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제이 Nov 12. 2019

없네요. 그림이… 뭘 할지가 없어요

그려지지 않았던 사업 구상

보이지 않아요그림이

10년 전 방영했던 ‘시티홀’이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남녀 주인공이 서울 야경을 보고 있다.     

“자, 봐요. 지금 눈앞에 뭐가 보여요? 저기가 조국 의원님이 갈고닦을 곳이에요. 그림을 그려봐요. 국회의원 조국의 그림을.”

“...”

“왜 그래요?”

“난 가고 싶은 대학에 가기 위해, 1등을 하기 위해 고시에 붙기 위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남들보다 덜 자고, 남들보다 덜 놀고,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왔죠. 근데 없네요. 그림이. 국회의원이 됐으니까 대통령이 되기 위해, 국회의원 다음은 당연히 국회의원이니까. 그죠 당연히. 미안해요. 국회의원으로서 뭘 할지가 없어요.”  

   

나도 사업을 해보겠다고 생각한 후 이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과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아, 물론 내가 남자 주인공처럼 좋은 스펙을 가진 엘리트는 아니다. 내가 엘리트였다면 이 내용과는 다른 내용의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안 쓸 수도 있고 말이다.     


사업을 하겠다고 처음 생각했을 때에는 단지 돈을 많이 벌 방법을 찾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떤 그림을 갖고 어떤 종류의 일을 어떤 방법을 통해 실현 해나 갈지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그런 생각 없이 시작하려는 것은 무모한 결정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시작했다고 해서 긍정적인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목적지가 정말 중요하네!

한 번은 지인의 회사에 일을 도와주러 갔던 적이 있다. 새벽 5시쯤 일을 마치고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려는데 배터리가 방전돼서 시동을 걸지 못했다. 15년이 넘은 오래된 차량인 데다 영하 13도의 추운 날씨에 12시간 이상 세워둬서 문제가 발생한 것 같았다.     


차량 배터리 문제는 지인의 핸드폰을 빌려서 보험 고객센터에 접수해 해결했다. 하지만 핸드폰도 추운 날씨 때문에 방전되더니 차 안에서 계속 충전해도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그날 처음 지인의 회사에 가본 것이기 때문에 내비게이션을 보지 않고는 집에 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황당하고 막막했다. 내가 원래 아는 길이라면 걱정하지 않았겠지만 처음 가는 길이었다. 어느 정도 내가 아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면 그 후부터는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 갈 수 있었겠지만 내가 아는 길에 들어서기 전까지가 문제였다.     


핸드폰이 언제 켜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단 표지판을 보면서 천천히 차를 몰아가기로 했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가는 길에 핸드폰 전원이 켜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이 어두웠지만 속도를 늦추고 계속 표지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헤매기는 했지만 결국 집에 도착했다. 중간에 다른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면 10분 정도 일찍 도착했을 거다. 핸드폰 전원은 집에 도착하기 1분 전에 켜졌다.      

이때 한 가지를 깨달았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말이다. 나는 의지가 강한 편이 아니다. 무언가를 하겠다고 결심하고도 얼마 안가 그만두는 경우가 반복됐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답이 있었다. 분명한 목적지가 없었다는 것 말이다. 목적지가 명확하다면 조금 길을 돌아가더라도 결국 도착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래, 내가 할 일은 목적지를 정하는 거였어.     


목적지를 정했는데... 가고 싶지 않아

나는 죽기 전에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고 싶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생각해보고 하나씩 노트에 적어본다. 좋은 내용을 많이 적었다. 그런데 내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누군가는 말하지. 찾으려고 노력하면 분명 미치도록 가슴 뛰는 그런 목표가 생길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계속 생각하고 노력했지만 내가 꼭 이루고 싶다는 것을 찾지 못했다. 내 심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상태다 보니 이 목적지를 생각하고 결정하려고 하는 게 효율적인지 비효율적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너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전혀 알 수 없는데 말이다.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말씀하셨지. 10년 뒤 네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나는 1년 뒤 내 모습도 상상이 안 되는데 어떻게 10년 뒤를 상상할 수 있냐고 반박했다.     


사업 구상도 비슷한 느낌이다. 목적지를 정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이걸 비전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거다. 비전이란 말은 거창한 느낌이다.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한 어떤 행위를 한다는 느낌이랄까. 사업을 잘 구축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 말고 어떤 목적지를 가질 수 있을까. 생각은 많이 해보는데 어떤 걸 생각하든 와 닿지 않는다. 좀 심각하다. 근데 또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기자 일을 할 때건 사업을 시작하려고 돌아다니다 만난 사람이건 사업 비전을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CEO들을 방문해 인터뷰를 할 때마다 꼭 하는 질문이 있었다. 비전이 무엇이냐는 것. 인터뷰를 많이 해본 CEO들은 대답이 준비되어 있었다. 진짜 비전인지 홍보용 비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몇 번 인터뷰를 안 해 본 CEO들에게 보통 돌아오는 대답은 돈 많이 벌려고 사업을 시작했으니 비전은 알아서 잘 포장해서 써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비전이 없다고 해서 이 사람들의 사업이 망했느냐. 그건 아니다. 잘 되고 있다.     


목적지가 불분명하더라도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몰고 다니는 것, 그리고 여행과 맛있는 음식 먹기와 같은 것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걸까.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지 않을까. 나만 목적지가 불분명한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목표가 있던 사람도 있고, 죽을 때까지 못 찾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죽기 몇 년 전에 찾을 수도 있고 말이다. 찾을 수 있을지, 언제 찾을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다. 나도 이 글을 쓰고 몇 분 후에 갑자기 찾을지도 모른다.      


궁극적인 큰 목표를 잡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작은 목표를 세우는 것이 쉽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작은 목표부터 세운 후 큰 목표를 세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궁극적인 목표보다 앞에 닥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목표를 찾는 게 더 쉬울 것 같다. 근데 솔직히 둘 다 어렵다. 잘 못 하겠다.     


지금 당장 목표를 찾겠다고 자신을 압박하기보다 꾸준히 탐색해보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전 04화 만약 사건이 1년만 늦게 일어났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