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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Jan 25. 2016

엄마 딸이어서 고마워! - 11

##  콜카타 사다르 스트리트의 아침 풍경!

   "육체는 정신의 지배를 받는다. 정신이 강하면 오던 병도 달아난다. 난 아프지 않을 것이다. 난 아프지 않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뼛속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낮에는 더워서 반팔 티셔츠를 입고 여름에 델리에서 산 쪼리를 신고 다녔는데 해가 지니 한국의 초가을 같은 서늘한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한밤중이 되자 초겨울 음산한 바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참새들은 더블 침대에 나란히 눕고 나는 그 발 밑에 놓인 싱글 침대에서 담요  한 장을 덮고 누웠더니  축축한 냉기가 올라와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게 했다. 창문이 열린 것은 아닌가 싶어 잠금장치를  확인하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경량 다운재킷을 꺼내 입고 다시 침대에 누웠었다. 참새들이 감기가 들까 싶어 걱정이 되었다. 뜨끈한 온돌이 그리웠지만 온돌까진 아니더라도 방안 공기라도 훈훈하게 데울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잠을 청했었다.  새끼발가락 저 끝에서 감기가 오는  듯했다.

'아프면  안 되는데......'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체는 정신의 지배를 받는다. 정신이 강하면 오던 병도 달아난다. 난 아프지 않을 것이다. 난 아프지 않다." 돌돌 말아 올린 몸을 끌어안고 나를 달래는 주문을 외웠다.

  잠에서 깨어 참새들을 들여다보고 3층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의 좁은 계단을 내려왔다. 인도의 식당이나 게스트 하우스는 좁고 높은 계단 위에 위치해 있다. 폭이 일 미터 내외인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곤혹이다. 그런데 풍채 좋은 인도 사람들은 잘도 오르내린다. 올라 가면 그렇게 좁은 공간도 아닌데 통로를 왜 그렇게 좁게 해 놓았는지 모르겠다. 인도는 역시 알 수 없는 나라다.



"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더러운 것을 거두며 덧칠된 색을 벗겨내고 사람들의 죄를 씻는 신의 자식들이 있기에 우리는 덤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밤새 짖던 개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고 골목의 쓰레기를 수레에 담는 청소부가 보였다. 인도에는 가스트 제도 안에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들의 대부분이 청소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몸은 사람이지만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들과 접촉하거나 보는  것만으로도 부정한 존재로 차별을 당한다. 1억 명이 넘는 불가촉천민들은 사회 곳곳에서 많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지만 사회적 시선이나 복지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간디가 하리잔(신의 자식)이라고 불렀던 그들은  거리의 소들이 질펀하게 싸질러 놓은  소똥부터 지린내가 진동하는 하수구를 꽉 메운 쓰레기까지 작은 판자 두 쪽으로 긁어 담는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배설물 처리나 청소일을 담당한다고 하는데 요즘엔 전통적인 카스트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그마저도 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 내가 그들에게 눈길이 간 것은 일을 하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활기차게 일하는 그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까르마(Karma)라고 하는 그들의 "업"을 받아들이고 다음 생애 해탈을 위해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은 언제나 즐겁다. 그래서 나는 그들 옆을 지날  때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살며시 고마움을 표시한다.

이른 아침 바라나시의 골목에서

 

콜카타의 빅토리아 기념당 앞에서

게스트 하우스 바로 앞에는 빨래방이 있다. 컴컴한 실내와는 다르게 파란 대문이 인상적인  빨래방인데 빨래를 전문으로 하는 도비(Dhobhi)들이 오전 내내 빨래를 한다.  온몸이 다 젖도록 빨래를 하고 빨랫줄에 가지런히 빨래를 널어 말리면 다른 한쪽에선 한국의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숯을 달군 다리미가 바쁘게 움직인다. 역시 낮은 계급의 카스트 신분의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바라나시의 도비 가트가 생각나 게스트 하우스를 나올  때마다 눈길이 갔다. 신기하게도 오전에 빨래가 끝나면 오후에는 문이 굳게 닫힌다.

 세상은 원래 순백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순백의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살 수가 없어 세상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물들인 세상에서 죄를 감추고 남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발버둥을 치며 색 위에 덧칠을 하고 덧칠하기를  반복한다. 그러면서 언제나 순백의 세상으로 돌아가 자신의 죄가 씻겨 지길 기도한다.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더러운 것을 거두며 덧칠된 색을 벗겨내고 사람들의 죄를 씻는 신의 자식들이 있기에 우리는 덤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파란 대문이 인상적인 빨래방


  "인도가 건강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타인의 삶을 내 안으로 끌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 아침 골목 입구에는 사람들이 짜이(Chai)를 마시기 위해 나와 있었다. 짜이는 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듬뿍 넣은 인도의 대표적인 음료이다. 생강즙이나 민트를 넣어 풍미를 더하기도 하는데 나는 생강 맛이 진한 짜이를 좋아한다. 인도 곳곳에서 찌그러진 깡통에 숯을 피워 그위에 주전자를 얹고 "짜이 짜이!" 외치며 다니는 짜이 왈라(짜이를 파는 사람)를 만날 수 있다. 인도의 아침은 날카로운 경적을 들으며 뜨끈한 짜이를 마셔야 시작된다.

