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제이 Nov 12. 2019

만약 사건이 1년만 늦게 일어났다면

계획은 항상 어긋날 수 있다

1년만 늦게 일어났더라면

“회사 자금 사정이 안 좋아서 폐업하기로 결정했어.”        


생각지도 못 했던 말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 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금 회사를 정리해야 너희들 월급과 퇴직금, 위로금을 지급해줄 수 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폐업하기로 결정했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폐업을 하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 1년만 늦게 이 일이 일어났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역시 현실은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작든 크든 모두 변수 투성이다.     


원인 분석 과정에서 편향된 생각은 다른 분석 결과를 가져올 수도

폐업을 한 그 회사는 내 입장에서 볼 때 한 명만 조심하면 되는 괜찮은 회사였다. 모회사와 자회사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회사라고 할 수 있는 회사에는 사내이사가 두 명이 있었다. 내가 근무했던 회사를 자회사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모회사의 이사 중 한 명이 우리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었다. 그 대표이사가 사임하고 모회사의 다른 이사가 우리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게 됐다. 하지만 그 이사는 우리 회사에 미래가 없다고 판단을 했던 것인지 한 달 정도 만에 폐업을 결정했다.      


그렇게 폐업 통보를 받던 날 같이 일하던 선후배들끼리 술을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주제는 폐업 결정에 관한 원인 분석이었고, 편집장 한 명이 문제였다고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채용한 것은 회사 경영진의 결정이었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편집장 한 명 때문에 회사가 폐업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요인들이 있었을 것이고, 결국 그러한 결정은 경영진에서 결정한 것이다. 단순하게 드러난 내용만 보기에는 편집장 한 명의 잘못으로 보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리와 편집장과의 사이가 나쁜 편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 잘못으로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거다.      


어쨌든 그때가 2017년 5월이었다. 그 얘기가 나오기 전부터 내가 일하던 업계가 힘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어떤 일이 있을지 찾아보고 있었다. 당시 4차 산업혁명 이야기가 매체에서 계속 나오고 있었다. 3D 프린팅, 로봇, 빅데이터 등이 있었다. 내가 눈여겨본 것은 빅데이터였다. 나름 정보를 다루는 일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내가 원래 하던 일과 연결될 줄 알았다. 정부에서는 4차 산업혁명 관련 자격증을 다음 해부터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당시에 비판 여론도 많았다. 국가 자격증만 만들면 그 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보냐고 말이다.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었다. 나도 그런 의견에는 동의했다. 내가 자격증만 취득한다고 해서 바로 그 업종의 전문가처럼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회사 생활과 다른 길 사이의 갈림길

그때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선택지는 다른 회사로의 재취업과 다른 업종의 일을 찾는 것이었다. 시야가 좁으니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이참에 다른 일을 찾아보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지만 다른 회사에서 같이 일을 했던 선배들이 다시 일을 할 회사를 알아봐 주었고, 다른 회사로 재취업했다.    

 

하지만 내가 원래 담당했던 분야에는 나보다 더 경력이 있는 기자가 온다고 해서 나는 기존과 다른 분야를 담당해야 했다. 때문에 회사에서는 내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았고, 이전 회사보다 연봉을 낮춰야 했다. 연봉을 낮춘다는 것은 견디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나는 이름도 잘 모르는 회사의 그저 그런 기자였다. 당시 나는 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주요 언론사로의 이직밖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10년 뒤에도 그저 그런 회사의 그저 그런 기자로 전전할 것 같았다.      


그렇게 회사생활을 계속하는 것과 다른 일을 찾는 것 사이의 갈림길에 섰다. 회사 일을 계속하면서 다른 돈 벌 방법을 찾아 실행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 보였다. 정말 회사 일 때문에 여유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다른 일을 찾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렇게 2주 만에 퇴사했다. 그것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확실히 판단하기 어렵다.     


퇴사 후 1년 뒤 그 회사에서 일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퇴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퇴사 후 만난 적이 없어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퇴사 이유를 정확히 모른다. 결과는 1년도 안 돼서 그 회사 사람 대부분이 퇴사를 했으니, 그때 빨리 회사를 그만둔 내 결정이 옳은 결정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성급하게 판단할 수 없다. 내가 그 회사에 계속 다녔을 때 지금과 다른 나의 미래가 펼쳐졌을 수도 있다. 어쨌든 정보가 극히 적은 만큼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 내가 수익모델을 제대로 갖춘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내 계획은 항상 어긋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배웠다. 세상은 내가 안일하게 생각할 정도로 좋은 쪽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내가 그 회사에서 3년 정도 근무하다가 다른 회사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해도 분명히 그 계획을 어긋나게 할 수 있는 문제들이 발생한다.      


만약 먼저 회사의 폐업이 내 생각처럼 1년 늦게 일어났다면 내 모습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회사 일을 하면서 다른 수익창출 방법을 찾았을까 아니면 그냥 그렇게 계속 회사 일만 하면서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만 쏟아내고 있을까. 사업을 해보겠다고 했을까 아닐까.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는데 나도 결혼을 했을까 아닐까.     


이런 가정은 어떻게 보면 무의미하다. 이미 현실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졌으니까 말이다. 몇 년을 생각한 장기적인 계획도 좋지만 이런 변수에 크게 흔들리지 않게 한 두 달간의 단기 계획이 더 중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가까이 있는 목적지는 변수가 많지 않아 일직선으로 갈 수 있는 확률이 높지만, 멀리 있는 목적지는 변수가 많아 이리저리 휘둘릴 가능성이 많으니 말이다.

이전 03화 독기라는 게 있었던가(feat. 성공신화의 전제조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