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을 퇴소하는 날에 맞춰서 배우자 출산휴가를 썼고, 워킹데이 10일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휴가가 끝났다. 아마 신입사원부터 지금까지 썼던 휴가 중에 처음으로 외부활동 없이 집에서만 보내는 휴가였을 것이다.
너무나 행복했고 달콤한 휴가였다. 휴가를 집에서만 보내면 무슨 즐거움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겠지만 나조차도 신기하게 지금까지 보냈던 휴가 중에 가장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정확한 비교는 아니지만 군 생활 중 마지막 휴가, 말년 휴가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성취감을 느끼면서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약간의 불안감을 가진...
정말 24시간 와이프와 교대로 또는 함께 호박이를 돌보며 2주를 보냈다. 앞서 술회한 것처럼 당연히 힘든 점도 많았지만, 온전히 가정에 충실한 패밀리맨으로서의 시간을 보내며 가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책임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잠도 잘 못 자고 때론 피곤에 절어 뻗어서 잠을 잘 때도 있었지만, 숨을 새근새근 쉬는 호박이를 보며 또 다른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모성애가 있다면 부성애가 있는데, 모성애가 출산의 큰 고통을 겪으면서 그리고 10개월을 품에 안고 생긴다면 부성애는 출산 후부터 아기가 보채는 시간, 내가 꼭 아기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조금씩 하지만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게 생기는 것 같다.
배가 고프다고 울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해서 울고, 열이 나서 울고, 대부분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호박이는 울었지만 출산휴가 동안 그 울음을 온몸으로 받으며 와이프를 더 존경하게 되고 새롭게 부여된 아빠라는 역할을 종교에 의탁하듯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삶의 충만함.
사회에 나와서 돌이켜보면 치열한 경쟁이 있는 대기업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는 성과를 내기 위해 숨 막히게 싸웠다. 그 속에서 성취감을 느꼈고 성과를 조금씩 내면서 살아 있음을 느껴왔다. 새벽까지 장표를 만들며 집으로 돌아갈 때 열심히 살았다는 만족을 느꼈다면, 지금은 호박이가 반사작용에 의해 약간의 웃음을 보여주기만 해도 나는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삶의 충만함을 얻을 수 있었다.
아빠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고, 그리고 내가 없으면 이 작은 생명체는 생사의 기로에 놓인다는 기분. 누군가의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다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스릴러 같은 기분이지만 호박이를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키우기 위해서 나의 존재가 꼭 필요하다는 기분은 정말 새로웠다.
호박이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내가 육아휴직을 써야겠다는 공수표도 날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내 친구들이 본다면 정말 변했다 라는 말이 나올 것 같다.
내가 선택하고 나를 믿고 태어나준 호박이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주고 싶고, 출산이라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이겨낸 와이프를 존경하고 세 가족이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게끔 그 끝을 알 수 없는 사랑과 충만함을 계속 느끼면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