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존감 최후의 보루
태어나면서부터 초등학교 3학년 무렵까지 나는 유난히 허약하고 야윈 아이였다. 거기다 고집도 엄청나게 세서, 종아리를 파리채로 때리고 추운 겨울에 팬티 바람으로 집에서 쫓아내도, 먹기 싫은 건 절대 먹지 않는 독종이었다. 오죽했으면 내가 밥 한 숟갈 떠먹을 때마다 이모들이 박수를 쳤다는 얘기를 할까. 이런저런 보약도 별 효과가 없자, 부모님은 최후의 보루로 식용 개구리를 고와 먹이기로 하셨다. 물론 나는 그것이 식용 개구리 고운 물인지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곰국인 줄로만 알고 두 그릇씩이나 먹었더랬지. (어쩐지 냄새가 좀 비리긴 했는데…)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출근하시고 엄마는 어린 동생과 늦잠에 빠져 있을 때, 대수롭지 않게 열어본 솥 안에 개구리가 둥둥 떠 있는 걸 보기 전까진.
아무튼, 극적이게도 식용 개구리를 고와 먹고 난 후부터는 살도 붙고 축구나 태권도 같은 운동에도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 엄마는 그때를 회상하시면서, ‘그래도 없는 살림에 남의 자식들 다 하는 태권도니 합기도 같은 걸 보내는 보람이 생겼다’고 말씀하신다. 개구리 파워는 막강했지만, 부작용도 심했다. 솔직히 말하면, 약 20년 뒤 남성의 미적 트렌드가 야윈 미소년일 줄 그때 알았더라면, 차라리 개구리를 안 먹는 건 어땠을까, 하는 불효 막심한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나름 봐줄 만했던 유년기의 얼굴이, 개구리를 먹고 난 후 폭풍 성장을 하면서 지금(!?)에 이르렀으니까. 다, 부질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런 유년기의 허약함 탓에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나에게 늘 “가장 좋은 방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고, 가장 멋진 방법은 싸운 뒤에 서로 화해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인이 되어서도 참 어려운 일을, 겨우 8살 꼬마에게 진지하게 말씀하셨던 거다. 아무래도 알아듣기 어려워하는 눈치였는지, 아버지는 비밀병기 같은 말씀을 더하셨다. “만약 그래도 정말 악의를 가지고 누군가 너를 괴롭히고 때린다면, 돌멩이로 머리를 찍어버려도 좋으니까 이유 없이 맞고 다니지는 말아라.”
지금 생각하면, 요즘 뉴스에서 보도되는 잔혹한 일진들의 학교 폭력 상황에서 목숨을 위협받는 게 아니고서야, 아무리 급해도 어린 남자애들끼리 투닥거리는 몸싸움에서 돌멩이로 머리를 찍어버리는 일은 보통 큰일이 아니다. 치료비는 제쳐두더라도(당시 우리 집 살림을 생각하면 치료비도 제쳐두기에는 분명 큰 부분이었지만.) 정말로 그 친구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겠는가.
물론 시절이 조금 달랐다곤 하지만, 아버지도 그런 걱정 없이 말씀하셨을 리가 없다. 또래에 비해 허약하고, 가진 거라곤 쓸데없는 똥고집뿐인 아들에게 건넬 수 있는 아버지만의 든든한 조언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간에, 나는 때로 나보다 힘이 세고 포악한 친구들에게 어떤 위압감을 느끼는 때에도, 내 마음 한편에 아버지가 쥐어주신 돌멩이 덕에 자존감을 지켜낼 수 있었다. 특별히 몰려다니며 누군갈 괴롭힌 적도 없고, 특별히 왕따 같은 것을 당하지도 않으면서 학창 시절을 지나온 것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사실 그건 돌멩이 덕분인지도 모른다. 끝내 나를 지켜내고야 말 ‘단단한 자존감’ 말이다.
그렇게 별 큰 사고 없이 학창 시절을 보냈다. 쑥쑥 크던 키는 중학교 3학년 때 멈췄고 ‘개구리 파워’ 덕분에 얼굴도 폭삭 늙어서 나이 서른인 지금이 오히려 그때보다 동안이라는 소릴 들을 정도였다. 그러는 동안 합기도도 열심히 배우고, 유도도 배웠다. 특히 중학생 땐 또래에 비해 키도 크고 힘도 세서, 사실 유도가 아니라 그냥 내던지기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쉬는 시간, 점심시간, 평일, 주말 할 것 늘 축구를 해댔다. 살면서 딱 한 번, 어깨 수술을 했던 적을 제외하곤 (그 어깨도 축구하다 다쳤다.) 입원해본 적도 없이 건강하게 자랐고, 성인이 되고 나선 꾸준히 헬스를 하고 있다.
어릴 적, 밥 한 숟갈에 박수갈채를 받던 때를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일이다. 그 허약하고 비리비리했던 아이가 이제는 XL 사이즈를 입는 청년이 되었답니다! 그런데, 왜 자꾸 비틀대고, 무너지고, 힘든 일들은 많은지. 머리로는 다 아는 일인데도 마음이 이해하지 못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몸은 이미 중학교 3학년 때 다 컸는데, 마음은 아직도 성장통인지 뭔지 모를 통증을 달고 산다. 그리고 대부분 그 통증의 원인은 현실에 있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냉혹하고 막막한 현실, 달아나고 싶어도 눈만 뜨면 코앞까지 들이닥치는, 바로 그 현실.
어릴 땐, 잘하고 있는데도 던지는 부모님의 잔소리가 귀찮고 듣기 싫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제 다 크고 나니, 제대로 하는 것 하나 없고 불안하기만 한데도 부모님은 그저 큰아들을 믿고 묵묵히 말씀이 없으시다. 그 믿음이 감사하다가도, 때론 다 내려놓고 하소연하고 싶은 날들도 있었다. 답답한 내 성격 때문에 말 못 하고 혼자 삭일 때가 훨씬 많지만. 그래도 내가 겁먹지 않고, 아니 사실 겁나면서도 현실에 맞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노력할 수 있는 원동력은, 내 마음속의 여전히 단단한 돌멩이 덕분이다. 가진 게 적은 요즘은, 어릴 적 아버지가 내 마음속에 쥐어주신 돌멩이가 유난히 귀하게 느껴진다. 이 돌멩이가 있는 한, 친구 머리는 안 되더라도, 공갈협박으로 목을 조이려는 현실이라는 놈의 대갈통은 이 돌멩이로 찍어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아서.
이 글은 칸투칸 8F 칼럼으로 최초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