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처음 뱃속에 생긴 생명을 알았을 때의
기쁨에서부터 시작된다.
병원에서 초음파 화면 속 작은 동그라미 안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신기함.
아마 아이를 낳아본 부모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장면일 것이다.
그렇게 소중하게 품고,
밤낮없이 돌보며
나를 돌볼 시간조차 없이 지내온 시간들이
아이의 성장과 함께 지나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부모의 마음은 조금 달라진다.
아기 때는 우유를 잘 먹는 것,
배변을 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는데
조금 자라면
글씨를 늦게 안다는 이유로,
같은 규칙을 반복해서 잊어버린다는 이유로
부모의 마음속에 서서히 화가 쌓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쌓인 감정은
부모 스스로도 알아차리기 어려운 순간에
아이에게 날카로운 언어와 표정, 몸짓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낸 아이는
자연스럽게 위축되고 불안해진다.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가 될까 봐,
혹시 버려지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아이의 불안은 점점 커진다.
불안한 마음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것을 적절하지 않은 행동으로 표현한다.
소리를 지르거나,
반대로 말을 하지 않거나,
부산스러운 행동으로
‘나 지금 너무 불안해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다시 ‘규칙’이나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제지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아이와 부모 사이에는
서로를 힘들게 하는 방식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상담실에서 이런 설명을 하면
부모는 종종 이렇게 묻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이 질문이 얼마나 간절한지 알기에
나는 종종 바로 답하지 않고 이렇게 되묻는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내가 곧바로 답을 주지 않는 이유는
그 답을 부모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힘들게 하는 상호작용을 멈추는 방법은
사실 아주 단순하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잠시 멈추는 것이다.
그 멈춤 속에서
아이를 다시 바라볼 틈이 생기고,
관계는 다른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을 얻는다.
물론, 해오던 방식을 멈추는 일은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이 오랜 습관이고,
반복된 패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를 바란다면
무언가를 멈추거나,
바꾸려는 시도는 필요하다.
아무것도 멈추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