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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작가 May 04. 2020

'희로애락'

'검소하고 겸손한 삶'

얼마 전 대학생이 된 딸아이가 방에서 핸드폰으로 무엇인가를 한참을 보길래, ‘ 무얼 그리 열심히 보고 있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아빠, 며칠 전 친한 친구가 지갑을 샀는데 너무 멋있어서 가격을 보았는데 유명 브랜드라 너무 비싸서 다른 제품을 보려고 검색 중인데, 다른 것도 가격이 비싸서 갖고는 싶은데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한탄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본 지갑은 명품으로 잘 알려진 유명 브랜드였습니다. 아이에게 ‘학생이 무슨 그런 값비싼 제품을 사려고 하느냐? 시장에 가보면 싼 제품도 많은데...’라고 했더니, 아이는 기가 죽은 목소리로 ‘아빠, 요즘 분위기가 그래요. 형편 데로 사는 것이지만, 명품 하나 정도는 다 가지고 있는 게 현실이에요...’라고 볼멘소리를 하였습니다. 많은 고민을 하다가 대학교 입학한 기념으로 큰 마음먹고 그 지갑을 사주었습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은 ’ 상품의 가격이 비쌀수록 소비자의 구매욕이 더욱 상승한다 ‘는 ’ 베블런 효과‘를 제시했는데, 이는 구매자의 소비행위가 단순히 물질적 만족이 아닌 대부분 심리적 만족감을 얻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급차를 구매하여 높은 지위를 과시하고 고가의 그림을 사들이는 것도 자산의 고상한 취미를 대외적으로 알리려 하는데 목적이 있고, 고가의 상품을 사는 것도 부와 지위를 드러내려고 하는 심리에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가격과 품질의 상관관계에서 비롯된 소비자의 기대심리가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제품 간의 가격 비교를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할 상황에서 가격은 중요한 선택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 좋은 물건이라서 비싸다.’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비싸니까 당연히 좋은 물건일 것이다’로 인식이 바뀌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지만 심리학적으로는 확실히 설득력이 있는 듯합니다. 


서울 어느 장신구 매장에서 옥으로 만든 팔찌가 가격이 5만 원이었는데, 다른 매장에서 똑같은 팔찌였는데 가격이 3만 원이어서 점원에게 ‘제품 품질이 달라서 가격이 다른가요?라고 물었더니, 그 점원이 웃으면서 ’솔직히 품질은 같죠! 다른 것이라면 가격만 다르죠.’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가격이 비싼데도 불티나게 팔리는 제품이 있는가 하면, 가격이 싸서 제품이 안 팔리는 현상은 세계 어디 에서나 있을 것입니다. 

물건의 품질을 감별할 수 없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가격의 차이가 제품의 질 등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분명한 건 소비자들이 현명한 판단을 가지고 구매력을 키울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를 가든 ‘호갱(호구와 고객을 합친 말로, 어수룩해 속이기 쉬운 손님을 뜻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판매자들이 입으로는 ‘고객님’이라며 친절하게 굴지만, 실제로는 고객을 우습게 보며 가격으로 우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격이 높다고 좋은 품질일 것이라는 가격의 착시현상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요즘 일부 젊은 층에서 취업이 힘들고 살아가는 것이 막막한 현실을 비관하며 물려받은 것이 없는 자신의 상황과 심지어 결혼도 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세태를 반영하는 ‘헬조선’, ‘흙수저’, ‘비혼족’ 등 신조어가 생겨났습니다. 집값이 비싸니 집을 사겠다는 생각은 ‘언감생심(焉敢生心)’입니다. 그렇다 보니 사는 동안 즐겁고 재미있게 살다 가겠다며 분수에 맞지 않는 과소비, 과욕이 넘쳐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화개반 주미취(花開半 酒微醉)’란 말이 있습니다. 꽃은 반쯤 피었을 때가 보기 좋고, 술은 약간 취했을 때가 기분이 좋다는 뜻입니다. 모든 걸 다 가졌을 때 보다 오히려 약간 부족한 듯 가졌을 때가 행복합니다.

사자는 배가 부를 때는 얼룩말이 지나가도 공격하지 않습니다. 사자는 배가 고플 때만 사냥합니다. 사냥을 할 때도 욕심내지 않고 실리만 챙깁니다. 건장하고 큰 사냥감이 아니라 작고 약해서 쉽게 잡을 수 있는 사냥감을 목표로 합니다. 필요 이상으로 덤비지 않는 것, 이것이 자연의 섭리이기도 합니다.


가득 찬 것보도다는 조금 빈 것이 좋을 것입니다. 뭐든 틈이 있어야 튼튼합니다. 채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틈을 만드는 것일 겁니다. 전국시대 말기 사상가인 장자는 이를 ‘낙출허(樂出虛)’라고 했습니다. 최상의 즐거움은 텅 빈 것으로부터 온다고 했습니다. 그게 바로 텅 빈 충만입니다. 스케줄을 잡을 때도 일부러 여유시간을 많이 둡니다. 그래야 비상시에 차분히 대비할 수 있고 더 좋은 상황을 만들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마음이 평화로워 지기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허영과 과욕을 버리고 겸손하게 자신을 성찰하는 인격의 ‘도야(陶冶)’가 중요할 것입니다.


한비자에 나오는 옛 사자 성에 ‘학 택지사(涸澤之蛇)’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이 말라버린 연못 속의 뱀의 이야기를 통하여 겸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느 여름날 가뭄에 연못의 물이 말라 버렸습니다. 그 연못 속에 사는 뱀들은 다른 연못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연못에서 사는 작은 뱀이 나서서 큰 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앞장서고 내가 뒤따라가면 사람들이 우리를 보통 뱀으로 알고 죽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저를 등에 태우고 가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은 조그만 나를 당신처럼 큰 뱀이 떠받드는 것을 보고 나를 아주 신성한 뱀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해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오히려 떠받들려할 것입니다. 큰 뱀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뱀들은 당당히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위 사람의 겸손이 무리 전체를 살리는 힘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말라버린((涸) 연못(澤)에서(之) 살던 뱀(蛇)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대왕 뱀이 ‘겸손’했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겸손은 자신을 위대하게 하기도 하지만, 타인에게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깨달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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