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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이 Nov 16. 2019

흑백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회색 결정

모르겠다 ≠ 아무 생각 없다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회사에서 가끔 상사가 나에게 이런저런 사업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    

  

“내 얘기 들으니까 어때? 잘 될 것 같지?”

“잘 모르겠는데요. 잘 될지 안 될지 감이 잘 안 와요.”     


내가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확실히 잘 모른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짜증을 낼 때도 있었다. 내가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생각해서 말이다. 잠깐 이야기해놓고는 명확한 대답을 듣길 원한다. 그것도 “잘 될 것 같아요”라는 긍정적인 대답. 물론, “정말 대박 아이디어인데요”라면서 맞춰줄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세상의 지식 혹은 정보 중에서 아는 것이 많을까 모르는 것이 더 많을까?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모르겠다’는 그 말을 능력이 없거나 관심이 없는 것처럼 받아들인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경험은 극히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표본이 적다. 표본이 적은데 ‘된다’와 ‘안 된다’로 쉽게 구분 짓는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흰색과 검은색 사이의 다양한 회색

흰색과 검은색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색이 있다. 우리는 단지 ‘회색’이라고 부를 뿐이지만 말이다. 이 회색에도 비율에 따라 색이 조금씩 다르지 않나.      


일도 비슷하지 않을까. ‘될 확률은 몇 퍼센트, 안 될 확률은 몇 퍼센트’로 생각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을까. 게임을 예로 들어보겠다. 어떤 게임을 보면 캐릭터의 장비를 강화해야 한다. 강화 레벨에 따라 성공 확률은 떨어진다. 성공 확률이 100% 일 때는 모두 성공한다. 하지만 90%의 확률인데 3번 연속 실패했던 적이 있었다. 

     

“아니, 90%인데 3번 연속으로 실패했어. 이거 확률 조작한 거 아니야? 이게 지금 말이 되는 거야?”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실패할 확률이 10%인데 운이 나쁘게도 그 10%의 확률이 3번 연속으로 이어졌던 거다. 운이 지지리도 없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90%면 높은 확률이니까 다 될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머지 10% 확률의 일도 일어날 수 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 우리나라는 조별리그 3차전에서 독일과 경기했다. 이 경기를 앞두고 외국 베팅업체들은 배당률을 발표했다. 그중 한 업체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가 독일을 2:0으로 꺾고 승리할 확률보다 독일이 우리나라를 7:0으로 이길 확률이 더 높았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독일에 2:0으로 승리했다.   

   

이런 극히 낮은 확률이 나타났다고 해서 그 배당 업체가 능력 없는 곳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도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독일을 이길 확률이 독일이 우리나라를 이길 확률보다 훨씬 희박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적’처럼 여겼다.     


안돼그것만 말해!”

사실 상사들에게 어떤 일을 보고할 때 ‘돼? 안돼?라고 물어보면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하지 않은데요.”     


하지만 이렇게 말을 했다가는 엄청난 비난을 들어야 한다. 일을 똑바로 안 하냐는 등 말들 말이다. 어떤 대기업의 결제 과정은 이런 식이었단다.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진행할 업무에 대해 보고를 한다. 그러면 상사가 이렇게 말한다.     


“확실해? 자신 있어?”     


이럴 때 부하직원이 확실하게 이야기를 하지 못 하고 얼버무리면 다시 해오라고 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한쪽으로 치우치게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논리적 구조를 갖추는 것처럼 말이다. 주장을 세우고 그에 맞는 근거와 예시 자료들을 찾는다. 그 주장에 반대되는 근거와 예시들은 무시해버린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상사에게 보고할 때 이런 말을 듣는 경우가 많다.      


“결론만 말해. 돼? 안 돼?”     


이렇게 하는 이유는 보통 그에 관한 자료를 다 확인해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일리 있는 말이다. 두꺼운 서류를 보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결국 부하직원은 ’된다, 안 된다 ‘ 두 가지밖에 말을 할 수가 없다.     


일의 성과가 좋았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의 성과가 안 나왔을 때, 부하직원은 무능력한 직원으로 낙인찍혀버린다.     


내가 온라인 판매를 처음 해봤을 때, 판매 사이트에 상품 상세페이지를 올리고 쇼핑 검색 광고를 진행했다. 하지만 광고비는 계속 나가는데 상품은 쉽게 판매가 되지 않았다. 며칠 진행을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축구 용품 판매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 한 명이 “그 쇼핑 검색 광고는 돈만 잡아먹고 효과는 거의 없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서 ’아, 이건 안 되는 방법이구나 ‘라고 단정 지어버렸다.      


일단 표본이 적었고, 이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러 조건이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때는 생각하지 못하고 단순히 친구가 효과가 없다는 말을 했다고 효과가 없는 것이라고 단정 지어버렸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만 흘러가진 않기에

생각해보면 무엇을 하든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만 흘러가진 않는다. 처음에 진행한 방식이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고 해서 다음에도 또 결과가 안 좋을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이런 실수를 많이 했다. 처음 몇 번 진행해봤다가 안 됐다고 안 되는 것이라고 단정 짓고, 다른 사람들이 효과가 없는 것이라고 말을 했다고 효과가 없다고 단정 지었다.     


어떠한 것을 결정하거나 어떤 방식의 효과 유무를 확인해보려고 할 때, 최대한 많은 표본을 수집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 한두 개의 표본으로 생각을 확정 짓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표본을 많이 모아서 수치를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 확률이 몇 퍼센트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 그래도 좀 더 많은 표본을 모아서 확률을 따져볼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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