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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Feb 11. 2018

옛날이 살아남는 법

연필과 연필깎이

아직도 누군가는 연필을 깎는다.


 2년 전, 독학재수학원에서 코칭 강사로 근무하던 때의 기억이다. 프런트 한 구석에는 추억의 은색 기관차 모양 연필깎이가 있었다. 당연히 사용할 일이 거의 없는, 그야말로 인테리어 소품에 가까운 연필깎이였다. 어느 날 재수생인 최가 그 연필깎이에 둥글게 유순해진 연필심을 밀어 넣고 드르륵, 드르륵 연필을 깎길래, 최에게 웬 연필이냐고 물었다. 최는 겸연쩍게 웃으면서 수학 문제를 풀 때는 연필을 쓰는데, 금방 금방 연필심이 뭉툭해지는 바람에 깎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애초에 수학 문제를 풀 때만은 왜 하필 샤프가 아니라 연필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저마다의 이유라는 게 있을 거라 생각하고 말았다. 특히 수험생들의 행동에는 더더욱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괜히 따져 물어서 학습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는 그 드르륵, 거리는 소리가 마음에 들기도 했다. 손바닥만 한 기관차의 태엽을 감는 듯, 조심스레 연필깎이의 손잡이를 돌리는 그 동작의 소탈함도 좋았다. 최가 그저 인테리어 소품쯤으로 여기던 그 연필깎이를 사용하는 덕분에 참으로 오랜만에, 시간이 잠시 느려지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어쩌다가 연필이 여태 남아, 뾰족해졌다가 뭉툭해지는가. 실용적인 이유로만 보자면, 아마도 샤프가 아닌 연필로만 구사할 수 있는 이미지의 영역 때문일 것이다. 쓸수록 닳아 뭉툭해지는 연필심의 질감으로부터 번지는 은근한 명암과 그 명암이 주는 아련함. 특히 그림을 그리거나 할 때에 연필은 그 아련함으로 샤프에게는 없는 흔적, 그림자 같은 생명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왜 연필은 여전히 살아남았을까.


 그러다 문득, ‘편지 한 장, 수학 문제 하나 미처 다 써 내려가기도 전에 글씨를 흐리게 하는 연필이 왜 여전히 필기도구로 살아남아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아무것에나 막 가져다 붙이는 흔한 '감성' 때문일까. 슥슥, 종이 위를 스치는 소리나 나무 몸통의 온도 같은 것들. 그것도 아니면 아날로그, 옛날 따위에 대한 문학적 오마주 같은 것일까. 마치 백일장을 가면 나눠주는 칸칸의 원고지처럼.


 딱히 실용적인 이유를 찾지 못 한 나는 연필의 생존 비결이 점점, 그리고 결국 닳아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 뼘 길이로 태어나 손가락 한 마디까지 짧아지는 연필의 한 생을 살펴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치를 따른다. 쓰다 보면 닳아가고, 살다 보면 늙어가는 것.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그런 이치.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불편하고 무자비하고 번거로운 이치다. 굳이 그렇게까지 헌신적일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굳이 온몸으로 할 말 해가며 닳아 없어질 필요가. 매끈하고 튼튼한 샤프는 제 몸통 온전히 보전하면서 세치 혀를 내밀듯 검은 샤프심을 뽑아 식식, 할 말 다하는데 무엇하러 연필은 그러질 못하고 온 몸 다 바치며 사냐는 말이다.


 연필이니까, 사람이니까.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연필에게 더 동질감이 느껴진다. 진심을 전하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그 모습이라든가, 잔인하지만 공평한 생과 사의 사이클을 따르듯 쓰면 쓸수록 닳아가는 생명력이라든가, 또렷한 초심을 기억하기 위해 제 몸 깎는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존재의 불완전성 같은 것들 때문에 연필은 샤프보다 인간적이다. 동병상련 같은 걸까. 


 누구나 완전무결한 인생을, 늘 새로운 인생을, 끝내 끝나지 않을 불멸을 원하지만 정작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어제보다 늙어있거나 닳아있기 마련이었다. 세상에는 샤프심 한 통을 사서 잘 빠진 세련된 말들을 전문가처럼 뽑아내는 능력 좋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뛰어난 능력에 감탄하다가, 겉과 다른 속내에 배신감을 느껴야 했던 경험도 여러 번 있었다. 


 최는 3자루의 연필을 꽤 정성 들여 깎았다.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수동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는 장면이나 소리를 겪을 일이 없었다. 문득 그날을 떠올리다가, 관계에 서툴렀던 학창 시절 친구들이 하나씩 떠오르기도 했다. 다투고, 오해하고, 함께 웃었던 친구들. 지금은 각자의 생계를 위해 각지에서 바쁜 친구들. 그 시절 우리가 서로 나눴던 말과 마음들이 꼭 연필로 쓴 글 같았다. 한참을 썼다 지우며 애태우느라 닳아 뭉툭해진 그 시절 우리의 투박한 말들은 쉽게 바스러지는 샤프심의 그것보다 단단한 진심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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