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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Jan 24.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 10

##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단호해야 하고 문제가  해결되면 오른손을 내밀고 웃어야 한다."


 다시 아침이 왔다.  어떤 날은 아침이 오지 않길 간절히 바란 날이 있었다. 눈을 감은채 영원히 잠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싶어서도 아니고 매혹적인 어둠의 포로가 되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눈을 뜨면 마주해야 할 어제와 같은 오늘이 싫어 눈을 감고 싶었다. 하지만 어김없이 태양은 떠올랐다. 내가  하루 종일  이불속에서 하루의 시작을 거부해도 나는 시간의 품에 안겨 하루를 살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살아보니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어제와 같은 오늘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늘 오늘다운 오늘이 펼쳐지고 있었다.

 곤한 잠에 빠져 긴 어둠의 동굴 속에 있는 듯했는데  떫은 단감 같았던 밤이 지나고  따스한 햇살이 비췄다. 인도의 아침은 귀를 찢을 듯한 경적(klaxon)으로 시작된다. 기상 알람 치고는 요란하기 그지없다. 도로에 접한 게스트 하우스의 창을 뚫을 기세로 울려대는 경적소리에 싸우는 소리인지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일어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방문을 밀치고 쳐들어 올 것 같았다.

"짜증 나! 왜 이렇게 시끄러워!"

 작은 참새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고는 신경질을 냈다. 반면에 큰 참새는 밖에서 전쟁이 났는지 난리가 났는지 상관없다는 듯  누워 있었다. 분명 잠이 깬 것 같은데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난리가 나든 말든 나는 내 시간을 지키겠다는 심산인 듯했다. 가끔은 그런 큰 참새의 무덤덤함이 부럽기도 하다.

  10시! 새벽 4시가 넘어 잠이 들었으니 늦잠을 잘 만도 했다. 하지만 일어나야 했다. 12시 check out을 하고 여행자의 거리 사다르 스트리트(Sudder St.)로 가야 했다. 참새들에게 일정을 설명하고 서둘러 달라고 부탁했다. 각자의 배낭을 챙기고 흘린 것은 없는지 베개도 들춰보고 담요도 걷어보고 욕실도  한 바퀴 둘러보도록 했다.

 짐을 다 챙기고 프런트로 내려와 주인에게 숙박비 영수증을 달라고 했더니 영수증에 물값으로 40루피가 청구되어 있었다. 영문을 몰라 물으니 우리가 어젯밤 물 두병을 먹었다는 것이다. 물을 줬다고? 생각해보니 종업원이 미네랄워터 두 병을  들여놨던 기억이 났다. 묻지도 않고 고맙게 냉큼 받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달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

"난 달라고 한 적 없는데, 네가 주지 않았느냐?"

 우리는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작은 참새가 기가 차다는 듯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정의에 불타는 녀석이 금방이라도 주인에게 달려들 것 같았다. 하지만 주인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양손바닥을 어깻죽지까지 들어 올리면서 씩 웃었다.

"오케이, 노 프라블럼!"

"뭐야? 진짜 웃겨."

 기가 막힐 노릇이다. 말 한마디에 거둬들일 말을 도대체 왜 꺼냈을까? 주인장 손끝에 간을 대준 것 같아 찜찜하면서도 길게 토를 달지 않는 그놈의 "노 프라블럼"에 웃고 말았다.


"참새! 표정관리 좀 하자. 그렇게 얼굴 붉히지 않아도 돼! 자꾸 싸우려고 들면 너만 피곤해. 저 사람을 봐. 끝내는 아무  문제없다고 웃잖아!"

"어우, 열 받아!"

 작은 참새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가슴을 치고 큰 참새는 그런 작은 참새의 어깨를 툭툭 토닥였다.

 인도 사람들은 참 잘 웃는다. 장사꾼들은 특히 더 잘 웃는다. 거기다 대고 화를 내면 내 속만 뒤집어진다. 욕을 하더라도 끝까지 웃으면서 해야 한다. 그들은 부딪치는 것이 싫은 듯 쉽게 타협하고 받아들인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단호해야 하고 문제가  해결되면 오른손을 내밀고 웃어야 한다. 물론 쓸데없는 웃음은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외국인 여자가 실실거리면 그들은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줄 안다. 그러니 실없는 미소는 금물!


