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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이 Nov 11. 2019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어긋났을까

지금의 '나'는 나의 결정과 세상의 합작품

결과만으로 이야기하는 우리

‘어디서부터 어긋났을까 기나긴 고민 해답 없는 문제 속에 헤매어 난’   

  

빅뱅의 노래 ‘마지막 인사’의 가사다. 사랑 노래지만 사랑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생각하다 이 가사 구절이 떠올랐다.     


“네가 어릴 때 서울에 집 알아보러 왔다가 택시 기사가 마포구가 좋다고 해서 이사 왔는데, 후회된다. 그때 강남으로 갔으면 너도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고 대기업에도 들어갔을 텐데.”     

엄마가 요즘은 이런 말씀을 잘 안 하시지만 내가 직장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힘들어할 때 이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그때 강남으로 갔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이 됐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지나간 일에 대한 결과만 보고 이야기한다. 그 결정이 잘못됐다고 판단해서 다른 선택을 하지 못 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무수한 의사 결정

하지만 무수한 많은 작고 큰 의사 결정에 의해 지금의 ‘나’라는 결과물이 만들어진 거다. 그 의사 결정에는 내가 내린 의사 결정도 있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의사 결정도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의사 결정은 쉽게 ‘운’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운’이란 것이 내 선택과 합쳐져서 내 인생이 어긋난 것인지 아닌지, 어긋난 거라면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인지 알아내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어디로 이사를 갈지는 사실 부모님의 결정이고, 6살의 어린 나이였던 내가 그 결정에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의사 결정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부모님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부터 생각을 해봐야겠다. 대표적으로 학교 공부가 있을 거다. 평범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도 무난했다. 반에서 10등 안에는 들었으니까. 운동은 잘하는 편에 속했지만 다른 친구들보다 운동 신경이 훨씬 뛰어난 쪽에 속하진 않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2002 한·일 월드컵이 열렸다. 그 열기에 축구에 빠져들어서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근처 대학교에 가서 다른 사람들과 축구를 했다. 월드컵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의사 결정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시기이니 월드컵을 열지 마세요”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월드컵이 개최된 것 말고 공부를 안 한 것은 내가 내린 의사결정에 의한 결과다. 성적이 심각하게 떨어지면서 부모님께 성적표를 안 보여드리고 숨겼다. 성적이 떨어진 것은 전적으로 내가 선택한 결정에 의한 결과다. 물론 공부를 안 하고 성적이 떨어진 것이 죄는 아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성적이 안 좋은 친구들은 거의 문제아 취급을 받았다. 학교 교육은 무조건 성적이 잘 나와서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 진학을 위한 공부를 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까? 나에게 맞는 재능을 찾을 수는 없었을까. 나는 나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못 찾았지만 같은 반에 개그맨이 되는 것이 꿈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아, 정말 웃긴 친구였다. 그 친구처럼 공부를 하는 것 말고 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됐을까?     


당시 교육 환경을 보면 공부 외에 다른 것을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지 않은 선생님도 계셨지만 대부분 선생님은 성적이 안 좋은 친구들을 거의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이러한 환경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류의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문제를 풀어보라고 시켰을 때 풀지 못하면 무조건 체벌이었고, 그런 식으로 살면 좋은 대학교에 못 간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나는 공부를 잘 안 했으니 좋은 대학교에 못 들어갔다. 재수도 했는데 말이다. 수능 점수는 그래도 많이 올렸지만 결국 내신이 문제였다. 자, 그럼 이 부분에서 생각해볼 때 수능 점수에도 어느 정도 운이라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만, 나의 노력이라는 요소가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나의 노력은 내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요소다. 하지만 수능 점수와 내신 점수의 반영 비율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그렇다. 좋은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면 좋은 기업에 취업하기 쉽지 않다. 다니던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분명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겠지만, 그 당시의 ‘나’를 기준으로 봤을 때 선택지는 다시 수능 시험 보기, 편입, 자퇴 후 공부 외에 다른 길 찾기, 공무원 시험 준비가 있었다.      


이 중에서 나는 공무원 시험을 택했다. 공무원이 되면 생활이 안정적일 것이라는 이유로 엄마는 나에게 공무원 시험 준비를 권했고, 나는 받아들였다. 공무원 채용 인원이 늘어날지 줄어들지 그때는 모르는 상황이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한 것은 내 결정이었지만, 공무원 채용 인원이 줄어들지 늘어날지 또는 면접시험에 어떤 성향의 면접관이 들어올지는 운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1년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고, 다시 또 준비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작은 신문사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그곳에 들어가서 일해 볼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1년 더 공부하는 것보다 그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첫 직장이 신문사가 됐다. 아, 오해하지 말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열심히 쓰고, 면접도 몇 번 보는 등 할 건 다 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의사 결정과 내가 내린 의사 결정의 합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의사 결정, 즉 ‘운’과 내가 내린 의사결정이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합쳐지다 보니 내 인생이 어긋난 것인지 아닌지, 어디서 어긋난 것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내가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됐지만 미디어 환경도 점차 변하고 있다. 주식, 스포츠 분야에서는 자동으로 기사가 생성되기도 한다. 사람이 기사를 작성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또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이 생기면서 글보다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어떤 업종의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는 것은 내 의사결정이다. 하지만 사회 환경이 변화하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운이다. 어쩔 수 없다. 그 환경에 맞춰서 의사 결정을 하고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돛단배를 띄웠다고 가정해보자. 배가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바람에 따라 배를 조작해야 한다. 이 바람은 우리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 예측할 수는 있겠지만 100% 맞출 수는 없다. 첨단기기를 사용하는 기상청도 날씨를 100% 예측하지 못한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배를 조작해 목적지로 가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아무리 일직선으로 목적지로 가고 싶다고 해도 그럴 수 없다. 상황에 맞춰 조작하지 못하면 표류하기 딱 좋다.      


그러니 기술, 사회 분위기, 국가 고위층의 정책 등 변화 등을 포함하는 이 ‘운’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고 인정하자. 100% 확신할 수 있는 예측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 의사 결정과 ‘운’이 합쳐져서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지 의사 결정을 내리기 전에 다각도로 결과물을 예측해보고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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