 짜이를 담아 주는 일회용 붉은 황색 토기는 짜이를 마시고 나서 과감하게 깨버리면 된다. 처음에 짜이를 마셨을 때 한 번 쓰고 버리기 아까워서 집에 가져갈까 생각했다. 그런 나를 보고 친구가 웃길래 영문을 몰라 물었더니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데 유약을 바르지 않은 말 그대로 토기라 금방 산산조각이 난다고 알려주었다. 인도는 나뭇잎으로 만든 일회용 접시나 일회용 토기를 이용해 자연에서 얻은 것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건강한 나라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버려진 일회용품들은 지나가던 소들이나 염소들이 먹는다고 했다.

 요즘은 가격이 싼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거나 종이컵을 사용하는 짜이 왈라도 많은데 왠지 짜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것 같아 받아 들면서도 달갑지 않다. 써늘한 인도의 겨울 아침 뜨끈한 짜이 한 잔을 마시고 시원하게 바닥으로 집어던지는 쾌감을 느낄 수 없어 더욱 서운하다.

게스트 하우스 앞 짜이왈라


 사다르 스트리트는 다시 뿌연 안개에 덮여 눈에 백태가 낀 것 같은 개운하지 않은 아침을 맞고 있었다. 손님을 기다리는 노란 택시가 나무 밑으로 즐비하게 서 있고 사람들은 좁은 인도를 피해 차도로 바쁘게 걷고 있었다. 어젯밤 호텔 담벼락에 자리를 잡았던 걸인은 아직 차가운 아침을 맞기가 버거운지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인도가 건강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타인의 삶을 내 안으로 끌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같았으면 고급 호텔 앞에 자리를 잡은 걸인을 그냥 두었겠는가? 호텔 이미지를 망친다고 경찰을 부르거나 건장한 어깨들을 불러 끌어냈을 것이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고급 호텔 앞에 집시촌이 있고 걸인들의 거처가 있다. 인도 박물관 옆으로는 노숙을 하는 걸인들이 즐비하다. 고급 기념품점 앞에 비슷한 기념품을 파는 노점이 펼쳐지기도 한다.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삶에 당당하고 자신 있다는 것이다.

 비슷비슷한 업종의 가게들이 즐비한 것도 신기했다. 저러면 장사가 될까 싶은데 그 가게들은 모두 일인 가게가 대부분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물건을 두고 손님을 받는다. 이발소도 곳곳에 눈에 띄는데 의자가  한두 개뿐이다. 손님들은 편하게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주인과 대면할 수 있다. 인도도 선진화가 진행 중이라 대형 마켓이 들어오고 물가도 하루가 다르게 오른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징그럽게 안 변하는  나라라고도한다. 변화의 속도가 얼마나 더뎌질지는 알 수 없지만 바라건대 인도만의 건강함을 오래도록 지켰으면 한다.

1인 이발소


 거리를 둘러보다 상점 앞에 앉아있던 아저씨들이 "굿모닝" 인사를 건네 왔다. 나도 "굿모닝 나마스떼" 인사를 했더니  그중에 한 분이 "노 굿모닝"이라고 고개를 돌린다. 얼굴에 잔뜩 뿔이 나 있길래 자세히 보니 어제 호객행위를 하다 화를 당한 사람이었다. 웃음이 나서 " 굿모닝 나마스떼" 다시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했더니 다른 분들은 좋다고 하는데 혼자만  심드렁해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난기가 발동해서 사진을 찍고 말았다.

 택시가 즐비한 한쪽 끝으로 릭샤왈라들이 모여 있었다. 콜카타에서 만날 수 있는 인력거 릭샤는 패트릭 스웨이지가 주연한 시티 오브 조이(City of Joy)의 하사리를 떠오르게 한다. 맨발로 도로를 달리던 하사리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릭샤 왈라들 곁을 지나갔다.  하사리처럼 맨발로 도로를 달리는 릭샤왈라는 보이지 않고 대부분 신발을 신고 있었다. 콜카타에서는 릭샤 영업을 할 수 있는 지역과 도로가  제한되어 있고, 1997년 여름 이후로는 신규면허를 발행하지 않아 인력거 릭샤왈라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그러다 어제 콜카타에 도착하여 우연히 도로를 맨발로 달리는 릭샤왈라를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미안해서 대놓고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맞은편 소방서를 찍는 척하고 멀리서 셔터를 눌렀었다. 아직도 차선도 없는 도로를 내달리는 자동차들 사이를 비집고 맨발로 도로를 달리는 릭샤왈라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하사리의 고된 까르마가 떠올라 가슴이 아파왔다. 나는 아무리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해도 그들의 릭샤에 내 육중한 몸을 실을 수 없을 것 같다. 달리는 내내 미안해서 안절부절 엉덩이를 들썩이고 가슴을 졸일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콜카타의 손님을 기다리는 릭샤왈라
맨발로 도로를 달리는 콜카타의 릭샤왈라

 새끼발가락에서 시작된 감기가 뜨근한 짜이에도 물러서지 않을 모양이었다. 콜카타의 아침을 그대로 맞고 나니 머리는 몸이 가벼워졌다고 하는데 정작 몸은 미열과 두통으로 현기증이 났다. 크게 기합소리를 내고 나를 다잡고는 숙소로 돌아와 잠에서 깬 참새들을 일으켜  인도의 아침을 열어주기 위해 따끈한 짜이를 선물했다. 차를 좋아하는 큰 참새가 처음 먹어보는 짜이에 반한 듯 맛있다고 기분 좋게 하루를 열었다. 나는 참새들에게 말했다. 참새들, 오늘은 좀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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