 콜카타의 택시는 인상적이다. 특히 노란색 택시는 세련되고 도회적인 느낌이 들어 인도스럽지 않다. 인도가 200여 년 동안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듯했다. 여행객에게는 사치일 수 있지만 택시 안의 안락함의 정도가 궁금해 타 보고 싶어 진다. 결론은 낡은 택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실내도 지저분하고  승차감이 엉망이란 것이다. 그렇다고 타기 전에 가격 흥정은 해도 실내를 들여다보고 선택할 수는 없다. 흥정하는 사람 따로 택시 따로 인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콜카타 사다르 스트리트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짤로
거리를 달리는 택시들
차선이 없는 도로를 달리느 택시들


"인생은 언제나 선택이다. 다 가질 수 없기에 더 나은 것을 갖기 위해   더 못한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놓은 것에 '만약'라는 가정을  두기보다 취한 것에 '역시'라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


 공항 근처  게스트 하우스에서 사다르 스트리트까지 300루피를 주고 택시로 이동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좋은 게스트 하우스를 소개해 주겠다고 호객꾼들이 달려들었다. 뜨거운 물은 나오는지, 와이파이는 되는지 확인한 후에 호객꾼을 따라갔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방이 없었다. 11월에서 2월까지 인도의 겨울은 여행객들이 넘쳐나는 성수기이다. 더구나 새해를 앞둔 연말엔 인도 여행객들도 많아 숙박시설이 많지 않은 콜카타는 비싼 방값에도 불구하고 방을 구하기 힘들다. 몇 군데를 돌아다녔는데도 방이 없었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도 드물었다. 호객꾼이 와이파이가 된다고 데려간 곳 대부분이 "노 와이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대여섯 군데를 따라다니다. 화가 나서 호객꾼에게 손을 내치며

"짤로 짤로! (저리 가 저리 가!)"

인상을 썼다. 그래도 한 군데만 더 가자고 계속  따라붙길래 목소리를 높이고 소리를 질렀더니 그제야 물러섰다.

"참새들, 뜨거운 물을 포기할래? 와이 파이를 포기할래?"

두 가지를 다 만족시키는 방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더 머뭇거리다가는 길거리에서 자야 할 상황이었다. 인생은 언제나 선택이다. 다 가질 수 없기에 더 나은 것을 갖기 위해   더 못한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놓은 것에 '만약'라는 가정을  두기보다 취한 것에 '역시'라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와이파이 안돼도 상관없어. 인도에서 만큼은 와이파이 접지 뭐!"

작은 참새는 당연하다는 듯 와이파이를 포기했다.

"난 와이파이가 되면 좋겠는데 날도 더운데 굳이 뜨거운 물은 없어도 될 것 같아!"

큰 참새는 차라리 뜨거운 물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후~ 큰 참새는 몸만 인도에 있었지 마음은 아직 한국에 있는 것 같았다. 결정은 내가 해야 했다.

"엄만, 와이파이를  포기할래. 그래야 인도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낮에는 덥지만 지금 인도는 겨울이라 밤에는 추울 거야. 저 사람들을 봐. 털옷에  털모자에  둘둘 말고 다니잖아!"

  사다르 거리의 인도 사람들은 대부분 차다르(사이즈가 큰 인도 남성용  숄)를 걸치고 있었다. 희한한 건 발은 시리지 않은지 맨발에 쪼리를 신고 있다는 것이다. 큰 참새는 우리의 의견을 따랐다.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와이파이를 포기하고 하루  1,650루피짜리 방을 간신히 구해 짐을 풀었다. 한국에서 꽁꽁 싸매고 왔더니 콜카타는 찜통 같았다. 가벼운 반팔 옷으로 갈아 입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사다르 스트리트에서 외국인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다는 유명한 "Blue Sky Cafe"를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먼저 다가왔다. 인도에서 에어컨이 나오는 곳은 어디든 다른 곳보다 비싸다. 잠시후 희극인을 연상시키는 작고 통통 튀는 남자 종업원이 경쾌한 목소리로 우릴 맞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환영인사를 건네더니 메뉴판을 주고 묻지도 않은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방금 전에 와이파이를 포기했는데......

 큰 참새는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전화기를 꺼냈다. 나는 와이파이 안 되는 다른 가게로 갈걸 후회가 되었다.  틈만 나면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녀석이 내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작은 참새는 머튼 커리를 시켰다. 양고기를 꼭 먹고 오라는 친구들의 주문이 있었다고 했다. 언제나 즐거운 녀석이 기특하고 대견했다. 힘들 텐데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녀석의 긍정적인 열정에 박수를 보냈다.

 콜카타에서 이틀을 머물 것이다. 점심을 먹고 들어오니 이사를 온 듯한 인도 여행객들이 숙소 입구에 모여 있었다. 인도 사람들은 왜 저렇게 짐이 많은 것일까? 볼 때마다 궁금하다. 자기 몸만 한 캐리어에 도대체 무엇을 넣고 다니는지 가방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졌다. 남의 가방 속을 허락 없이 열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신기한 듯 바라보며 지나쳐 왔다.


