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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이 Nov 11. 2019

프롤로그 – 끈기도 독기도 없는데 사업은 해봐야겠다

어릴 때 막연하게 생각했다크면 사업을 할 거라고.     


어떤 사업을 할 거라는 뚜렷한 생각도 없었다. 사업을 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것 같았고, 직원들에게 지시 내리는 사장의 모습이 막연히 좋아 보였다. 내가 어렸으니 내 눈에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이 전부인 줄 알았다. 사업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 하고.     


원래 일을 하던 회사에서 퇴사한 지 2년이 지났다. 사업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최근 몇 개월간 스타트업에서 일하긴 했지만 직원은 아니었다. 이제야 든 생각이지만 ‘돈을 많이 벌면 그 돈을 어떻게 쓰면서 살 것인가’라는 생각이 뚜렷하지 않았다. 이것도 ‘비전’이나 ‘목표’라고 포장한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가슴 뛰지 않아도독기와 끈기가 없어도     


자기 계발 서적을 보면 가슴 뛰는 일,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한다. 노력하면 누구나 그런 일을 찾을 수 있다고 하는데 억지로 상상해서 목표를 세우려고 해 봐도 와 닿지 않는다. 가슴이 뛰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니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독기와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흘려듣게 된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말이다.     


나 스스로를 생각해보면 독기 있고, 끈기 있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승부욕이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말과 생각뿐이다. 이기기 위해 제대로 된 노력이나 행동을 해본 적이 있었을까 싶다. 목표의식이 결여돼서 그런 것인지 원래 독기와 끈기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지금도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신다.      


“네가 어릴 때부터 어려운 일을 해보면서 많은 것을 해봤어야 했다. 하지만 네가 그런 어려움을 겪는 것을 원치 않았던 엄마가 반대했기 때문에 결국 너를 그렇게 교육하지 못했다. 너는 나와 비교했을 때 게으르고 독기와 끈기가 부족하다.”     


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하지만 결국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어려운 일을 해보면서 사회 경험을 많이 해봤더라도 지금과는 다른 문제에 부딪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내가 게으른 면이 있고 독기와 끈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 때문에 어릴 때 진짜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독기와 끈기를 갖고 장기간 노력해온 사람들을 존중한다. 나는 아직도 그렇지 못하니까 말이다. 정말 어렵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대화를 해보면 의외로 나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주변에 많은 것 같다. 상대방도 “대부분 사람들이 가슴 뛰는 일을 찾지 못하지 않냐. 그래서 쉽게 도전하지 못하고 안정적인 것만 찾지 않냐”라고 말하니까.      


내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직장인으로 사는 것보다 사업을 하는 것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인쇄·출판회사를 운영하셨는데 한때는 공장도 있었다. 사업 초기에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면서 힘든 시기를 겪으셨지만 결국 2년 만에 집을 마련하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그런 긍정적인 면을 봤으니 열심히 하면 직장 생활보다 사업을 하는 것이 돈을 더 잘 벌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 것 같았다.      


목표 또는 비전이 명확하진 않지만 사업을 해야 할 이유가 있다. 기업이 채용하는 인력 수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내가 원래 하던 일도 점점 프로그램 개발로 대체되어 갈 것이다. 목표나 비전이 사업을 해야 할 긍정적인 이유라면 내 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부정적인 이유다. 이게 내가 가슴 뛰는 일이 없어도 사업을 해야 할 이유다. 독기와 끈기가 부족하더라도 말이다. 결국 직장 내에서 내가 설 자리는 사라질 거니까.     

 

유니콘 기업 창업자의 창업 당시 나이는 33.4?     


스타트업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 우연히 봤다. 유니콘 기업 창업자의 창업 당시 나이 평균이 33.4세란다. 전 직장을 퇴사할 때 내 나이가 33살이었다. 이 자료를 보니 ‘내 나이가 사업을 시작하기에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릴 때는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도 결혼에 대한 조기교육의 결과겠지. 지금은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든 사회 통념상 결혼하고 아이가 생긴다면 이렇게 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상태로 가정을 꾸리고 40살이 됐다고 가정하면 지금 나이에 도전하지 못한 것을 엄청 후회할 것 같았다. 명확한 계획이 없더라도 사업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이 유니콘 기업 창업자의 창업 당시 나이 자료도 내가 막연하게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보탬이 됐다.   

사업을 해보려면 디딤돌이 필요한데     


친구들은 예전부터 쉽게 이야기했다.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은 제조업이었다. 제조회사들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도 했고, 내가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름 사업을 처음부터 구축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사업을 해보겠다고 경험을 하다 보니 ‘디딤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부터 사업을 구축해나간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원래 했던 일도 결국 그 회사에서 구축한 시스템 위에서 했던 일이다. 처음부터 사업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 제대로 된 방향을 잡지 못했다.     


뉴스를 보면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자식이 이득을 보는 경우가 있었다. 대학교 지원서를 넣을 때라든지 말이다. 창업 관련 정부 지원 사업을 알아보기 위해서 교육을 받으러 다닐 때도 비슷한 케이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부 지원을 받은 기업 중 대표이사의 아버지가 군 관련 주요 인사라서 정부 지원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사업 아이템은 장성을 씌워주기 위한 큰 우산을 군에 납품한다는 것이었는데 원래 그런 사업 아이템으로는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거기서도 부모님이 누구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말을 한 사람이 이야기를 자세하게 하지 않았으니 세부적으로 어떤 내용이 있어 정부 지원금을 받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도 ‘디딤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물론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도약할 수 있는 디딤돌이 있으면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만 바뀌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환경도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었다. IMF 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기술의 발달 등이 원인이 되면서 아버지의 사업도 힘들어지고 집안 사정도 점점 힘들어졌다.       


아버지도 요즘 나에게 미안하다며 말씀하신다. “내가 이렇게 힘들어지지만 않았더라면 네가 어떤 일을 하든지 도움을 줄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속상하다”라고 말이다.     


그래, 운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힘들어졌다고 해서 원망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 가족들이 잘 살 수 있도록 30년 정도의 기간 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으니까. 결과론적으로만 생각하면 좋지 않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지 않나.     


최근에 우연히 봤던 ‘우아한 가’라는 드라마의 대사가 와 닿았다.    

 

“한 상무는 살면서 한 번도 목표나 계획이 어긋나 본 적이 없지?”

“그만큼 노력했으니까요.”

“에이, 그건 성공한 사람들 논리지. 실패했다고 노력을 안 한건 아니야. 뭐 한 상무처럼 실패를 안 해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모든 건 결과로 이야기하니까요.”  

   

실패했다고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회사를 그만두면서 생각했다. 이제는 사업에 도전해볼 때라고. 그게 벌써 2년이 지났다. 2년 동안 돈을 벌 수 있는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어내진 못 했지만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독기와 끈기가 없고 조금 게으른 것까지도 알겠다. 행동력이 부족한 것도 알겠고. 자금 사정도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다. 그래도 내가 2년 동안 나아진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속이 붙지 못한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더디더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다 보면 내가 독기와 끈기가 부족하더라도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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