 장전동의 작은 책방인 인디무브에서 북 토크를 준비하며 이규리 시인의 책 ‘이규리 아포리즘’「시의 인기척」을 구입했다. 이십 대 중반부터 페이지가 너덜너덜해질 만큼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를 읽은 애독자로서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 그럭저럭 소박한 북 토크를 끝내고, 맥주를 마시고, 그러고도 여전히 가시지 않는 막막한 기분을 땀띠처럼 몸에 달고서 잠을 뒤척였다.  


의문스러운 주말을 보내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어도 개운하지 않았다. (출퇴근이 없는 프리랜서 작가인 나는 딱히 월요병을 앓지 않는다. 대신 매일이 월요일처럼 느껴지는 괴로운 시기가 있을 뿐.) 나는「시의 인기척」을 읽기로 했다. 예전부터 생각해왔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었는데.’라는 문장을 몇 번이나 속으로 되뇌었는지 모르겠다. 땀띠에 바르는 파우더처럼 고운 문장들이 폴폴 나리는 기분. 그럼에도 마냥 다정하거나 보송보송할 수만은 없었던 건, 그 파우더가 시간의 백골을 갈아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삶의 비참과 어찌할 수 없는 절망과 괴로움만큼 다정한 얼굴들을 모두 품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 글밥을 벌어먹기 시작했던 스물일곱 즈음부터 나는 쓸모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나는 소위 금수저도 아니었고, 알뜰히 저축해둔 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글이 밥이 될 수 있어야 했던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허구한 날 시를 쓰고 공모전에 출품했던 대학 시절의 열정은 ‘쓸모의 글’을 짓기 위한 테크닉과 요령에 밀려났다. 기술자로서든 예술가로서든 작가가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것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문득 정신 차려보니 나는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허- 상념이 여기에까지 이르니 원인불명인 줄 알았던 막막함의 정체가 드러났다. 나는 작가로서의 삶을 평생 이어갈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작가로서 돈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부유해질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고, 언제까지 평범한 회사원 월급 정도를 글로 벌어 사는 것이 만족스러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더 단적으로 말해, 돈 잘 버는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허허- 두 번째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면 글을 쓰지 말아야 했다. 글 쓰는 일 말고 ‘확률적으로’ 돈을 더 잘 벌 수 있는 다른 일을 선택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글을 쓰지 않는 삶은 자신 없다고 말했던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굶어 죽어도 글은 써야겠다며 국어국문과로 전과를 하고, 스펙 쌓는 대신 공모전 출품을 하고, 4대 보험 대신 종합소득세 3.3%를 선택했던 내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작가가 되어놓고선 이제 와서 돈 많이 벌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작가의 삶을 막막해하다니. 이리도 과거의 나에게 배은망덕할 수가 있을까. 


스스로를 고고한 예술가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경박한 장사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예술이 되지 못한 고독의 흔적과 우울의 증거를 글로 남겼고, 그걸 시라고 부르며 소중히 여겼던 밤들. 어떤 제품이나 브랜드를 팔기 위한 글을 쓰기도 하지만 ‘잘 팔리기만 하면 그만인’ 글을 쓰는 작가는 아니라고 믿었다. 문학적이지는 못해도 낭만적이고 싶었고, 불타오르는 열정의 온도에는 이르지 못해도 추운 누군가의 손을 데워주는 다정한 온기 정도는 품고 싶었다. 


그러고 싶었는데, 그걸 깡그리 잊고 돈타령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출간할 에세이 원고를 준비하면서도 ‘내 글’이 아니라 ‘잘 팔릴 글’인지만 고려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쓴 원고는 지워버렸다. 자기 뒤통수를 친 적 있는 작가라고는 해도, 독자 뒤통수까지 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이규리 시인의「시의 인기척」에 서른두 번째로 수록된 글은 이렇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나를 잊을까 두려웠다. 그 다음엔 내가 사람들을 잊을까 두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잊히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 밑에다 나는 이렇게 메모해두었다. 


문 밖을 내다보느라 

천장이 무너지고 벽이 허물어지는 걸 몰랐다.

헛헛한 기운, 아무것도 거치지 않은 바람이

귀 언저리를 스쳤을 때, 뒤돌아보면

집은 터가 되어있었다.

문은 열리는 대신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오래 나였던 곳이, 나라고 믿었던 것들이

마구 흐트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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