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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Jan 21.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 8

## 인도, 인도 사람들!

 "무모한 친절을 베풀다 감당할 수 없는 위험에 빠지느니  차라리 고개를 돌리는 것이 낫다."

 인생에서 처음이란 말은 잠자던 가슴을 깨우고 때론 감당할 수 없는 두근거림에 몸이 뜨거워진다. 한 번도 마주 한적 없는 "처음" 이기에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기억되어져 처음이란 머리 못에 실타래를  걸고 다음의 시간들을 이어나간다.


 쿤밍에서 콜카타로 가는 23시 50분 (중국 시각) 비행기를 타기 위해 출국심사대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남자가 입안에 혀를 빠르게  돌돌 말며 경쾌한 인글리시(인도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냐로 시작된 그의 말은 "코리아 짱"을 연거푸 발사하더니 결론은 자기가 짐이 많아서 출국심사대를 통과할 수 없으니 자기 짐을 몇 개만 실어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나는 단호하게  싫다고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겁 없이 정을 베풀다가 큰 화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설령 잘 안 다치더라도 다른 사람의 짐을 가지고 출국심사대에 서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하물며 생판 모르는 인도 사람을 뭘 믿고 짐을 실어준단 말인가?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무모한 친절을 베풀다 감당할 수 없는 위험에 빠지느니 차라리 고개를 돌리는 것이 낫다.  그는 계속해서 아무 문제없다고 "제발 제발" 애원을 했다. 그러다 우리가  모른 체 고개를 돌리고 대꾸를 하지 않자 다른 사람에게로 갔다.

  출국 심사가 시작되고 40여  명쯤 되는 보따리 상들이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검은 가방을 바닥에 길게 늘어놓았다. 내게 다가왔던 남자를 중심으로 몇몇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공항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더니 갑자기  가방을 열고 비닐포장이 된 옷을 바닥에 꺼내기 시작했다. 꺼내고 꺼내고 또 꺼내고...... 도대체 얼마나 구겨 넣은 것인지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바닥에는 옷들이 수북이 쌓였다. 그는 화가 난  듯했다. 나는  2인용 탁자만 한 가방의 크기에  한번 놀라고 그 가방 속에 어떻게 저리도  많은 물건을 쑤셔 넣었는지 또 한번 놀라고 있었다. 한참을 지켜보다  10kg 안팎의 우리들의 짐이 레일을 따라 들어가고  참새들과 나도 비행기 탑승을 위해 움직였다.


콜카타공항


중국 쿤밍공항
 " 이기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슬프게 한다.  "

 "이제 정말 인도로 간다. 조금만 참자!"

 참새들은 지쳐 보였지만 2시간 20분 후면  만나게 될 인도를 생각하면 괜찮다고  되려 내 어깨를 두드렸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좀 전에  만났던 한 무리의 장사꾼들이 사람들을 밀고 들어왔다. 승무원들을 무시한 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 그들은 기내 적재함에 가방을 쑤셔 넣었다. 자리가 부족하자 남은 가방들은 좌석 밑의 공간으로 구겨  넣고  그 위에 발을 올리고 앉았다. 그리고는 하나 둘  윗옷을  벗기 시작했다.' 도대체 몇 벌을 겹쳐 입은 거야? ' 내 앞에 앉은 사람은 가격표가 그대로 달린  재킷 두 벌, 니트 셔츠 일곱 벌을 입고 있었다.  참새들과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들을  훔쳐보았다.  그 와중에 무리 중 하나가  비행기 안을 돌아다니며 그들이 벗은 옷을 거둬 가더니  주머니 속에 고이 접어 두었던  비닐봉지를 꺼내 하나하나 넣어 포장을 하기 시작했다. 승무원들은 통로에 선 채로 승객들에게 안전수칙을 알려주고 있었다.   


 "쳐다보지 마!"

