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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양 Mar 08. 2024

중환자실간호사로 5년

 간호사라면 거치는 간호대학교에서 4년 공부를 마쳤다. 대학 3~4학년 나이로 치면 스물둘, 스물셋의 어린 나이에 병원을 처음! 경험했다. 생각해보면 병원을 제대로 가본적도 없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의 추천에 간호사의 삶을 선택한건 도박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는 대학교에 입학해 간호학을 공부했고, 몇 개월의 실습을 통해 병원을 경험했고, 한국의 간호 면허시험에 합격했고, 그렇게 간.호.사.가 되었다.

 한국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2월 이후 병원에 합격, 그리고 두 달 뒤인 4월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웨이팅(병원에 취직 후 근무 시작까지 대기하는 기간) 두 달째 나는 입사했다. 돌이켜보면 미뤘으면 좀 더 놀았을까 싶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갔어도 내 결정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입사 후 두 달의 신규 간호사 교육을 마치고 부서가 배정되었다. 신규 간호사 교육 마지막 날 받은 교육 평가서 맨 위에는 원하는 부서를 1지망, 2지망, 3지망에 적는 란이 있었다. 크게 고민 없이 실습 때 좋은 기억이 많았던 중환자실을 적었다. 1지망 중환자실, 2지망 내과중환자실, 3지망 외과중환자실. 그렇게 나는 내.과.중.환.자.실. 간.호.사.가 되었다.



 나는 인내심이 좋다.

 힘들지만 하고자 하는 목표를 정하면 하고 말았다.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과정의 어떤 힘듦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는 끈임없이 말을 했다. 지금와보니 그때의 나는 고민이 많았다. 중환자실 간호사가 되고 차를 샀다. 경차를 새차로 뽑았다. 할부를 3년으로 정했다. 나는 3년은 일해야지 계획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내 인내심을 걱정한 나머지 포기하지 못할 이유를 하나 더 만들었다.

 한번은 중환자실을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추억은 미화되는 건지 그때의 나 이외에는 좋은 기억밖에 없다. 그런데 그때의 나를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하는걸 보면 엘리베이터 안에 갇히고 싶었던 그때의 나는 참 많이 힘들었나보다.



 내 인생의 첫 빌런이 나타났다.

 중환자실 간호사 사이에서 그녀의 별명은 ‘그녀’였다. 별명대로 고고하게 앉아서 웃는 얼굴과 소근대는 상냥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중환자실에서 트레이닝(일을 배우는 기간) 중일 때 하루는 프리셉터(일을 전담하여 가르치는 선배)가 휴가로 ‘그녀’에게 배우는 날이 있었다. 일 시작과 동시에 폭풍 질문이 쏟아졌다.

 

그녀 : CRRT 원리가 어떻게 돼?

글양 : 필터를 통해... 여과가 이루어져서... 여과되지 않는 혈액이 환자에게 들어가게 되고.. 여과된 노폐물들은 배액백에 모여 버리게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녀 : 알고 있으면 어떻게 정답을 이야기해야지.

글양 : 죄송합니다 더 공부해오겠습니다..

그녀 : (눈웃음 지으며) 공부는 대학 때 하고 온 거 아니였어?^^

글양 : 아... 죄송합니다. 내일 공부 열심히 해서 오겠습니다.

그녀 : 오늘들은 얘기중에 제일 재밌다 얘~ 너 때문에 소변 내리는 시간지났잖아. 너는 시간당 소변 보는게 안중요하다고 생각하는구나?^^

글양 : ........(질문하고 답하느라 시간이 지난건데...)



 중환자실 1년차, 어렵고 어렵고 어렵다. 배울게 너무 많다. 사람들도 어렵고 장비는 왜 이렇게 많은거야. 이걸 어떻게 내가 다 다루게 되지? 알람은 왜 이렇게 많이 울려...

 중환자실 2년차, 이제 좀 일을 알겠는데 선배들은 여전히 어렵다. 내 일을 잘 했는데 왜 눈치가 보이지. 그 이상을 내가 해야 하는 것 같은데 뭘 해야하지? 그리고 왜 이렇게 다들 질문하고 말거는거야. 주치의는 자기 환자를 왜 나한테 물어봐. 너가 알고 대화해야 하는거 아니니? 그리고 내가 모르면 넌 왜 자꾸 무시는거야? 너가 환자 모른다고 내가 너 무시하진 않잖아?

 중환자실 3년차, 일도 잘하고 선배들을 도우며 선배들과 이야기도 조금 나누게 되어 일이 너무 즐겁다. 후배들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혼날 땐 위로도 해주고 배우고 싶은게 더 많아졌다. 타 직종간의 소통도 내가 다 알게 되니 부담되지 않았다. 가르쳐주는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했다.

 중환자실 4년차, 일을 다 알고나서 배우니 배우고 싶은게 많아지고 그 누구보다 멋진 중환자실 간호사가 되고 싶어졌다. 일에도 여유가 생겨 어떻게 더 환자를 위해서 간호해 줄 수 있지 생각하며 간호를 하고 있는 나 자신에 도취되어 더 없이 즐거웠다.

 중환자실 5년차, 이제 모르는 게 없다. 지금 알고 있는 그 이상을 배워야겠다. 그래서 더 좋은 간호사가 되어야겠다. 그렇게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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