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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김현영 May 17. 2021

부모성을 함께 쓰는 이유

그 이유면 충분하다

이길보라 감독님과 같이 서로 재밌게 본 다양한 문화컨텐츠들로 이야기를 나눈 내용이 동영상으로 제작되어 휴머니스트 연남책빵 유투브 채널에 업로드되었다. 이 영상은 휴머니스트 20주년 기념으로 촬영된거라 출판사가 광고를 했나봄(정확히는 모르겠음 확인한 바 없음) 알고리즘을 타고 이 영상을 보게 된 신남성연대 등 일군의 안티페미니스트들이 좌표를 찍은 모양이다. 댓글이 초반에 꽤 훈훈하게 달리다가 분위기가 달라졌고 싫어요가 좋아요의 두배가 되었다. 그래도 좋아요 찍어주시고 선플 훈플 달아주시며 출연자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해주신 분들이 있어서 든든하였다. 그런데 악플 중 상당수가 이길보라 감독님과 제가 부모성함께쓰기를 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라, 예전에 썼던 글. 페이스북에 쓰면 검색이 안되어서 브런치로 다시 한번 옮겨둔다. 내가 부모성함께쓰기를 하는 이유.


<부모성을 함께 쓰는 이유>


부모성함께쓰기를 한 지 벌써 이십년이 넘어간다. 사람들에게 처음 이름을 말하면 세번에 한번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권김현영과 박이윤재가 결혼하면 아이 성은 박이권김 네 글자가 되나요?” 성이 길어지는 걸 걱정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 좀 놀랄 정도였는데, 그럴 때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말씀드리곤 했다. “조한지영과 전영록이 결혼해서 두 아이가 태어났어요. 자신도 부모성함께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아들은 아버지의 부계성과 어머니의 모계성을 따라 자신을 전한지훈으로 부른대요. 딸은 어머니의 모계성과 아버지의 부계성으로 성을 만들어 조전미영이고요.”


그러면 그렇게 복잡해서 등록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다. 우선 큰 오해부터 풀자. 애초에 부모성함께쓰기운동의 목적은 부모 성을 공동으로 등록하자는 데 있는 게 아니었다. 1997년 3월 8일 여성대회 이이효재 선생님을 비롯한 170여명의 여성계 인사들이 부모성함께쓰기운동에 동참하며 호주제 철폐를 외쳤다. “호주제, 그거 사실 유명무실하고 상징일 뿐이다”라며 호주제를 존치하자고 하고 “동성동본금혼 역시 예외조항을 두어 해결할 수 있다”며 동성동본이 혼인하면 유전적 문제가 생긴다며 반대하던 유림들의 주장에 맞서, 매우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가족 내 어머니의 위치를 가시화하고자 했던 운동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동성동본금혼폐지, 호주제폐지가 운동의 목표였다. 동성동본금혼규정은 1999년에, 호주제는 2005년에 각각 폐지된다. 부모성함께쓰기운동의 목적은 이미 이룬 셈이다.


그럼에도 왜 계속 쓰고 있냐면 엄마 때문이다. “엄마 성도 어차피 외할아버지 성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 이름의 권은 외할머니 성이다. 엄마 성이 아빠와 똑같아서 나는 부모성함께쓰기에 동참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어느날 엄마가 물으셨다. “여성운동하는 사람들은 부모성함께쓰기한다는데 넌 왜 안 쓰니?” “엄마아빠 성이 똑같아서 김김현영이라고 보내면 사람들이 실수인 줄 알더라고.” “그럼 엄마의 엄마 성을 쓰면 되지.” “아….” 이렇게 되었던 것.


그 성 역시 외할머니의 아버지 성이니 어차피 남자 성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흠, 어차피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친족은 엄마와 외할머니까지니 상관없다. 근본을 따져 묻다가 아무것도 안 하느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모계를 기억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물론 그래서 성을 빼고 이름만 쓰는 사람도 있고, 이름도 새로 지어서 새로운 공동체가 같이 지어준 이름으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도 있다. 나 역시 별명도 있고 활동명도 있는데 그중 권김현영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주로 쓰고 있다. 살면서 불편한 순간도 꽤 있다. 어떤 학술지에는 주민등록상의 이름인 김현영으로만 등록할 수 있어 연구실적을 증명하기에 곤란을 겪을 때도 있다. 호주제도 폐지됐는데 부모성함께쓰기 그만할까, 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래도 계속 쓰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엄마가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엄마는 엄마의 친척들이나 친구들에게 권김의 ‘권’이 엄마의 엄마 성이라고 설명하면서 꽤나 즐거워하신다. 나에겐 그 이유면 충분하다.


출처: 권김현영,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휴머니스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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