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미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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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1/10

태윤

by 김경빈 Feb 25. 2025

[태윤] 


1.     

 이르게 시작된 회식이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지하철이 끊길 뻔했다. 술을 좋아하는 대표는 회식하는 날마다 퇴근 시간을 2시간 앞당긴다. 오후 4시 넘어 시작된 회식이 자정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난 것이다. 주당인 박 대리는 그마저도 아쉽다며, 뭉개진 발음으로 4차를 가야 한다고 외쳤다. 다행히 빠르게 술을 들이부은 대표부터 나가떨어질 참이라, 태윤은 기회를 엿보다가 거의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벗어났다. 벗어나고 보니, 죽을 것 같은 느낌은 엄살이 아니라 실재였다. 막차 시간 때문에 담배 한 대 피울 시간도 마땅치 않았다. 귀퉁이마다 얇게 얼음이 깔린 지하철역 계단을 한 발, 한 발 디뎌 내려가면서도 태윤은 박 대리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할 수만 있다면 한 대 치고 싶었다. 어쩌면 오늘이 적기가 아닐까. 사리 분별이 어려울 만큼 취한 박 대리의 뒤를 밟는다면…. 물론 태윤은 악의 넘치는 상상을 실현할 수는 없었다. 누구나 미운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때 있지만, 실제로 그를 죽이는 것은 극소수의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사회에 속해 살아가는 사회인으로서 참아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태윤은 분노가 치밀 때마다 이런 문장을 주문처럼 속으로 외우곤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뒷말을 더 오래 뇌까리는 편이었다.


 ‘…언젠간 참지 않아도 되는 때도 오는 법이니까.’


 대합실에서 막차 시간이 7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지만 방광이 터질 것 같은 요의를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개찰구 앞까지 갔다가 급히 지하철역 공중화장실로 향해 소변기 앞에 서서 바지 지퍼를 내렸다. 뜨끈한 소변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동안 잃어버린 체온을 수습하듯 태윤의 등과 어깨가 떨렸다. 만취 중에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태윤은 그제야 정신이 좀 드는 기분이 들었다.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누가 물을 내리지 않고 가버린 건지,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지만 취기에 섞어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스스로도 당황스러울 만큼 끊기지 않는 소변 줄기에, 태윤은 습관처럼 화장실 벽에 붙은 것들을 눈으로 더듬었다. 혹시 보거나 읽을 만한 게 없을까 싶어서였다. 코로나 예방 수칙, 우리 지역의 8경, 각종 명언과 속담, 하다못해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은 아닙니다’ 따위의 문구라도.


 태윤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동안에 무엇이든 보고, 읽는 것이 습관이 된 지는 꽤 오래였다. 딱히 활자를 읽는 행위에 의미를 둔 것은 아니었다. 시의 구절을 외우거나 무슨 감명은 받은 적도 없었다. 다만 그러는 편이 마음이 편안했을 뿐이다. 어쩌면 그건 지극히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배설 행위 중에도 스스로가 지성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을 확인하려는 방어적인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태윤은 그날도 지하철역 소변기 앞에 서서 뻑뻑한 눈꺼풀을 추키며 벽에 붙은 사진을 봤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편안함 대신 어떤 불안감이 느껴졌다. 사진에는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보통 설명이 없는 사진은 누가 봐도 그 내용이나 의도를 파악하기 쉬운 것들이다. 예를 들면 광안대교, 잠실타워 사진에는 딱히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이다. 또는 어느 지역인지 몰라도 감탄을 자아내는 자연경관 사진 역시 설명은 필요 없다. 수평선 너머의 일출이나 일몰, 격정적으로 물든 단풍, 멀리서 바라볼 때만 낭만적인 설산의 풍경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태윤이 보게 된 사진은 전혀 그런 부류의 것이 아니었다. 아무 정보도 감흥도 없는 어느 흙바닥. 그 위로 의미 없이 흩뿌려진 마른 나뭇잎들, 프레임의 우측 상단에 4분의 1쯤 걸려 있는 등걸로 봐서는 어느 산인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동네 뒷산을 오르던 누군가가 휴대폰의 버튼을 잘못 눌러 찍힌 사진 같아 보이기도 했고, 발을 헛디뎌 자빠지는 중에 우연히 찍힌 사진 같기도 했다. 설악산, 북한산 같은 고유명사로 파악할 수 없는 사진이었고 전혀 감탄스럽지도 않은 사진이었다. 누군가가 실수로 이 무의미한 사진을 가져다 놓은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설명이 필요해 보이는, 그런 사진이었다.


 태윤이 그 사진을 보았을 때 처음 느꼈던 건 의아함이었다. 이건 뭘까, 어딜까, 왜 화장실에 이런 사진이 있는 걸까. 뒤이어 묘한 기시감이 들기 시작했고, 출처 불명의 사진에 기시감이 든다는 사실이 자연스러운 불안감을 동반했다. 소변 줄기가 끊긴 것을 감지한 소변기의 센서가 한 차례 물을 쏟아냈고, 다시 태윤은 위장에서부터 식도와 콧구멍을 통해 슬금슬금 취기가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사진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감정에 압도되어, 태윤은 바지 지퍼를 올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더 앞으로 내밀어 사진을 면밀히 살폈다. 흙바닥은 야트막하게 솟아 있었는데, 다시 보니 버려진 무덤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촐한 묘비도 없고 봉분이랄 만큼 형태가 잘 다듬어진 것도 아니어서, 엄밀히 말하면 ‘무덤’이라 부르기는 어려워 보였다. 오히려 ‘무엇인가’를 급히 매장한 뒤 흙을 단단히 다지지 않은 모양새에 가까웠다. 야트막한 지형의 아래쪽, 그러니까 사진 프레임의 하단에는 토끼나 뱀 같은 동물이 파놓은 듯한 작은 구멍도 보였는데, 그 주위 땅만 젖은 상태였다. 하지만 태윤은 이내 생각을 그쳤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사진을 굳이 지하철역 공중화장실의 소변기 위 벽에 붙여 놓을 이유가 뭐란 말인가. 자리를 뜨지 않고 서 있는 태윤을 재촉하듯, 소변기의 자동 센서가 다시 작동해 물을 쏟아냈다. 그 소리에 정신이 든 태윤은 급히 바지를 추스르고 눈을 세게 감았다가 뜨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취기에 떠오른 망상일 뿐이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려는데, 승강장에 지하철 막차가 들어오는 것을 알리는 음악이 들려왔다. 태윤은 손에 물을 살짝 묻혀 씻어내고, 바지춤에 물기를 닦으며 개찰구를 향해 뛰었다. 웬 사진 하나 때문에 생긴 불안감은 태윤의 뒤꿈치에 들러붙어 걸음을 위태롭게 했다. 가까스로 지하철 마지막 칸에 올라탄 태윤은 술 냄새를 조금이라도 덜 풍기려고 올리브색 구스다운 점퍼의 지퍼를 턱밑까지 올려 마스크로 가린 입을 재차 가렸다. 막차라 이미 승객의 절반쯤은 취한 상태였지만 태윤의 상태는 그들과 조금 달랐다. 태윤의 머릿속 한구석에는 화장실에서 본 사진이 자리 잡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진부한 표현으로 사진이 ‘뇌리에 박힌’ 것이다. 그리고 흐리멍덩한 취중에도 그 사진에 대해서만큼은 지나치게 명료한, 이질적인 의식 상태가 약간의 멀미 기운을 일으키는 듯했다. 망상이라기에는 너무나 실재적인 ‘어떤 기억’이고, 기억이라기에는 너무나 흐릿한 ‘어떤 감각’ 같은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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