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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혜 Jul 03. 2024

베네치아의 여인들 (3)

찬란한 인생

혼자가 될 용기가 생겼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행은 우연히 들린 카페에서 만난 직원과의 소소한 대화가 필요한 법이다. 혹은 에스프레소에 올린 우유거품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건네거나. 외롭기 때문에 절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그런데 홀로 하는 여행은 지극히 고독해서 때론 찬란하다. 내가 나로서 나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을 보내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피울 수 있는 이유를 만든다.


5미터가 훌쩍 넘는 홀로 우뚝 솟은 나무의 고독에 위로를 얻고 짹짹이는 새소리에 자연스레 미소가 스며 나온다. 평안과 평화. 그것이면 된다.


나는 호주여자애와 한국여자애들과 밤까지 시간을 보냈다. 한국인 셋에 호주인은 결국 등을 돌려버렸고 정겨운 한국친구들과 한잔 하며 어색함을 깨고 있었다. 보수적인 나는 호스텔이 사뭇 긴장되었는데 오가는 대화 속에 그리고 번잡함에 묻혀 하루가 저물길 바라고 있었다. 칠백여 명은 수용가능한 대형 호스텔이라 공용라운지는 늦은 밤이면 늘 인산인해였다.

무료쿠폰으로 받은 프로세코 한잔을 손에 쥐고 두리번거렸다. 같은 방 투숙객으로 만나 출신 고향과 직업 등 자기소개도 바닥이 나버린 것이다. 다행히 구석탱이에 앉아 기타 치던 소년이 있어 심심하지는 않았다. 물리치료사인 그들은 잠시 일을 멈추고 유럽여행을 왔다고 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한 동료와 함께 여행을 온다는 것도 새삼 신기했다. 그리고 다시 일할 여건이 되기 때문에 이런 여행이 무섭지 않아 보였다.


나의 직업은 프리랜서랍시고 놈팡이다. 일을 하고자 하면 할 것이고 놀자면 놀 것이다. 이러한 연유에 대해 설명했다.


“남편이 열심히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눈이 동그래졌다.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해 놀란 눈치다. 그러더니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물어서 알려주었고, 남자친구와 헤어지면 연락한다고 한다. 참. 철없는 아이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제 3자의 시선에서 볼 때 이번 결혼의 최대 수혜자는 나인가?   


<신혼 초> ‘돈’ 문제로 서로를 헐뜯고 비아냥거릴 뿐 아니라 남보다 못한 위치에서 경멸하고 또 멸시했다. 대기업을 다닐 때 남편보다 부자였고, 지금은 남편이 나의 월급에 10배 이상을 번다. 그리고 우리 집안은 평범하고, 남편집안은 특별하다. 소위말해 집안이 좋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사촌오빠부터 연세대를 졸업한 사촌언니와 친오빠부터 또 다른 사촌까지 모조리 공무원이다. 그런데 나는 위계질서가 사라져 친구처럼 지내는 것을 좋은 집안이라 일컫고 싶다. 고로 나의 2촌까지만 봐도 단란하고 원만한 가정이다.

우리 시댁은 참 다르다. 처음 인사 갔을 때 그들은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차가운 시선과 말투는 상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플지는 몰랐다. 난생처음 존재를 부정당하고 겉치레로 인해 자존심이 무너질지는 정말 몰랐다. 감정표현이 삭막한 환경에서 지낸 사람들이 더욱 무서웠다. 좋은 직업을 가진 며느리가 아니라서 그들의 심기는 불편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직업은 무엇일까?


철밥통이 좋은 직업일까. 공부에만 전념했더라면 인정받았을까. 20대가 끝날 무렵에 인생 전부를 난도질당했다. 아팠지만 참았다. 영하로 떨어진 기온에도 길거리로 나가야 했던 그들은 현실적으로 냉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는 한다. 하지만 방식이 잘못되었다. 함부로 가슴에 비수를 꽂고 시간만 바라보는 일은 인정받을 수 없다. 잘못 끼어진 첫 단추는 남보다 못한 관계일 뿐이다.


관계의 정의. 관계의 시작은 존중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란 나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 직접 벌어 필요한 만큼 쓴다. 남편과 함께 여행할 때는 그의 손을 빌리지만, 바닥에서 시작되는 나의 존재 가치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때 인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제를 알고 살아감으로써 오는 행복이 크다. 사유를 하고 인간의 이유를 생각하게 될 때 밀려오는 파도는 겨울에 덮는 양털이불과도 같다. 불안한 현대인이 아닌 ‘정경혜’로 산다는 것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함이자 축복이다.


베네치아 여행 첫째 날 나는 또다시 나의 독립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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