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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이 Nov 07. 2019

엄마의 4번 요추

엄마 잘못이 아니에요

거실에 놓인 엄마의 책상은 동그랗고 작다. 거실에 이것저것 늘어놓으면 좁아 보인다는 아빠의 핀잔에 책상이 점점 작아져 지금의 책상이 된 것이다. 그 책상에는 늘 책이 앞다퉈 북적인다. 퇴근해 집에 들어올 때 엄마는 돋보기안경을 쓰고 책상 의자에 앉아 나를 쳐다보곤 했다. 공부라도 이렇게 안 하면서 내가 우울해서 못 산다는 엄마는 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작년 다시 같은 학교 중문과에 입학하셨다. 출석 수업이 자주 있지 않았지만, 간혹 있는 출석 수업과 중간 기말 시험을 보러 엄마는 세상 짐을 다 욱여넣은듯한 조그만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먼 길을 오가셨다.


이번 학기부터 엄마의 등교는 늘 아빠와 함께다. 아빠의 차를 타고 학교에 가고, 오고를 반복한다. 외출할 때면 꼭 어깨를 무겁게 누르던 가방도 아빠가 대신 멨다. 엄마가 아프다. 엄마의 다리가, 허리가, 엉덩이가. 결혼을 하고 근래 엄마 집에 가면 책상 앞이 아닌, 소파에 앉아 있는 엄마를 더 자주 보게 됐다. 어느 때부터인지 엄마는 누워 있는 것도 힘들어했다. 오로지 앉아 있을 때만 고통에서 자유로웠다. 공부하는 엄마를 보는 것이 내가 진 부채를 더는 일 같아 반가웠는데, 고통이 휘감은 육체를 지탱하기조차 버거운 엄마를 보는 일은 눈을 뜨고 가위에 눌리는 것과 같았다.


엄마, 미안해 나 때문에 엄마가 너무 고생한 거야. 그래서 이렇게 아픈 거야. 미안해요


고통이 엄마를 더 깊숙이 잠식해 갔다. 엄마를 만날 때마다 용서를 구했다. 말로 탄식으로. 새벽에 진통을 시작해 그 날 늦은 저녁이 돼서야 나를 낳았다는 엄마, 웃으면서 '그땐 정말 힘들었어'라고 말하는 엄마의 몸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급격한 균열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사 남매의 맏이, 바람난 아버지에 똑똑하고 독선적이라 집안일을 큰 딸에게 떠맡긴 어머니, 동생들 공부시키느라 집안 일과 공장 일을 번갈아 했던 그때의 엄마는 전형적으로 '고생스러운 유년'을 보냈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엄마 몸의 모든 곳을 지켜내지는 못했으리라. 그 시절이 미안해 막내 이모가 매달 보내오는 오십만원이 엄마의 유년시절을 보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엄마는 가끔 책상에 앉아 창 밖을 보며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는 다시 공부에 매진했다. 결혼하기 전 자취를 끝내고 집에 들어와 보낸 육 개월, 엄마는 책상 옆에 누워 종종 엄마 얘기를 마냥 들어준 내게 '넌 참 좋은 아들'이라고 말해줬다.


강남의 2차 병원에서의 시술은 희망고문 같았다. '어렵지만 한 번 해 봅시다'라는 의사의 말에 엄마는 순백의 소녀가 되어 의사의 처방에 따랐다. 고통이 저감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엄마의 신경에는 계속 주사 바늘이 꽂혔다. 먼 길을 오가는 수고에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비관적인 소망이 엄마를 부지런하게 했지만, 소망이 늘 기적을 가져다 주진 않기에  엄마는 이내 10m도 걷기 어렵게 됐다. 고통에 등은 굽어갔고, 엄마의 활동반경은 극히 제한되기 시작했다.


엄마의 수술이 결정됐다. 강남 세브란스 척추 병원에서 수술 전 마지막 설명을 듣는 자리, 나는 그날 엄마의 무너진 척추를 직접 들여다봤다. 4번 요추가 내려앉아 디스크를 밀어냈고, 사진 상 뒤쪽 검은색의 낡은 인대는 불룩 나와 신경을 침범했다. 정확한 병명은 척추 전방 전위증. 5개의 척추가 다 좋지 않지만, 일단 급한 4번부터 해 보자는 의사의 말에 엄마는 휠체어에 앉은 상태로 숙일 수 있는 최대의 각도로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를 반복했다. 진료실에서 나와 엄마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느꼈다. 엄마를 똑바로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수술 걱정에 울상이 된 체로 엄마는


내가 관리를 잘 못해서 그래 미안해, 네가 고생이 많구나


라며 이 와중에도 자신 탓을 하셨고, 나는 엄마에게 진심을 다해 용서를 구했다.

엄마, 엄마를 너무 고생시켜서 미안해요.
엄마 척추가 닳는 동안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네...

   

엄마의 척추에 부채를 갖고 있어야 하는 사람은 많다. 그 세월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이탈한 디스크에 대한 공동 책임도. 엄마는 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누구의 탓도 하지 않는 엄마에게 '엄마 탓'은 아니라고 시도 때도 없이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엄마의 4번 요추는 가족 모두의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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