 점심을 먹고 난 큰 참새는 속이 좋지 않다고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큰 참새는 숙소에서 한숨 자라고 하고 우리는 델리행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달 하우지 (B.B.D.Bagh) 광장에 있는 외국인 전용 매표소까지 오토릭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뉴델리역에는 이층에 외국인 전용 창구가 있는데 시내 한 복판에 따로 기차표를 살 수 있는 창구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미리미리 기차표를 예매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연말이고 여행 성수기라 기차표를 구하기 쉽지가 않았다. 우선 8,400루피를 주고 뉴델리까지 가는 라지다니 익스프레스(Rajdhani Express)만 예매를 했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아이들이 인도에서 처음 타는 기차이고 17시간 이상을 달리는 기차에서 보내야 했기 때문에 주요 관광지만 빠른 속도로 이어주는 라지 다니를 선택했다.

  다음 행선지의 기차표를 예매하지 못해 걱정이 되었지만 그 걱정은 뉴델리에 가서 하기로 했다. 미리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그냥 기차표가 있는 대로 일정을 조정하면 그만이었다. 숙소로 돌아갈 때는 걷기로 했다. 여행지에서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보다 할 수만 있다면 걸으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는 것이 여행지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는 방법이다.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움직이고 싶을 때 움직이며 사람들과 직접 부딪치는 것이 여행을 풍요롭게 한다. 달하우지 광장에서 초우 링 기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는 시장을 통과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걸어가자고 먼저 말하는 작은 참새의 호기심을 알기에 웃음이 났다.


 콜카타의 거리는 델리와는 전혀 다른 색깔을 하고 있다. 건물들도 유럽풍에 가깝고 사람들도 굉장히 역동적이다. 그래서 잠시 인도가 아닌 유럽의 어느 도시에 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한다. 칠이 다 벗겨진 노면전차를 비롯해서 화려한 그림으로 단장한 시내버스 그리고 눈에 띄는 노란색 , 흰색 택시들이 거만하게 도로를 달린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곳곳에 정복을 하고 서 있는 경찰들은 여전히 나를 주눅 들게 한다. 그들이 차고 있는 총이 진짜 총인지 호기심이 발동하여 들여다보면 정말 총알이 들었는지 궁금해하다 바짝 긴장이 돼서 차가운 총구에서 멀리 도망치게 된다.

 

콜카타의 시내버스
사라져 가는 노면 전차(Tram)
관공서 주차장에서 서 있는 차들


"서로 상반된 서로를 마주하는 일이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기에 함께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나의 몫이다. 내가 마주하게 된 불편함이 무엇이  될지 나만이 알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누군가에게 나도 불편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딜 가나 사람 사람들이다. 연말이라 새해 준비를 하는 인도 사람들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와 시장통은 북새통이다. 우리네가 설빔을 준비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먼지 덕분에 목은 컬컬하고 눈은  따끔거린다. 더위도 한몫해서 갈증이 더할대쯤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인도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생과일주스가 우리의 목마름을 달래 줄 것 같았다. 원색의 싱싱한 과일들이 주스가 되어 나오는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다. 한 잔에 20 루피 하는 생과일주스를 잘 생긴 인도 청년이 수줍은 듯 건네주니 더 상큼했다.  사탕수수도 즉석에서 짜 주는데 비리한 풋내 속에 든 달콤함이 유년의 첫사랑을 생각나게 한다. 있는 힘껏 사탕수수를 짓이겨내는 모습을 보면 10루피가 아깝지 않다.

사탕수수 즙을 짜는 노인들
생과일 주스를 만드는 청년

  콜카타의 거리에 어둠이 내려오고 있었다. 사다르 스트리트의 밤은 낮과는 다른 생동감으로 반짝였다. 어둠에 가려진 적당한 추함과 불빛을 받아 드러나는 적당한 몽환이 여행객들을  사로잡는다. 고급 호텔 앞 담벼락엔 걸인들이 자리를 깔고 잠을 청하고 있고 불을 밝힌 술집 앞에선 창녀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한산하던 거리는 북적이기 시작했고 덩달아 곳곳에 쓰레기도 넘쳐났다.  세상은 극과 극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상반된 서로를 마주하는 일이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기에 함께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나의 몫이다. 내가 마주하게 된 불편함이 무엇이  될지 나만이 알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누군가에게 나도 불편함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게스트 하우스 전체를 전세 낸 듯 인도 여행객들이 밤새 시끌벅적한 잔치를 벌였다. 큰 참새는 속이 불편하다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작은 참새는 천하의 예의 없는 인도 사람들을 욕하며 구시렁거리다 잠이 들었다. 이렇게 또 하루가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던 내 몸은 으슬으슬 한기가 돌았다. 김광석의 노래가 몹시도 그리운 콜카타의 밤이 저물어 갔다.

사다르 스트리트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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