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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혜 Aug 07. 2024

베네치아의 여인들 (7)

불안이란 원동력

그 선 하나가 내 인생을 지탱하고 온 것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정반대의 삶을 위한 선택지가 놓여있었다.


유전에 의하면 작은 것에 심히 놀라는 소심한 성격에 관대함을 갖춘 보수적인 사람인 것이다. 보고 자란 것도 있겠지만 뜨거운 핏속에는 그들이 지켜온 삶의 방식과 태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비로소 나는 삶을 여러 형태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갈림길 위에서 기준을 가지고 택한 인생은 각자의 길을 따라 걷는다.

나의 선택이 괄시당하며 의심받아도 곧은 의지는 변치 않는다.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서로를 비난하기 바쁘니 멀어지고 소원해지기 십상이었다.


그렇게 떠나간 친구들이 몇이나 될까?


의심을 거두지 못한 일방적인 관계로 남았을지라도 나의 가치관은 그대로였다.


때마침 그녀는 품은 순수성을 존중하고 완성시켜 줬다. 본연의 나로 남아 투명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존경스러웠으나, 내 안에 의심이 자리했다. 레즈비언은 나를 이성 혹은 동성으로 느낄지 호기심이 가득했다. 혹여나 마음에 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던 건 사실이다. 분명 불안이 또 다른 문제를 파생했을 것이다. 바람이 점점 빠져버리는 태도랄까.



주어진 시간은 24시간 남짓이었다.


피곤에 전 그는 먼저 일어섰고 다음날 새벽에 떠나버렸다. 눈코 뜰 새 없이 하룻날의 고민은 흩어졌다. 술기운만 남긴 채 하루가 시작되었다.



피를 나눈 형제보다 끈끈했던 우정과 갈라지고 배신을 입고 유일하게 다녔던 대기업에서 평가절하와 이용만 당했다. 시샘에 더해진 헐뜯기며 생긴 불안감은 서른 중반에 다른 형태로 찾아왔다.


전교에서 알아주던 웃음꾼은 사라졌다. 입을 꾹 닫고 시작되는 관계를 열망하지 않는다.

시간을 핑계로 대화에 생기를 잃거나 결혼 후에는 몇 없는 친구에게서 시기질투를 받는 일도 있었다. 영원이란 단어는 무색해졌다. 겉핥기식 관계가 우세했다. 어쩌면 나조차 색안경을 썼을지도 모르지만 세상을 투명하게 보도록 좋은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했다. 타고난 낙천성과 해맑음을 바탕으로.


언젠가부터 소극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상대를 인생의 전부로 담으려 했던 내가 떠올랐다. 밝은 측면만 바라보고 그저 사랑만 받으려고 했던 단순했던 나는 그저 바짓가랑이에 붙은 흙먼지처럼 투덕투덕하게 떨어졌다. 내 안에 스스로 자라나야 하며 그 뒷면에는 어둠이 있다는 것을. 기쁘기만 해도 안 되고 슬프기만 해서도 안 된다. 또 슬펐으면 행복할 준비를 마쳐야 했다.


혼자 여행을 통해 나를 돌보고 느끼고 돌아본다. 내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따르며 하루를 채운다. 여행 중에도 새로운 관계에 접어들면, 이윽고 내 공간을 만든다. 그러고 나면, 한층 마음이 편하고 상대도 예의를 지킨다.

고통은 사라졌지만 구구절절한 마음을 그렸다. 실컷 상처를 주고받는 일은 어린 시절에 그쳐야 할까. 용기 없는 어른이 된 걸까. 이미 난 상처는 기쁨과 또 다른 상처에 지워지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나의 사랑 방정식은 참과 거짓이 분명하고 자기중심적이다. 가슴 한켠에는 흩어진 찢겨진 조각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국한되지 않는 여정을 가는 그가 자꾸만 생각났다. 강렬했고 자극적이었다. 처음 사실을 마주한 날 떨렸던 심장은 첫 계단에서부터 쉽지 않았을 터다. 머리와 멀어진 가슴은 이윽고 어려운 여정을 택했을 거니까. 솔직히 동성을 이성으로 느끼는 마음은 어떤 거냐고 묻고 싶었다. 진짜 사랑인지 우정인지 궁금했다. 더럽고 치욕스러운 우정인지는 모를 일이다. 나에게 사랑은 나무나 단순하기 때문에. 그를 따라 밀라노로 갔다면, 어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었을까?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에 서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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