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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이 Nov 17. 2019

동생의 시간

우리 때도 다 그랬어

  우리 부부에게 친동생 같은, 이제 친동생이 된 녀석이 있다. 결혼 전부터 셋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자연스러웠다. 각종 보드게임을 섭렵하고, 휴가철이면 함께 여행을 갔고 맛집 탐방은 매주 있는 행사 같았다. 간혹 차 뒷자리에서 말없이 창밖을 보곤 했지만, 우리는 웃을 일이 많았고 즐거운 화젯거리로 서로를 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관심은 넘쳤지만 함께 하는 시간 바깥에 존재하는 동생의 시간과 , 희비극의 '비' 부분은 우리의 대화에 잘 소환되지 않았다. 


동생은 회사라는 사회의 약자였다. 경력이 제일 짧았으며 나이도 가장 어렸다. 집에서 맏이인 동생은 스물여덟에 막내가 된 것이다. 한 가구 업체의 총판인 이 회사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이 대표까지 다섯 명,  입점한 백화점 매장의 매니저(중년 여성)들 십여 명 정도 된다. 동생의 근무지는 사무실이고, 백화점 매니저들과 잦은 소통을 해야 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얼마 전 회사 얘기를 무던하게 꺼내던 동생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막내로서의 삶이 고단했는지, 하나하나 고충을 털어놨고, 우리는 막내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경청했다. 동생은 회사에서 막내이기 때문에 해야 되는 일이 많았다. '우리 때도 다 그랬어'라는 면피성 발언들을 얹은 업무 외적인 일들까지 겹쳐 더 고단해 보였다. 윗사람들은 자신이 사용한 텀블러를 씻지 않았다. 원래 막내가 하는 거라며. 나이 차이가 가장 적게 나는 과장도 요즘 들어 슬쩍 눈치를 보며 텀블러를 싱크대에 그대로 놓고 가곤 했다. 본사 사무실과 연결된 쇼룸 청소부터 사무실 집기 청소, 대표 방 청소, 모든 수신 전화받기 등등 잡다한 일들이 동생에게 몰렸다. 


그러는 와중에 백화점 매니저와 갈등이 벌어졌다고 했다. 외국에서 제품의 출고 여부를 타전하는 문의가 왔고, 그에 대한 매니저의 문의에 동생은 본사와 상의 후에 '불가'하다는 결론을 통보했다. 문제는 실적이 중요한 매니저의 돌발 행동으로 발생했다. 해외의 환경과 맞지 않는 국내용 상품을 임의로 발송한 매니저는 회송되어 돌아온 상품의 배송비에 대한 책임을 동생에게 물었다. 만약을 대비해 모든 대화 내용을 메신저로 남겼고, 명확하게 매니저의 실책이라는 증거를 보여주었지만 막무가내였다. 백화점 영업을 담당하는 부장은 백화점에 피해 가지 않게 빨리 처리하라는 업무 지시만 할 뿐이었다. 


그날 지난 한 주가 고됐다는 동생은 귀찮은 일은 일대로 시키고, 책임은 앞서 지지 않는 상사들을 고발하며 '막내 해 먹기 어렵다'는 말을 남겼다. 


아내는 동생 챙기기를 부모님 공양하듯 한다.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가 초콜릿을 사기 시작한 것도 초콜릿을 좋아하는 동생과 친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고, 매주 일요일 동생의 점심 도시락을 정성껏 챙긴다. 집에서 손수 염색까지 해주는 아내는 동생을 귀한 집 막내처럼 대한다. 그런 동생의 회사 막내 생활을 듣는 아내의 심장 박동이 상승한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막내인 건 네 잘못이 아니야.


나는 막내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막내라면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가 문제라며 열을 냈고, 아내는 막내가 처음부터 막내이고 싶어서 막내인 것은 아닐 텐데... 라며 동생을 격려했다. 


동생의 시간이 원하지 않는 타이틀에 갇혀 곤혹스럽지 않길 바란다. '우리때도 다 그랬기 때문에, 혹은 나도 그렇게 당했기 때문에'라는 이유는 더 이상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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