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크덕 Nov 09. 2019

반나절 사이에도 얼굴이 변한다

호박이 출생일기 Day 2

"여기 신생아실인데요 야간에 수유하실 건가요?"


"아뇨, 분유로 부탁드리고 아침에 할게요"


초산은 초유가 바로 나오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3~4일은 걸린다. 이것을 모르는 상태에선 산모의 모성애를 의심할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아니 어떻게 초유가 안 나온다고 시도조차 안 하지. 나는 계속 보고 싶은데 밤에 잠을 줄여서라도 안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무척이나 잘못된 생각이다. 배가 고픈데 안 나오는 젖만 애 멀게 빨고 있는 아기를 보는 것도 고욕이고, 회복이 중요한 산모가 밤잠을 설쳐가면서 체력이라도 떨어지면 면역력이 약해져서 더 손해일뿐이다.



오전 11시와 저녁 7시, 하루에 딱 2번의 신생아 면회 시간이 있다. 부산에서 부모님이 아침 7시 30분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12시 되기 전 간신히 병원에 세이프하여, 호박이를 처음 만났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쁜 얼굴을 감출 수 없으시다. 그 무뚝뚝한 아버지도 호박이를 보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그득하다. 평생 살면서 본 적 없는 미소라 호박이의 출생보다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어머니는 어제부터 할머니가 되었고, 호박이를 보자마자 나를 닮았다고 연신 말씀하신다. 귀도 닮았고 눈도 닮았고... 와이프는 "내가 남편을 낳았다니" 라며 말을 거든다. 싫지 않다. 본능인지 모르겠지만 나를 닮은 얼굴을 보고 있으면 끝 모를 막연한 행복감이 느껴진다.


어제만 해도 핏덩이에 얼굴에 붉은 끼가 가득했지만, 오전 면회시간에는 붉은 끼가 많이 없어졌다. 사람의 형상으로 너무나 귀엽고 이쁜 얼굴이다. 딸내미 부럽지 않게 아들내미가 너무 이쁜 얼굴을 갖고 있다. 세상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은 얼굴이다. SNS에 자랑스럽게 올렸고, 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육아 선배님들이 한 마디씩 건넨다. "너무 이쁘다" "커서 여자애들 많이 울리겠네" 기분 좋은 말이다.


부모님은 서울 이모 댁으로 가시고 다시 와이프와 둘만의 시간이 되었다. 사실 어제 다인실에 있어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다행히 1인실이 나서 방을 옮길 수 있었다. 1인 실하면 무언가 사치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어떤가 일생에 몇 번이나 있는 이 순간에 1인실인들 어떠하리... 거짓말 같이 이날 뉴스 기사에 산부인과 의사협회가 50%의 다인실을 운영해야 하는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요즘 다인실은 대기실로도 쓰지 않는다고 하며, 모두가 1인실을 원한다고 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새벽에도 몇 번씩 깨서 수유를 하러 가는 산모들, 그리고 다른 산모들을 의식하여 가족 면회도 어렵고 '밑이 빠지는 경험'을 하고 나서 화장실도 쉽사리 가지 못하는데 다인실이라니... 남의 눈치까지 먹어가며 회복하기엔 형편이 허락하는 한 1인실을 권하고 싶다.


호박이가 태어나고 24시간이 지나니, 이제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나 보다. 와이프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후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낮잠 시간에 들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긴장했던 몸과 마음을 녹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시 전화벨이 울리고, 1인실의 특권인 '모자동실'로 호박이를 안으러 신생아실로 갔다.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호박이를 어떻게 안을 수 있을까 걱정도 잠시, 간호사가 능숙한 교육으로 어떻게든 내 양손의 각도를 잡아준다. 아기를 넘겨받을 때 손이 앞으로 향해 있다 보니 민망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수 있으나, 능숙한 교육은 이마저도 사전에 방지를 해준다.


방으로 온 호박이는 천사 같다. 새근새근 숨을 쉬며 호박이는 눈을 감고 수유 쿠션 위에서 엄마 품에 안겨 있다. 나오지도 않는 젖이지만 본능으로 힘차게 빨고 있다. 간호사가 가르쳐준 대로 "잘한다, 잘한다"를 반복하며 호박이의 힘찬 섭식 활동을 응원했다.


저녁이 되고 이모들이 방문했다. 속으로 오자마자 호박이부터 찾고, 와이프의 안부를 묻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첫마디가 고생했다로 시작해서 쓸데없는 걱정은 덜었다. 7시에 맞춰 신생아실 7층으로 올라가 대기했다. 칼 같이 7시가 되자마자 신생아실을 덮고 있던 블라인드가 올라가고 줄지어 누워 있는 신생아들이 보인다. 누군가 아무리 애기가 많아도 자기 자식은 한눈에 보인다고 하던데, 반은 맞고 반을 틀리다. 너무 많아서 한 명씩 볼 수도 없거니와, 그리고 이름표를 보고 내 아이임을 알았을 때 빠르게 나와 비슷한 얼굴 모양을 찾기 시작한다.


아침보다 얼굴이 더 빵떡같이 변했다. 힘들게 산도를 거쳐 왔던 호박이는 뒤통수가 부어 있어 Corn head를 보이고 있으나, 시간이 지나니 부기가 조금씩 빠지니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얼굴의 붉은 끼는 많이 빠졌는데, 눈 주변에 울어서 그런지 붉은 끼가 남아 있다. 혹시나 눈이 아픈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호박이를 보고 있으면 숨은 잘 쉬고 있는지 항상 걱정되고, 입을 오물오물 거리는 모습을 보면 혹시나 배가 고픈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그리고 와이프의 초유는 언제 나오는지 조바심이 나고,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사지 도구를 들고 와이프 겨드랑이 아래 임파선을 자극하는 마사지를 시키지 않아도 한다.


엄마들은 위대하다. 퇴원일이 일요일이 아니라 월요일로 하루 늘었는데, 하루 더 병원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밑이 빠지는 경험과 말 그대로 밑을 찢고 나온 아기 그리고 얼마나 힘을 줬는지 자연스레 생기는 치질... 내가 대신할 수 있었으면 골백번도 더 대신했을 것이다. 와이프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이 절로 생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모의 회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