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탓이 아니야
아내는 요즘 부쩍 학원가는 길을 버거워했다. 원장, 운전기사, 선생님 두 명으로 구성된 이 학원은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 운전기사가 실장 역할을 하는 생소한 구조의 학원이라 아내는 원장을 두 명 모시는 기분이라 했다. 같이 일하는 선생님은 쇼핑몰 준비를 하느라 아이들 가르치는 일 외에 모든 잡무를 나 몰라라 했기에 아내가 떠맡아야 하는 일이 많았다.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않으면서 면전에서 내뱉는 아내를 제외한 세 사람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덧난 상처에 다시 소금을 두르고 집에 오는 날이 많았다.
사연 많은 미간을 찌푸리고 날이 바짝 서 집에 돌아온 아내는 하소연과 짜증을 번갈아 내며 하루의 고됨을 증명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의 속상함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했기에 나 역시 정서적인 여파가 만만치 않았다. 그만두라는 내 말에 그래도 잠들기 전이면 ‘다시 잘해보겠다’며 반복적인 다짐을 하는 아내가 안쓰러웠다.
그만둬 제발. 나 혼자 벌어도 살 수 있어 우리.
안돼. 빨리 돈 모아서 임대 아파트 탈출해야지.
결혼 승낙을 받으며 2년 안에 임대 아파트에서 나오겠다고 장모님과 약속했다. 결혼 초기 처가에 가면 장모님께 '2년 안 탈출'이라는 사실을 계속적으로 말씀드렸고, 그것은 장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함임과 동시에 나를 강제하기 위한 다짐이었다. 그랬던 그 다짐이 흔들린다. 아내의 반복되는 스트레스 해소보다 중한 것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 시점 매일 같이 아내의 퇴사를 종용했다. 물론 아내의 퇴사는 임대 아파트를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을 지연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아내의 마음 관리였다. 무엇을 지연해야 하는지는 분명했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일이 발발한 것이다. 나의 퇴사. 나름의 준비된 대사가 나왔다 해도 아내에겐 상의 없이 벌인 우발적 결행이었다. 어제까지 아내의 퇴사를 종용하던 남편의 다음 날 행보를 표면상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짐을 싸고 연남동 경의선 숲길을 걸어 나오며 가장 먼저 아내에게 전화했다. 눈물을 억누르기가 불가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한 채로.
여보.. (흑흑) 나 사고 쳤어.. (흑흑)
왜 그래 오빠.. 무슨 일이야.. 괜찮아 얘기해 봐
오빠 회사 그만뒀어. 대표가 너무 갑자기 소리 지르고 화를 내서 그만 말해버렸어..
오빠.. 잘했어 잘했어.. 지금 어디야?
짐 챙기고 걸어서 지하철 타고 가는 길이야. 미안해.. 미안해..
아니야, 미안해하지 마 잘했어 오빠. 조심히 와
아내가 한창 바쁠 시간. 아내는 계속 메시지를 보내며 남편의 귀가를 염려했다. 메시지에서도 괜찮다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지하철에 앉아 계속 눈물을 흘렸다. 어설프게 싼 짐을 가슴에 품고, 지하철 바닥과 창밖 보기를 반복했다. 고개를 들면 눈물이 흐르고 고개를 숙이면 마음이 차분해졌기 때문에. 오늘의 상황이 억울해서기도 했지만, 어제까지도 고생하며 힘들게 버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격한 울컥함이 내재되어 쉴 새 없이 작동했다.
아내의 퇴근이 평소보다 일렀다. 문을 열고 내 얼굴을 보자마자 아내는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는 연신 ‘미안해’라는 말을 반복했다. 오빠 성격에 그렇게 했다는 것이 그동안 얼마나 참아왔는지를 증명하는 일이라며 아내는 나를 격려하고 위로했다. 그리고는 계속 내게 사과를 건넸다. 자신의 힘든 것만 얘기하느라 내 아픔을 들여다보지 못해 미안하다며. 임대 아파트를 벗어나는 것이 남편보다 중하지 않은데, 자신이 너무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며 연신 사과하는 아내를 꽉 안아줬다. 그리고는 남편의 퇴사를 자신의 탓이라 자책하는 아내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말해줬다.
당신 탓이 아니야.
그날 밤 오래간만에 아내의 얼굴이 밝았다. 우울할 남편이 걱정돼서 희극인 컨셉을 잡고 얼굴에 더 힘을 주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잘하고 있다는 격려를 아낌없이 건넸다. 회사에서 온 힘을 다해 기획 팀장에게 '당신 탓'이라고 외쳤지만, 정작 오는 내내 ‘나 때문에’를 연발하며 아내를 걱정했던 마음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물론 새벽까지 이어진 뒷담화도 한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