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져라.
- 릴케 -
주어진 일을 빈틈없이 수행하는 어떤 기계가 있다. 그 기계가 잘하는 일은 물건을 옮겨 놓는 것이다. 물건을 옮기는 이유는 따로 없다. 그저 물건이 거기 있고 기계는 그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계는 전기만 있다면 쉬지 않고 일을 한다. 벽돌을 옮겨 놓는 일 정도는 하루 종일 1년 내내 할 수도 있다. 기계는 쌓여 있는 벽돌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전체를 다 옮기면 이번에는 저쪽에서 이쪽으로 다시 옮긴다.
기계는 자신이 한 일을 보고 뿌듯해하지도 않고 왜 하는지 투덜대지도 않으며 계속 일을 해나간다. 그 기계가 일하는 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세계는 일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소소한 일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때 소소한 일들을 거쳐 큰 일이 생긴다는 것은 단순히 일의 양이 합쳐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양의 일들이 모이더라도 결과가 쌓이는 양상에 따라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도 하고 큰 변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벽돌집을 지을때 쌓여 있는 벽돌들을 다시 쌓는 방식에 따라 튼튼한 집이 될 수도 있고, 다시 벽돌 더미가 될 수도 있다. 또한 벽돌로 만들 수 있는 집에도 다양한 모양이 있다.
집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집을 지어본 적도 없는 선사시대 사람이 집이라는 희미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그는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야 할 지 어떤 재료로 만들어야 할 지 모르지만, 일단 주위에 있는 물건들을 모아서 이렇게 저렇게 어설픈 시도를 한다.
대부분의 재료와 대부분의 방법은 전혀 쓸모가 없었지만, 어떤 재료와 어떤 방법은 집을 짓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벽돌을 쌓는 모양에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 그 중에서 어떤 모양을 제외하고 어떤 모양을 선택할지에 대한 기준과 평가 없이, '그냥 쌓는다'는 진행 방식 만으로는 집은 지어지지 않고 우연히 지어져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우리는 일은 많이 했지만 남은 결과가 보이지 않을때나, 애써 쌓은 결과가 어이없이 무너져 내릴때 허탈함을 느낀다. 일의 양과 일의 가치는 비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허탈함'이야말로 새로운 시도의 원동력이다. 수많은 가능성으로 인해 허탈함은 피할 수 없다.
세계의 일들은 언제 어디서나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고, 시도와 결과라는 리듬으로 진행된다.
물건 나르는 기계도 물건 나르기를 계획하고 시도하고 잘 실행한다. 여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기계가 벽돌들을 집 모양으로 쌓으려면 설정을 다시 해야 한다.
지난 일을 평가하고 일의 진행을 재설정하는 되돌아봄 없이는 일은 그냥 쌓여가듯 일어난다.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져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수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까.*
* 라이너 마리아 릴케「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나를 흔든 시 한 줄> 84쪽에서 재인용 (노석미 그림, 정재숙 편, 중앙북스,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