나도 모르게 참새들에게 이륙한 비행기 안을 제 집 안방처럼 쏘다니는 그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일렀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무슨 화를 당할 것만 같았다. 내 앞좌석의 남자는 의자를 뒤로 젖힌 채 길게 누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우리를  돌아보더니  "나마스테"라고 말하며  이글거리는 두 눈으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지금까지 들어 본 "나마스테"중 가장 니글거리는 인사였다. 온몸의 신경세포가 날카롭게 날을 세웠다. 참새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참새들 손을 꼭 잡고

"괜찮아! 쳐다보지만 마"

라고 말했다. 그들은 비행기 안에서 폭동이라도 일으킬 기세였다.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우리처럼 그들의 행동을 훔쳐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주의를 주어야 하는 것 안니가 하는 마음에 승무원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 이후로도 그들의 무례함은 계속되었다. 승무원들을 희롱하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달라고 재촉했다. 친절해야만 하는 승무원들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기내식을 더 달라고 떼를 쓰고 자기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라고 다른 것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그들에게 이게 당신이 주문한 음식이란 말은 무의미했다. 그들의 자리는 뒤죽박죽 엉망이었고 승무원들은 자리를 체크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엄마, 인도 사람들은 다 저래?"

"미친것 같아!"

 참새들이 처음 만난 인도, 인도 사람들이었다. 무례하기 짝이 없고 맨발로 비행기 안을 쏘다니는 더러운 사람들이었다. 인도 사람들은 다 저런가? 나도 묻고 싶었다. 나는 조용히 웃었다.  나도 인도를, 인도 사람들을 모르기 때문이다.


 승무원이 차주문을 받기 위해 내 옆으로 다가왔다. 너무나 안쓰러워 어깨를 토닥여 주었더니

"나는 너무 피곤해요!"

하며 울상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당신도 피곤하지요? 미안해요"

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정말 대단한 직업정신이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좀 전에 야속한 마음은 사라지고  괜찮다고 그녀를 위로했다.


 "저 사람들 어때?"

맞는 질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만난 인도 사람들에 대한 느낌이 어떤지 묻고 싶었다.

"이기적이야.  자기들밖에 모르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하나도 없어. 누가 뭐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왜 아무도 말을 안 해요? "

큰 참새가 말했다.

"근데 좀 불쌍해!  먹고살려고 저러는 거잖아. 다른 사람들도 안보일만큼 절박한 거  아닐까? 저렇게 사는 저 사람들이 가여워!"

생각지도 못 했던 작은 참새의 말이었다.

"뭐가 불쌍해? 예의 없는 사람들이지 이기적이니까 다른 사람을 슬프게 하는 거야! 아무 말도 못 하는 우라가 불쌍하지!"


참새들이 처음 만난 인도, 인도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삶에 대한 열정이 지나치게 강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생각지 못할 만큼 자신을 놓아버리는  사람들이었다. 비행기 안의 다른 인도 사람들 조차도 외면하고 침묵할 만큼 그들은  우리에게 위압적이고  무례한 무리였다. 출국심사대를 저렴하게 통과하기 위해 겹겹이 옷을 껴 입고 들어와 비싼 비행기 삯의 본전을 뽑을 양으로 활개 치는 다른 사람들을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 이기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슬프게 한다. 다른 사람이 가까이 오지 못 하도록  팔을 휘저어 자신의 두려움을 흩어놓는지도 모르겠다."

내게 하는 말인지 그들을 두고 하는 말인지 대상을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 새어나왔다.  


처음이란 머리 못이 빠지면 실타래도 자연스레 풀어진다. 머리 못이  단단할수록 실타래가 풀어질 일은 드물지만 매달린 실타래를 자꾸 잡고 흔들다 보면 뽑힐 수도 있겠지! 인연의 실타래가 길어지면 머리 못도 흔들리겠지! 처음이  끝은 아니지 않은가!

안개 낀 콜카타가 내려다보였다. 그들의 움직임은 비행기 착륙 20분 전, 참다못한 승무원들이 "움직이지  마"라고 소리를 지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안개 자욱한 인도가 보였다.

콜카타 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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