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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Jan 23.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 9

## 안개 속의 콜카타

 "콜카타의 거리는 차가운 안개가 아닌 텁텁한 스모그에 갇힌  듯했다."




 23시 40분! 자정이 가까운 시간 도착한 콜카타 공항은 뿌연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방금 전에 소독차가 지나간 듯 매캐하고 하얀 연기가 시야를 가려 답답한 꿈속을 걷는  듯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빠르게 공항을 빠져나갔다. 우리도 입국 수속을 밟기 위해 e-Tourist Visa  창구 앞에 줄을 섰다.

"엄마, 왜 이렇게 뿌옇지?"

큰 참새는 입을 가리고 계속해서 기침을 해댔다.

"글쎄, 공항 내 소독을 했나?"

탁한 공기를 뚫고 나의 목소리가 휑한 공항의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창구에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업무를 보는 사람은 하나였다. 공항의 연기만큼이나 답답한 노릇이었다. 늦은 시간 야간비행으로 지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창구를 모두 열어두면 좋겠는데 한 사람은 비스듬히 앉아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일을 보는 사람이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노는 것인지 일을 하는 것인지 두 사람은 연신 떠들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급할게 무엇이 있겠는가, 급한 건 우리겠지! 세월아 네월아 여유로운 인도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공항직원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제야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한 사람의 지원자가 나타나고 창구가 하나 더 열렸다.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어 내일로 가고 있었다.  


 공항의 프리 페이드(선불정액제) 택시를 타고 미리 알아둔 숙소 근처로 갔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아서 프리 페이드를 끊을 때 미리 알아둔 적당한 숙소의 이름을 댔다. 택시기사에게 뿌연 연기의 정체를 물으니 안개라고 했다. 그러나 공항을 벗어난 콜카타의 거리는 차가운 안개가 아닌 텁텁한 스모그에 갇힌  듯했다.  

 인도와 한국의 3시간 30분의 시차를 감안하면 28일 새벽 4시부터 움직이기 시작하여 꼬박 24시간 만에 인도의 콜카타에 도착했다.  낯선 콜카타의 버석거리는 어둠에 잔뜩 긴장한 참새들을 쉬게 하는 일이 최우선이었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하느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다."


 콜카타의 방값은 비쌌다.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시설에 비해 말도  안 되게 비쌌다. 더구나 다음날 아침이면 여행자 거리로 옮겨야 하기 때문에 몇 시간만 지내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 밤중에 이것저것 따질 수가 없었다.

"뜨거운 물?"

"노 프라블럼"

"와이파이?"

"노 프라블럼"

  1,700루피를 주고 하룻밤을 묶기로 했다. 1,700루피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가격이다. 종업원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나무판자 위에 얇은 매트리스를 얹어 놓은 더블 침대 위에 세탁을 언제 했는 지도 알 수 없는 담요가 놓여 있었다. 종업원이 두께가 1cm쯤 되는 롤 휴지  두 개와 여행용 세숫비누 하나 , 그리고 수건 세 장을 건네주었다.

  

"피곤하니까 대충 씻고 일찍 자자."

 참새들이 씻는 동안 침대 위에 담요를 깔고 그 위에 침낭을 폈다. 그리고는 혹시나 추울까 봐 한국에서 가지고 온 담요를 덮어주었다.

"엄마, 물이 안 내려가?"

"한강이야. 한강!"

 참새들의 소란에 욕실로 들어가 보니 배수구가 이물질로 꽉 막혀 있었다. 주인에게 방을 바꿔달라고 했더니 마치 배수구가 막힌 것을 알고 있었던 듯 실실 웃고는 옆방으로 옯기라고 했다. 속에서 찝찝한 울렁거림이 올라왔다.

'이런 그지 같은......'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하느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다. 섣불리 성질을 건드렸다가 한밤중 말도 안 통하는 인도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작아지게 했다.  다시 옆방으로 짐을 옮기고 참새들 잠자리를 봐주었다.

 "방 괜찮아?"

"응, 생각보다 좋은데"

"맞아, 뜨거운 물도 펑펑 나오고"

"샤워기가 안돼서 좀 그렇지만......"

" 참새들아! 인도에서 영화 속  주인공처럼 샤워기 틀어 놓고 소나기 맞을 생각은 접어라. "

"네!"

 참새들은 깔깔거리며 합창을 했다. 제 에미가 속이 타건 말건 처음 보는 신기한 것들을 들추며 피곤한 줄도 모르고 쫑알거렸다. 침대에 벌러덩 누워 친구들에게 톡을 보내고 영구처럼 혼자서 히죽히죽 웃기도 했다. 나는 이제 겨우 산 넘고 물 건너 인도에 도착했더니 온 몸에 근육들이 힘없이 축 늘어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참새들이 웃으니 정말 다행이었다. 숙소가 지저분하다고 투정을 부리거나 불편하다고 징징거릴 줄 알았는데 웃는 얼굴을 보니 괜한 걱정을 했다 싶었다.

 인도의 게스트 하우스에 딸린 욕실엔 플라스틱 양동이와 작은 바가지가 있다. 세면대는  고양이 세수하기 딱 좋을 만큼 작다. 처음엔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세수를 하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샤워기도 달려 있는데 물줄기가 약해 영화 주인공처럼 멋진 샤워는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쭈그리고 앉아 양동이에 물을 받아 시원하게 씻는 편이 낫다. 참새들은 모르겠지만 내겐 익숙한 일이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엔 숨바꼭질하기 딱 좋은 뚜껑이 있는 빨간 고무통이 있었다. 그 안에 물을 받아두고 필요한 만큼 대야에 덜어 썼었다. 세수를 하고 발을 씻고 그 물을 화단에 뿌려 쓸데없이 흘려보내는 물을 줄였었다. 참새들은 따뜻한 아파트에서 수도꼭지만 틀면 콸콸콸 나오는 물로 한 시간씩 샤워를 하다 잔소리를 들어도 여전히 돈이 흘러가는 줄 모르고 물을 쓴다. 양동이와 바가지를 본 김에 물에 대한 잔소리를 하려다가 거두었다. 참새들이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인도에 온  첫날이지 않은가!

" Welcome to India"

 두 팔을 벌리고 활짝 웃는 내일의 태양 아래 인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 나도 오늘은 멋지게 인사를 하려 한다.

"아름다운 밤이에요!"

인도에서의  첫날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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