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지인들과 모임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중 연세가 있으신 한 선배가 식탁 위에 음식이 차려진 것부터 식사를 하는 도중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까지 수시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는 당시 ‘젊은 친구도 아니고 연세 드신 선배가 좀 주책이네...’라며 속으로 조롱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같이 있던 그 선배의 동기들까지도 ‘야, 무슨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어?’라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때 그 선배는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생의 한 추억이고, 이후 그 추억을 되새김질하려면 남는 것은 사진뿐 이야!’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때는 선배의 이야기가 그렇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친구들과의 모임을 비롯하여 각종 지인들과 만남이 있을 때 저도 그 선배처럼 사진을 찍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저 역시도 친구들이 ‘너는 무슨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나?’라고 조롱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그 선배나 저처럼 많은 사람들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여행지에 가도 기념사진부터 찍는가 하면,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면 다른 사람들이 젓가락을 못하게 막고 먼저 음식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남는 건 사진뿐 이라’며 말입니다. 사람이 둘 이상 모이면 빠지지 않고 ‘인증숏’을 찍습니다.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했다는 인증이 삶의 필수 요소가 된 것입니다.
핸드폰의 카톡으로 셀카를 찍은 사진을 전송하는 것이 소통이라고 믿는 문화 풍토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사진에 많은 이야기를 담기보다 줄여야 합니다. 군더더기를 뺀 명료한 사진은 곧 그 사진의 주인공이 전달하고자 하는 요지가 명료해 지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글을 써놓고 최종 글을 마무리할 때 퇴고를 합니다. 고치고 또 수정하면서 군더더기를 빼고 요지만 최소화하는 작업을 합니다.
某 기자가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 대상자를 만나자 해서 저녁을 한 적이 있다 했습니다. 술이 몇 잔 들어가니 그 대상자가 중요한 이야기(기삿거리)를 들려주었다 했습니다. 그 기자는 면전에서 그 이야기를 받아 적을 수 없어 자신의 양쪽 다리에 빼곡히 전해 들은 이야기를 적었다 합니다. 그야말로 기자정신을 발휘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상자와 헤어지고 나서 자신이 근무하는 언론사 사무실에 와서 바지를 걷어서 다리를 보니, 볼펜으로 적은 대상자의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했습니다.
소위 언론인들이 이야기하는 ‘적자생존('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이었던 것입니다. 그 기자는 다리에 적힌 많은 이야기 중 중요한 진액만 줄이고 또 줄여서 기사를 작성, 신문에 냈다 했습니다. 그 기사는 특종이 되었고, 이후 ‘올해의 기자상’까지 수상하게 되었다 합니다. 가끔 핸드폰 속에 저장되어 있는 옛날 사진들을 봅니다. 추억을 간직한 사진이라 오래전 만났던 사람들과 풍경들을 보며 옛 과거로 시간을 되돌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장된 많은 사진 중 꼭 필요한 사진만 보관하고 다소 불필요한 사진들은 삭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또 새로운 사진을 저장할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의 삶도 사진과 같다는 생각입니다.
좋은 추억이 있는 기억은 계속 간직하고.. 아픈 기억이 있는 삶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그게 좋은 추억으로 남은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